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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074 정토 신앙과 선 수행 2022년 1월 4일 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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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083회 작성일 22-01-04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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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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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욕의 즐거움으로 제 몸을 싸는 것은

고치를 짓는 누에와 같다.

지혜롭고 어진 이는 이것을 알아

욕을 끊고 두루 놀아 괴로움 없다.


우리의 자유는 언제나 이중의 관문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는 정욕과 유혹의 관문,

둘째는 무상명령(無上命令)의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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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4   정토 신앙과 선 수행

앞에서 정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멀리 있는 정토, 현실 속의 정토, 그리고 마음의 정토이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이상세계를 나카내는 의미로서의 정토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토는 아미타불이 주불로 있는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말한다. 또한 정토교는 저 서방정토, 그 곳에 있는 아미타불의 이상, 그리고 저 정토에 이르는 방법을 전하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불교에 있어서, 유발 신도가 생을 마쳤을 경우에는 그 천도예식을 서방정토의 미타신앙에 의해서 행하고, 삭발 승려가 입적했을 경우에는 도솔천에 태어나서 수행하다가 속히 사바세계로 다시 돌아오라는 축원을 한다고 앞 장에서 말한 바 있다. 이를 본 한 독자가 승려들의 도솔천 신앙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 왔다. 현재 승려들에게 있어서 도솔천 신앙이 두드러지게 강하지도 않은데, 축원문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승려들의 전체적인 신앙인 것처럼 일반화해서 말하면 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출가자가 재가신도는 서방정토로 보내고, 자신들은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출가자 가운데도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이가 있을 것이다. 출가자들에게만 도솔천 신앙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불교는 실제로는 통불교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 종지는 선종을 표방하고 있다. 선종은 자력에 의한 성불과 생사해탈을 궁극의 목표로 하고, 정토교는 자력 외에 타력도 이용해서 극락세계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력 성불이라는 자력 외에 타력도 이용해서 극락세계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력 성불이라는 목표를 가진 출가자들의 자존심은 드러내 놓고 미타 신앙에 안주하는 것을 꺼리게 한다.

     조실 스님들의 결제 해제 상당법문上堂法門은 생사해탈을 강조한다. 천상에 태어나면 자기가 지은 복을 다 쓰고 났을 때, 다시 아래로 내려와서 지옥, 아귀, 축생으로 윤회할 수도 있다고 한다. 성불해서 윤회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참선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서방정토와 다르다. 그럼에도 참선 정진하는 출가 수행자들은 극락에 들렀다가 더 높이 올라가는 우회로보다는, 이 몸을 가지고 바로 깨쳐 바로 부처가 되는 직행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출가 승려들에게 서방정토 신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국 사찰의 출가자들은 신도 망인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서방정토가 좋기 때문에 신도들에게 천도재를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서방정토가 좋기 때문에 신도들에게도 권할 것이고, 신도들이 그 곳에 왕생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망인이 일반신도가 아닌 출가자 자신의 부모 형제 중의 한 명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위해서는 서방정토 왕생을 기원하니, 정토에 대한 믿음이 없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왜 출가자들의 신앙이 저처럼 이중적인 듯이 보이는가. 자력교自力敎와 타력교他力敎, 난행도難行道, 이행도易行道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참선 수행자들에 있어서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에 의해서 닦아 나간다는 자존심, 또는 번뇌와 생사로부터의 해탈을 위해서 쉬운 우회로가 아닌 어려운 직선로를 간다는 자긍심이 있다. 왕생정토는 불보살의 힘을 빌리기 쉬운 길이므로 수행 전문가가 아닌 신도들에게 권하고, 전문가인 자신들만이라도 힘든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력과 타력은 완전히 갈라놓을 수 없다. 누구의 힘이라고 이름 붙이든 우주 가운데 무엇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자력은 있을 수 없다. 타력을 빌리더라도 자력이 있어야 한다. 돈을 빌리더라도 말할 힘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선하는 출가자들도 기도를 통해서 정진할 힘을 충전시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선과 정토를 겸해서 닦기도 한다. 이 선정겸수禪淨兼修에 대해서는 별도의 장에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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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ㅡ  BBS >



물이 풀과 약초와 나무를 키우듯이

청정한 원을 지닌 보살은

중생을 자비로 적시고 중생이 지니고 있는 맑고 깨끗한 성품을 키워준다.

                                                                                ㅡ  보적경



< 여섯 가지 참회 >



내가 생각해야만 하는데도 생각하지 않은 것과

말해야만 하는데도 말하지 않은 것

행해야만 하는데도 행하지 않은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생각한 것과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말한 것

행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행한 것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소서



  ㅡ    젠드 아베스타 ( 기원전 6세기 경)

          페르시아 조로아스터 경전의 기도문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정신세계가돌아갈수록  기쁨을주는  진리는없다  .  즉 다른사람에게도움을줄때    안락이라  하지요  .  도는안락이고  행복은  편안하고  즐거움이다  .  관세음보살이  감로수를주는법  허망한데집착안고    지혀와자비를줄때    집착 과  무서움사라지면  어디로갈까?  지혜  도  나!    자비도  로  남  을    로가야      말이야 ..?는  자기가하고싶어  해놓고  생색을  내는구나  !    그냥부셔버린다  .애착과두려움도없다  . 자기본래마음  으로돌아간다    적이없어야  편안하다  .  경  안  몸부터가볍다  .허망한데집착안는것이    지혜와자비를줄때  산다는것도  잠시  동창회하는것과같다  .왜  아인슈타인이  불교를 통찰 했는지  감동해야한다  .친절 연민  관심  대상에대한  경계선을  확장할 가치를갖자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맑은하늘의  기운속에 동자꼬맛ㅏㅇ이  자유로운  천진함이  좋아요 .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지장  대원탑 첨탑
사진  속  사면불
안면암의 다른  느낌으로 왔어요
지장대원탑과  뒷산의  돌탑
지금  생각하니 다 연결된...

지장 대원  탑
점안식
기다려 집니다

              정광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