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51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 > 2021년 12월 12일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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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391회 작성일 21-12-12 06:26본문
< 법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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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세고 사나워 걷잡을 수 없는
저 '타마라카'라 불리는 코끼리도,
제가 사는 숲 속을 그리워하며
잡아매면 주는 밥도 먹지 않나니.
저녁 자리에 들 때마다 하루 생활을 총결산해 본다.
참회도 있고 격려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동일한 참회와 격려의 반복.
생활의 만성화다. 악연(愕然), 전율. . . . .

051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
화엄사상의 사법계四法界 즉 네 가지 법계 가운데서 우리는 앞장에서까지 사事법계 이理법계,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의 대강을 추려 보았다. 이번에는 마지막으로 사사무애事事無碍를 살필 순서이다. 사람은 누구나 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을 원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가고 오고 앉고 눕고 싶어한다.
육체적인 자유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사회의 관습, 도덕, 법, 직장, 재물, 권력, 명예, 색심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나와 똑같이 자유를 구하는 무수한 타인들이 있다. 내가 그들을 경쟁 상대나 출세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상대도 나를 그리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무애의 자유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상호간에 걸림이 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기 위해 있다는 것을 터득해야 한다. 사사무애는 사물간의 보완, 내통, 무애 관계를 밝히려고 한다. 이사무애와 사사무애의 차이를 전쟁 중에 아군을 확인하는 예로 구분해 보자.
내가 한 무리의 군인들을 발견하고, 본부에 무선을 쳐서 그들이 아군임을 확인했다면 그것은 이사무애에 속한다. 현실의 사물에서 본부라는 마음자리로 올라가 세상사가 마음의 무한연기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상대를 내 편으로 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본부와의 연락이 없이 상대를 아군으로 알아보게 되었다면 이는 사사무애에 속한다. 본부라는 원리를 들추지 않고 사물의 현장에서 바로 상대가 내 편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엄종의 십현문十玄門은 이 사사무애를 설명하려고 한다. 넓음과 좁음, 하나와 여럿, 숨음과 나타남, 작음과 큼, 짧은 시간과 긴 시간, 주인과 종 등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내가 만두 가게를 열었는데 최고의 만두 기술자 주방장을 채용했다 치자. 만두 맛이 좋아서 고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 경우 나는 사장이고 주방장은 나의 직원이다. 적어도 명의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안을 자세히 보면 다르다. 사장인 나는 항상 주방장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주방장이 만두를 무성의하게 만든다거나 일을 그만 두게 되면 나의 만두 가게는 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 내용적으로는 주방장이 주인이고 나는 그의 종인 것이다.
이 주종관계는 모든 사람을 괴롭힌다. 드라마에서는 종종 "때려 치워야지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그런가. 주된 이유는 주종 관계를 잘못 보는데 있다. 주종 관계를 고정적인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세상사 어느 곳에든 고정적인 주나 종은 없다. 어느 면에서는 상대가 주인이고 다른 면에서는 내가 주인이다.
이 "어느 면"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법계法界가 아닌가. 세상에는 남의 것과 비교될 수 없는 무수한 법계가 있다. 모든 사람은 각기 자기의 법계를 가지고 있다. 자기 법계에서는 자기가 주이고 남의 법계에서는 그가 주이다. 모든 면에서 주인 행세를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서 무너지고 만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의 윗사람에게는 혀로 땅을 핥을 듯이 아첨하고, 다수의 아랫사람에게는 독재자로 군림하는 비겁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어차피 한 면에서는 종이고 다른 면에서 주이다. 넓은 것과 좁은 것, 작은 것과 큰 것, 짧은 시간과 긴 시간의 관계는 앞에서 살펴본 바 있는 상즉相卽과 상입相入으로 풀어야 한다. 좁고 작고 짧은 것 속에 한없이 넓고 크고 긴 것의 견본이 들어 있다. 지구를 알기 위해서 세계의 도시를 다 방문해야 할 필요가 없듯이, 영원을 살기 위해서 시간의 끝까지 걸어가야 할 필요는 없다. 지금 여기에 시간 끝의 견본이 있으니까 말이다.
< 매서운 바닷바람 맞으며 한참 공사 중인 견고한 둘레길 올레길 >
( 불자님들, 독자님들의 마음이 벌써 달려가고 있는 듯합니다. )




# 55 계단

<동백꽃 꽃말> ㅡ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자랑' '겸손한 마음'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를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악을 멀리했기에 브라흐마나이며,
고요함의 삶을 살기에 사문이라 불린다.
자신의 더러움을 추방했기에 그러므로 출가자라고 한다."
ㅡ < 담마빠다 >
<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 / 故 조오현 스님 ( 무산 설악스님, 신흥사 조실 역임 )
내 나이 일흔둘에
반은 빈집뿐인 산마을을
지날 때
늙은 중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더니
예닐곱 아이가 감자 한 알 쥐여 주고
꾸벅, 절을 하고
돌아갔다.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산마을을 벗어나서
내가 왜 이렇게
오래 사나 했더니
그 아이에개
감자 할 알
받을 일이 남아서였다
오늘은
그 생각 속으로
무작정 걷고 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정신세계가 항상 맑고 깨어있어야한다 . 한닌가 참되데 모든것이 참되다 . 그 설 반야 하지말고 심중 반야라한다 . 반야는 모양이 있는것이 아니라 지혜는능력 성취 하기 위하여 밑음 나는 부처님말씀 행하겠읍니다 .삼세가없이 대지혜로써 수행하면 경정코 계정혜로 누린다. 항상 지혜슬기 있기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 동배곷 빨갛게 잎새위에서 아릅답습니다 . 올래길의 공사 ! 참으로 불사 저불사 하셨지만 두루두루 하시는 불사에 깁이 감사드리옵니다 옛말에ㅣ기내준공덕이 삼대가 가 가도록 가피가크다했는데 불국토 넓은 도량의 불사이어 세상에 어디 한점 불편없이 수고하시는 큰 마음의 수행에 저들은 감개 무량할뿐 ! 거룩하신 불법승 의 큰스님 의 따르시는 보살님들의 수행에 감사드립니다 . 마하반야바라밀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 반야 ㅡ 법(法)의 참다운 이치에 계합한 최상의 지혜를 뜻함
불교에서는 반야지혜와 함께
보살의 수행덕목인 육바라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을
가장 중요시하므로
보살님 댓글 덕택에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