ȸ

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 < 063 부처님과 대일여래 > 2021년 12월 24일 金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214회 작성일 21-12-24 07:30

본문


                                               

< 법구경 >

336

사납고 독한 애정의 욕심을

그대로 놓아 버리지 못하면,

걱정· 근심은 날로 불어 가나니,

잔잔한 물방울이 못을 채우듯.


연애는 사랑을 그리는 것이다.

언제나 그것은 부자유에 의한 신비성에서 일어난다.

그러므로 양성간의 신비성(성욕과 인격에 대한)이 소실될 때는,

연애라는 꽃도 지고 만다.



img.jpg

 063  부처님과 대일여래


『  대일경大日經 』이나 『 금강정경金綱頂經 』을 주축으로 하는 밀교계 불경에서 경을 설하는 부처님은 석가세존으로 되어 있지 않다. 마하ㅡ비로자나ㅡ다타가타이다. "큰 광명의 여래"를 뜻한다. 이것을 선무외善無畏와 일행一行은 대일경 즉 대비로자나성불신변가지경에서 "대일여래大日如來"로 번역했다. 대일경에서 설주說主는 "박가범薄伽梵", "세존여래", "대일여래","대일세존","비로자나세존", "박가범비로자나", "불佛", "대일정각세존大日正覺世尊", "비로자나불", "대일경왕大日經王" 등으로 나타난다. 선무외 이전에도 금강지金鋼智는 마하ㅡ 비로자나ㅡ 다타가타를 "최고현광명안장여래最高顯光明眼將如來"로 번역했었지만, 후세에 이 번역어는 대중화되지 못하고 "대일여래"라는 번역어가 주로 쓰였다.

    선무외는 마하ㅡ비로자나를 "대일大日" 즉 "위대한 태양"이라고 번역한 이유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태양은 온 세계를 두루 밝혀서 어둠을 몰아낸다. 마찬가지로 법신 부처님의 지혜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밝히고 미혹을 몰아낸다. 둘째, 태양은 세상의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살리는 일을 한다.태양에 의해서 모든 식물이 자라고, 그것을 먹는 동물과 사람이 살 수 있다. 태양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중생의 진정한 생명을 한꺼번에 살리는 일을 한다. 셋째, 태양의 빛은 영원해서 생멸이 없다. 중생이 자신들의 사정에 의해서 보지 못할 때가 있을 뿐 태양의 광명은 항상 그대로 비치고 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교화 방편도 중생이 알아보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가 있을 뿐 항상 중생 곁에 있다.

     사바세계의 교주는 석가세존이다. 그리고 석가는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다. 밀교를 설한 부처님은 대일여래 법신불이다. 역사적인 실존 인물이 아니다. 그런데 밀교 경전에 석가세존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을 불경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대승불교에서 밀교가 나왔다는 것은 불교 역사가 증명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인물인 석존과 초역사적인 법신불인 대일여래의 관계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많은 고민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둘은 같다거나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에는 각기 난점이 따른다.

     먼저 석존과 대일여래가 같은 내용의 다른 이름이라는 주장, 즉 둘은 같다고 하는 생각을 보자. 교리상 둘이 하나라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석가는 화신불이고 대일여래는 법신불이라고 할 때, 대일여래가 법신의 자리에서 중생 세계의 형상과 이름을 걸치고 화신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렇다면 왜 법신불이 직접 나서서 경을 설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나온다. 법신이 입을 열고 교화로 나섰다면 그 법신은 더 이상 법신이 아니다. 이미 화신이다. 석존과 대일여래가 한몸이라는 주장 뒤에는 석존의 육신을 중요시하는 생각이 숨어 있다. 석존의 입을 통해서 나온 불경만을 중시한다면, 석존이 입멸한 뒤에 나온 대승불경에 대한 믿음도 흔들릴 수가 있다.


      골수 밀교에서는 석존과 대일여래를 둘로 나누어서 본다. 석존은 현교顯敎의 교주이고 대일여래는 밀교의 교주로서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만약 석존과 대일여래를 하나로 본다면 그것은 밀교의 교주를 현교의 것으로 끌어내리는 격이라고 한다. 석존과 대일여래를 구분하는 주장 뒤에는 법신 중심으로 석존의 생신을 풀이하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역사성의 문제가 있다. 법신의 가르침이 화신의 입을 빌려서 설해진 것이 아니고, 육신의 입으로 직접 설해졌다로 한다면 곤란하게 된다.




< 안면암 지킴이 보살님 무량이 항순이와의 산책 >

서로 목줄을 이은 채 

사이좋게 신나는 산책을 하는 

무량이와 항순이는 순하디 순한 축생입니다.


지금 설봉스님께서 함께 걷고 계시는 

왕복 한 시간이 넘는 이 안면도 뚝방길을

석지명 큰스님께서 

기회가 될 때마다 무심히 걸으셨고,

이어 설정스님 설학스님 정휴스님께서 걸으셨습니다.

저도 몇 번 걸었습니다.


바다 위 부상교를 지나 부상탑을 참배하는 

'일출'의 명소 바닷길과는

전혀 다른 이 넓다란 뚝방길은 

대자연을 즐기면서 '일몰'까지도 관조할 수 있습니다.


산수화를 연상시키는 

안면암 측면과 

바다와 섬까지 두루  감상하며

걷는 이 둘레길을

감히 '아득한 성자의 길'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설악 무산 대종사님의 시처럼

우리 모두는

 '아득한 성자'입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생 동안

석가모니부처님 가르침을 실천해서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장차 우리들과

 더불어 

무량이 항순이도 

그 언젠가는 반드시 성자가 될 것입니다.



img.jpg


img.jpg


img.jpg


img.jpg


img.jpg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사람은 애욕으로부터

근심이 생기고,

근심으로부터

온갖 두려움이 생긴다.



만일 애욕을 버리면

무엇을 근심하고

그 무엇을 두려워하랴.



                              ㅡ  사십이장경





<  아득한 성자  >  /  故 조오현 스님 . 설악 무산 대종사. 신흥사 조실



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더 볼 것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원컨데 인간의머리로는  헤아릴수없는 백천만겁  석가모니부처님 오셔서  안겨주셨으니    화엄경아승지품에    우리는  수행하여  부처님은혜갚아  필경  성불  하여지이다  .  새노병사를  해결하시는  부 처님 이시여  행복한 마음으로  년말년시에  덕을쌓고  베풀어  용기있게  수행하는자 아름답게  성공  하여지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사진도  요  무량이  네도  뚝방운동 중이군요  .오늘부터는  동장군님이  오실모양입니다  .  차조심길조심  몸조심  합시다  . 이생 오도  영득복행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코로나 19 환난으로 하여 연말연시가 더욱 스산할 지경입니다.
어려운 때일 수록 서로 덕을 쌓고 베풀면 그 얼마나 좋을까요?

무량이 항순이 운동 참 듬직하고 리드미칼합니다.

올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니 헐벗은 인간이나 굶주린 동물이 없어야 하는데. . . . . .

눈이 많이 내리면 차조심 길조심 몸조심 사람조심 조심의 연속입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