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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44 신해행증信行證 > 2021년 12월 5일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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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2,426회 작성일 21-12-05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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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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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할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을 부끄러워하면,

살아 이승에서 그릇된  소견이요,

죽어 저승에서 지옥에 떨어진다.


인격의 멸시를 받으면서, 일에 대한 약간의 기능으로 승리를 가지는 수가 있다.

더욱이 그 승리를 과시하고 자득(自得)한다.

누가 구제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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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4  신해행증信行證


앞에서 우리는 진여와 삼보에 대한 믿음을 살펴 본 바 있다. 이를 읽은 몇몇 독자가 문의를 해 왔다. 불교의 믿음은 서양 종교의 무조건적 믿음과는 다르다고 알고 있는데, 진여와 삼보를 믿는 방식이 절대자를 맹신하는 것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이었다.

     불교에서 믿음은 대단히 중요하다. <화엄경>에서는 믿음을 도의 근원이요 공덕의 어머니라고 가르친다. <법화경>에서는 보통 사람의 분별심으로는 불법에 들어갈 수 없고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믿음은 서양 종교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 그저 믿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앎, 실천, 체득이 겸해야 한다. 그래서 신해행증信解行證 즉 믿음, 이해, 실천, 체득이 한 단어가 되다시피 서로 붙어 있다. 또 신해信解 즉 믿음과 이해라든지 해행解行 즉 앎과 실천도 한 용어가 되었다.

     믿음과 앎, 앎과 실천은 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믿되 알아야 한다. 삼보 가운데서 법보는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그 기본은 연기緣起와 유심唯心이다. 삼라만법은 상호 의존의 상태에 있고, 마음의 분별에 의해서 개념적으로 규정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는 상태에 있다면,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공간적으로 의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시간에도 의지해야 한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상대의 변화에 의해서 이쪽도 변해야 한다. 시간도 찰라찰라 변하기 때문에 그것에 의지해서 임시로 존재하는 이쪽도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 영원히 홀로 존재하는 실체가 없는 상태를 공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임시로 존재하는 텅 진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인연법은 만법이 공한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지만, 이 공한 상태는 다시 세상의 모든 것이 서로 상대를 자신 속에 포함하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세상의 한 존재는 억만 가지 다른 존재에 의지해서 있을 수밖에 없는데, 상대에 내가 의존해 있다는 것은 상대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고, 내 속에 상대가 포함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지옥에 부처가 포함되어 있고 부처에 지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것을 성구性具라고 한다.

     유식설이 연기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 설명해 왔으므로 여기서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연기법의 아이디어는 공, 유식, 진여, 성구, 여래장 등으로 발전된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부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 전체를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믿기만 하는 것은 아직 완전한 믿음이 아니다.

     어떤 이는 인연법이나 유심법을 믿는 것과 타종교에서 절대자만을 믿은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연법은 부처님이 조작해 낸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의 존재 법칙이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알고 믿는 것과, 경험할 수 없는 것을 무조건 믿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알고 믿는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세상이 무상하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 무상한 오욕락만 더 얻으려고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무상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아니다. 유식에 의하면 시간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지어낸 개념일 뿐이다. 그래서 일념과 무량겁은 둘이 아니다. 그래서 일념과 무량겁은 둘이 아니다. 하나이다. 일념 속에 무량겁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무량겁이 일념이라고 말하면서, 기도하고 정진할 때 한 시간도 제대로 참아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앎과 행동 사이에는 큰 괴리가 있는 셈이다. 신해행증의 마지막은 불법을 증득證得하는 것인데, 여기에 와서도 의문이 생긴다. 해解의 앎과 증證의 체득이 어떻게 다르냐는 것이다. 이렇게 구별하면 쉽다. 해득解得은 남의 것을 빌어서 내 머리에 담은 것이고 증득證得은 스스로 깨달아서 심신으로 아는 것이라고 말이다.

     신해행증이 떨어져 있으면 가짜이다. 믿음 속에서 나머지 셋이 들어 있어야 하고 , 나머지 셋의 하나하나도 마찬가지이다.


        

 솟아 오르는 햇님과 
청량한 바닷 바람을 맞는
안면암 경내가 눈부시도록 찬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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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ㅡ  bbs  불교방송

이 몸은 물거품과 같아 오래 지탱하지 못한다.
이 몸은 불꽃과 같아 갈애(渴愛)를 일으킨다.
이 몸은 파초(芭蕉)와 같아 견고하지 못하다.
이 몸은 꿈과 같아 헛된 것을 생각한다.
이 몸은 그림자와 같아 업(業)을 따라 나타난다.
이 몸은 메아리와 같아 인연을 따라다닌다.
이 몸은 뜬구름과 같아 금세 없어진다.
이 몸은 번개와 같아 한시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

                                                                  출처 : 유마경


<  진신사리 (眞身舍利  >    /  홍사성 시집  「 터널을 지나며 」


평생 쪽빵에서 살던 중국집 배달원이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고아였던 그는 도와줬던 고아들 명단과

장기기능 서약서를 남겼습니다.



            ###########
            어제
            안면암 포교당  초하루 법회 마치고
            귀가하며 지하철에서 만난 시입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설봉 합장님의 댓글

설봉 합장 작성일

배달원이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푸는 부모와 같은 사람이었네요. 그가 보현보살이 아닌가요? 왕생정토하시길 기도발원합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설봉스님!~

위법망구하시느라
여념이 없으실 터인데
귀한 댓글 남겨 주셨습니다.

스님 말씀처럼 보현보살님 화신인 것 같습니다.
저 해탈심도 이제 각성하며
그분의 왕생정토를 기도발원하겠습니다.

나무대행보현보살마하살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올림님의 댓글

원만행올림 작성일

마음바탕이넉넉해야한다 .마하반야지혜는  한사사람도없이 다가추어져있다  .  다만  선지식이  끌어주는바  견성 한다  .  화엄은  법계    금강경은  여래  무소종  반야는  열반  법성 법신  기신논 진여  불생불멸  내마음굳게집착하여  부처님이가르쳐주는것을    모르는것이  미신이다  .망념된상을버리는것이  진심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눈부시게 사진이  저녁햇빛인지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마하반야바라밀
(ㅡ 분별과 집착을 떠난 뛰어난 지혜의 완성)을 위해
모든 불자님들은  내 마음을 굳게 하여 쉼없이 정진해야겠습니다.

아침 햇살이겠지요.ㅎ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 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