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52 무애의 갖가지 풀이 > 2021년 12월 13일 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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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451회 작성일 21-12-13 07:15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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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악행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항상 탐욕으로써 스스로 잡아매어,
살찐 돼지처럼 떠날 줄 몰라
몇 번이고 포태(胞胎)로 드나드나니.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인생은 너무나 고(苦)요, 피로요, 불행이다.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서 어떤 흥미를 느끼고 생을 지속하여 가게 하는 것은
극히 일시적이요 부분적인, 사소한 사탕뿐이다.

052 무애의 갖가지 풀이
앞에서 우리는 사사무애事事無碍를 십현문十玄門에 의지해서 짚어 보았다. 십현문 전체를 하나하나 풀이하기보다는 상대적인 것들이 상호 의지, 내통, 호환, 무애 관계에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를 본 몇몇 독자들이 사사무애의 해석 방식이 너무 편향적인 듯하다고 지적해 왔다.
예를 들면 주와 종, 넓음과 좁음, 큼과 작음, 나타남과 숨음 등의 상대적인 개념들의 양편 역할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호환되고 내통되는 무애 관계에 있음을 보는 것이 사사무애의 전체 의미를 모두 밝히지는 못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상대적인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물들의 관계 속에 무애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반문이었다. 그렇다. 삼라만상 사사건건에서 무애가 있을 수 있다.
또 같은 일을 두고도 여러 측면에서 무애를 말할 수 있다. 무애의 분야와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질문을 듣고 보니 탄허 스님의 사사무애 해석이 생겨난다. 서울 안암동 개운사 법당에서 법상에 오른 스님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해몽 이야기로 예를 들었다.
한 해몽가가 꿈의 상징을 현실의 일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어느 꿈이든지 대기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고, 언제나 그것은 적중했다. 그 해몽가의 일이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나라에서는 그 해몽가가 혹세무민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호기심 많은 왕은 그 해몽가를 불러서 직접 만났다.
그러고는 꾸지도 않은 꿈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서 말해 주고는 , 그것을 풀이해 보라고 윽박질렀다. 여기에 덧붙여서 만약 제대로 풀이하면 상을 줄 것이거니와 그렇지 못하면 크게 벌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해몽가는 왕을 해치기 위해서 괴한이 왕궁에 침입해 들어오는 것을 예시하는 꿈이라고 대답했다. 왕은 속으로 잘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임의로 지어낸 이야기를 꿈으로 알고 그것을 풀이했으니 그 해몽은 엉터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헌데 그 궁을 지키는 경비대장이 헐레벌떡 들어와서 왕에게 괴한이 왕궁에 침입한 사건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해몽가의 풀이대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왕은 해몽가에게 지어낸 꿈 이야기로 어떻게 일어날 일을 예측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해몽가는 꿈이나 현실의 생각이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는 점에서 같다고 대답했다.
이 이야기를 끝낸 탄허 스님은 눈앞의 흙벽도 마음이 지어낸 것이니, 제대로 그 마음을 관하면 담 밖의 일도 앉아서 훤히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음이 물질적인 장애물에 아무 구애를 받지 않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사사무애의 한 면이라는 설명이었다.
선禪하는 스님들이 식識이 맑아진 상태에서 산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보는 예는 많다. 정진 중일 때, 절에 불공을 드리러 오는 신도가 수십 리 밖에서 오고 있음을 아는 스님들이 있다. 이런 현상도 탄허 스님은 사사무애의 원리가 활용된 예로 치는 것이다.
사사무애를 한 물건과 다른 물건이 서로 부딪쳤을 때 양쪽 모두 다치지 않고 상대를 통과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도 있다. 텔레비전 화면에서 갖가지의 그래픽들이 만나고 겹치고 벌어질 때 아무런 장애나 상처를 입지 않듯이, 현실의 사물들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컴퓨터의 모니터에는 모든 것들이 변화되어 가는 미결정의 상태에 있다. 물론 컴퓨터의 디스크나 메모리는 앞뒤를 가려 기억하고 저축하겠지만, 우리의 눈에는 어떤 고정이 보류된 상태로 보이는 것이다. 적어도 프린터에 인쇄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현실의 일이 컴퓨터 모니터 속의 것처럼 걸림이 없으려면, 우리가 그 현실을 미결정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물과 얼음을 고정된 것으로 보지 않고 미결정 상태의 것으로 본다면, 물과 얼음이 아무리 부딪치고 이리저리 변화되더라도 그 둘 사이에는 아무런 걸림이 없을 것이다. 삶과 죽음을 미결정 상태의 것으로 본다면, 어느 쪽이 드러나 보이더라도 그 둘 사이에 아무런 걸림이 없을 것이다.
사사무애는 공空과 유심唯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어떻게 풀이해도 좋지만 기본을 벗어나면 그르친다.
녹야청청綠野靑靑하던 나뭇잎들이
낙엽되어 뒹구는
추운 겨울이 되니
안면암 청정 도량의 본래면목이 멀리 가까이 훨씬 더 잘 보입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BBS 불교방송
"마음은 쉬지 않고 나무 사이를 타고 다니는 원숭이와 같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을 안정시키고 항복 받아야 한다."
ㅡ 증일아함경
< 마음 하나 > / 故 조오현 스님 ( 무산 설악 대종사, 신흥사 조실 역임 )
그 옛날 천하장수가
천하를 다 들었다 다 놓아도
빛깔도 모양도
향기도 없는
그 마음 하나는
끝내 들지도 놓지도 못했다더라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해탈은 구하지않으면 끈나는것을 나라는 허상에서부터 나온 무상 내 라는것이 있으려면 천만개도 넘는것을 무엇이 나인가 . 변하는것이 나인가. 깊이 관하면 없다 .즉 생각 아 집착에서온것을 무아를 꼭바로보아야한다 . 일체 구함이 없는 해탈 이것은 남방불교 때 소승 불교라한다 . 대승불교는 해탈후 다음 무아에서나온 반야다 .이몸은 파초와같아 빈 몸이다 .아지랑이같은생각 육체는 허깨비에서 반야가나타난 해탈 지견향 반야다 . 인간의 육체는 언제가는 생각과모습이 얼마못간다 망념이다 . 아생은 이진이라 소작이판 불수후유 .북방불교의 성불 극락 왕생 하는것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서해의 관음 성지 의 넓고 시원한 느낌이나의 가슴을 열어줍니다 건강하십시요.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아생이진 범행이립 소작이판 불수후유> ㅡ
"내 생명이 다하도록 청정하게 수행했지만 반드시 도를 이룬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천인 청정 경계의 수행은 이미 건립되었다. 부채을 상환하여 이제 아무런 채무가 없으므로 다시 오지 않는다."
대승불교에서 수행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합니다.
서해 관음성지 안면암은 언제 보아도 우리 중생들의 막힌 가슴을 열어 주고 있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