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자: 독일 교포와 결혼하고 헤어진 한 여인의 힘겨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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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9건 조회 2,823회 작성일 22-01-09 04:56본문
귀엽고 예쁘고 유머 넘치는 한 동포 여인과의 교류
금년 크리스마스 이브엔 아주 귀여운 여인을 초대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즐거웠다. 3년 전에 한국에서, 부모들이 결혼 할 때처럼, 자기들끼리 또 이혼을 시켰다. 이젠 딸의 양육비를 받아달라고 사무실을 찾아온 손님이었다. 이곳에서 약 10년을 살았으나 독일어를 배울 기회가 없어서 우리를 찾았단다. 우리가 한국으로 휴가 하는 동안에 연락이 와서 다른 한국변호사에게 소개해 주었지만 결사코 우릴 기다리겠다고 해서 어렵게 만난 인연이다. 결국 국비로 3년간의 양육비를 받게 해주었다.
올해 만 45세인 그녀는 25세의 대학생시절에 부모들이 정한 어느 사이비 종교단의 부총재 아들에게 2번 만난 후 결혼을 했단다. 독일에서 왔다는 한국 남편감이, 키도 작고, 눈도 작고, 하는 행동이 맘에 하나도 들지 않았으나 감히 거절할 수 없었다. 자칭 예수의 후계자라는 교주 앞에서(그건 큰 영광이라고!) 100명의 다른 쌍 들과 함께 성대히 합동 결혼식을 마치고, 첫날밤부터 실망과 절망의 슬픔을 안고 15년을 살다가 결국은 헤어진 것이다. 그것도 어리석게 사기 당 하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오래 참고 불행하게 산 것은 둘 사이에서 독일에서 태어난 딸 때문이었다. 야릇하게도 딸은 아빠를 닮아서 눈을 뜨고 있어도 잠을 잔다고 했으며, 특히 독일 아이들이 눈이 작다고 놀려 대서 어려서부터 콤플렉스가 많고 학교에도 안 가겠다고 떼를 써서, 무척 애를 먹었다고.. 그녀는 남편 복은 그렇게 없었으나 시집 식구들은 많아서, 늘 10명 이상 식구들의 밥을 지어야 했고, 많은 빨래를 하고, 딸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았단다. 남편은 사업을 한다고 늘 밖에서만 살다 시피하고, 생활비도 시아버지께서 주시곤 했다고.
그러면서도 자립하겠다고 어느 홈쇼핑 한국회사에 취직을 했다고. 그런데 살림과 직장일이 너무 힘들어서, 사무실의 책상에 누어 잠을 자다가 들키고, 경리 계산한 숫자가 잘 맞지 않아 불명예 퇴직을 당했는데도 불평 한번 못하고 참고 참다가 결국은 화병이 나서 한국의 친정으로 쉬러갔었다고. 가서 조금 쉬고 있는데, 부모님들이 “시집 쪽에서 7천 유로 (약 1억 정도??) 의 수표를 가지고 와서 이혼을 해달라고 해서 사인 했다”며, “네가 잘 못했고 우리의 부총재댁이니 다 수렴하고 침묵 하라”고 했단다. 그녀는 속으로 “대박이다” 라고 생각하며 웃었다고.
바로 독일로 돌아와서 아파트를 하나 얻어가지고 딸과 함께 나왔는데, 어느 날 딸의 친구들이 “야, 너희 아빠가 다른 아이들하고 놀이터에서 놀더라”하며, 새소식을 전해주어 알아보니, 전남편은 이미 다른 여인과 아들을 하나 낳아 호적에 올렸고, 그녀가 한국에서 데리고 온 딸 둘과 살림을 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그녀는 너무 억울해서 '상간녀' 를 한국에서 간통죄, 손해배상청구 등의 재판을 벌렸으나, 전 남편이 자기 현재의 부인에게 이로운 증언을 해서 다 패소 당했고, 억울함과 배신감에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딸의 양육비라도 좀 받아 달라고 왔던 것이다.
그 남자는 상기의 위자료에 양육비까지 다 포함 되었기에 더 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독일의 판사는 한국에서 무슨 약속을 했든 간에 독일에선 독일 법을 따라야하고, 미성년의 아이에겐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는 양육비를 무조건 내야 한다며, 한 달에 약 100만원 씩 3년 동안 지불할 것을 선고했다. 그러자 그 아빠는 성인이 된 딸을 살살 달래서 “내가 한국의 대학에도 보내주고, 쌍꺼풀 수술도 해주고, 그곳에서의 생활비를 줄테니, 그 법원의 차압을 차후로 미루어 달라” 라며 꼬드겨서, 아직도 그 엄마, 여인은 돈 한 푼도 못 받고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딸이 아빠를 이용해서(?) 원했던 쌍까풀 수술도 하고, 또 코도 높히는 수술을 받으러 한국에 갔다고 한다. (웃음)
딸은 이젠 성인이 되었지만(19살) 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고, 심리치료용으로 개를 키우다가 엄마에게 맡겨 놓고 한국으로 떠나버렸다. 엄마는 너무나 허무하고 외로워서 여기 저기 취미생활도 해보고, 유튜브를 통해 몇 사람 만나보았으나, 서양에서 드문 동양인 이고 예쁘니까, 서양인들은 만나자마자 Sex상대로 보고 몸을 만지고 추태를 부려, 너무나 부끄럽고 실망했다고 한다. 작 년 크리스마스 때엔 혼자 있기 슬퍼서, 신문을 보고 빵 기술자를 한 명 만났는데, 갑자기 강탈을 하려고 해서 간신히 빌고 빌어서 빠져나와, 너무 자신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자살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나는 한 달에 한번 씩 그녀에게 상담을 하고 있다!) 너무 안타까워서 금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 집에 초대를 했다. 그래서 12월 24일 18시에 장미 한 송이만 들고 오라고 했다. 30분을 늦게 오며 반찬을 가지가지 해서 싸가지고 왔다. 우린 스위스에서 유명한 라클렛트(Raclett) 라는 치즈와 함께 각자 여러 가지 재료를 작은 삽에 넣고 치즈를 얹혀 구어 먹는, 간단하고 재미있는 요리를 대접했다. 우리 아이들은 스키나 더운 해변으로 여행을 갔기에, 우리에게도 즐거운 이브가 되었다. 그녀는 너무나 즐겁다며, 평생 처음으로 남에게 음식을 대접 받았다며, 갈 때는 코로나 중인데도 껴안고 뜨거운 포옹을 하며 “너무나 고맙고, 사랑한다”고 했다.
벌써 10년째 병가 중이고 실업자보수를 정부에서 받고 있고, 매일 진정제를 먹고 있고, 한 달에 두 번씩 정신과의사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래도 독일 정부에선 매 달마다 일을 다시 시작해 보겠느냐? 고 물어오고, 그 동안에 스스로도 민박, 인터넷 쇼핑 등을 시도 했으나 지금까지 자립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의 일과를 물어보니, '에스키모'개하고 하루에 3번 산책을 하고, 독어와 영어공부를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고, 저녁에는 스마트폰으로 연속극, 드라마등을 2-3시간 씩 보고, 밤 12시에 취침해서 다음날 8시에 일어나는 생활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독일정부의 신뢰와 인간대우에 감동을 먹으며,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식사하는 중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선 이혼한 것도 비밀이고, 특히 신도들에게는 극비밀로 해야 하고, 양가 부모님들께서는 아직도 중책을 맡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씩의 행사에 버스에 꽉 차게 사람들을 모아야 하기에, 늙은 나이에도 여기저기에 가서 자원봉사도 하고 베풀어야하는 삶을 계속하고, 이젠 교주가 사망하면서 큰아들에게는 명예를, 작은 아들에게는 재산을 부여 했기에, 혼돈이 왔으나 그래도 무조건 복종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런 삶 을 살아야한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그녀의 3형제들도 다 그렇게 결혼해서 불평 없이 같은 행동들을 하며 살고 있다고 했다.
금년의 소원이 뭐냐? 고 물었더니, 금년에는 꼭 건강증명서를 받아 큰 백화점에 취직을 하던가(습관이 되어 밖에 안 나가면 배변을 못하는 개 때문에 그것도 큰 문제다! ) 집에서 홈쇼핑을 한국과 하던가(이미, 조그만 미니회사로 시도하다가 한국에서 짝퉁사고가 나고, 자기물건이 진짜라는 서류를 기한 내에 못 보내서, 지금은 문이 닫혔다고..) 아님, 부자인 백작한테 사랑으로 (평생 한번도 해 보지 못한..) 시집을 가고 싶다고 했다. (웃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보니, 얼굴도 귀엽게 생겼고, 체구도 멋있고, 애교가 있고, 위트도 있고, 아주 귀부인 같은 티가 났다.
요리 하기를 즐긴다는 그녀에게, 방편 숙제로 식혜를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았다, 오래전에 청정심 총무께서 팩에 든 엿기름가루를 사 주셨기에 지금까지 냉동에 넣었다가 꺼냈다. 우린 요즈음 전기밥솥이 고장 나서 할 수가 없다고, 핑계 대며.. 그녀는 그런 편리한 엿기름 팩이 다 있느냐고 크게 놀라며 한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안면암과 불교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니, 아주 좋아해하고, 자긴 딸에게도 (전 남편은 아직도 그 종교단체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함) 절대로 휩쓸려 세뇌되지 않도록 이야기를 해 주지만, 이젠 성인이 되었다고 말을 잘 안 듣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기에, 염려스럽다고 했다.
3일 후; 딩동 해서 나가보니, 큰 병에 식혜를 가득 담고, 다른 김치들을 한 가방,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찾고 원하던, 2인 용 미니 밥솥을 가지고 왔다. 선견지명이 있는 듯, 우리가 그렇게 찾았으나 못 찾은 앙증스런 밥통을 (딸이 쓰다 놓고 간...) 가지고 와서 활짝 웃었다. 그리고 좋은 소식; “다음 달부터 건강 증명서를 받아서 10년 만에 새 출발을 하기로 했어요” 하며 활짝 웃었다. 브라보! 용감하고 귀여운 여인, 그러면 그렇지... 일체유심조라! 그녀가 불교의 단어가 무서워서 어디로 도망갈까 봐 속으로만 몇 번 외웠다. 불보살님께 감사드리며, 그녀의 성공을 간절히 빌었다.
2022년 1월 9일, 독일의 소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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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요즈음 춤고 불안한 시기인 것 같아 슬프나 희망이 있는 글을 올립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같이 파이팅 해주세요. 눈내리는 독일에서 소양자드림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글로벌 원더우먼 ,소양자대보살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순식간에 단편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그 # 귀여운 여인의 삶이
매우 안타가웠지만
우리 모두가 잘 아시는 것처럼
이 또한 숱한 전생들의 인과응보입니다.
필시
옛 전생들의 악연은 완전히 끝났기에
소양자 대보살님 부부를 만났으며,
숙생에서의 선근 공덕이 남아 있었기에
이제는 일사천리 만사형통하리라 여겨집니다.
코로나19에서 해방되는 날
한국에 오실 기회가 되면
안면암에서나 포교당에서 안면암 여러 불자님들과 꼭 만나뵙고 싶습니다.
저의 작은 키와 가슴으로
'그 귀엽고 예쁜 여인'을 힘껏 안아 주겠습니다.
불행이여 안녕!~
슬픔이여 안녕!~~
희망과 행복이여 어서 오세요!~~~
불보살님들의 가호와 가피가 항상 늘 함께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인생의 폭 넓은 관조와
자비 실천력이
언제나 뛰어나신 대보살님의
삶의 지혜에 감사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좋은날오시길 두손모읍니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보살님 건강 하십시요 .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해탈심 대보살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큰슨님의 책, 그리고 나태주 시인의 시도 멋있어요.저는 댓글 등록에 문제가 생기네요. 이름과 비밀번호를 자꾸 다시 쓰라고 하네요. 댓글을 몇번 썼었는데 다 지워졌어요. 그럼 또.. 자연심합장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이럴 때는 참 난처하지요.
저같이 기계맹인 사람은 시간만 허비한 적이 가끔 있었으므로
결국 애들 신세를 져야만 했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합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 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Shoheinrich님의 댓글
Shoheinrich 작성일원만행 대보살님, 안녕하세요?? 보승화대보살님께서도 안녕하신지요?? 오늘 이곳 신문에 2050년까지 130세 사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해요. 건강만하고 행복하다면 150세도 좋지요. 항상 부지런하시게 댓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수무강하소서. 독일에서 소양자드림
원만행올림님의 댓글
원만행올림 작성일네감사합니다 사대가건강히 긴숫자를 관리해야잘사는인생의삶! 정신년령은 건강하십니다 . 자비하시고요 안타까운점은 육체의고! 격다가는 생노병사속의 순간들을 훌륭하신 날마다 발 세척해드릴때 보살님의 손과 몹을 떠오르곤 해요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원만행 대보살님, 그래서 아침마다 귀가 간질 간질 했국요. 파이팅!!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보살님 건강하시요
변호사 사무실 번창 하시지요
부처 거사님께서도 잘 계시고요
나태주 시인 방송에 나오셨어요
옥탑방...
지나가 방송 보기 방송사 사정으로
중단 되어 더 보지 못 했어요
광화문 교보 가니
나태주 시인의 신간 두권 있었어요
여행 자주 다니시는 대보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사업 번창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