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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19 부정과 긍정의 반복 > [석지명 큰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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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2,739회 작성일 21-10-30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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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281

말을 삼가고, 뜻을 지키고

몸으로 악한 행실 행하지 않고. . . . .

이 세 가지 업을 깨끗이 하면,

도를 얻는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우선 돼지 되어 정직을 배우고, 그것을 실행할 힘을 기르고,

그 다음으로 그것들의 고상화 미화를 위하여 신적인 애(愛)의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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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9     부정과 긍정의 반복 >  

우리는 앞에서 불전에 나타나는 부정들을 진속이제와 사구부정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그 부정되는 것들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볼 차례다. {금강경}을 읽다 보면 부처님은 일반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의 가치르 부정한다. 보시, 복덕, 불국토를 장엄하는 것 등이 일단 부정된다. {반야심경}에서는 부정이 더욱 극단적이다.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 감각 기관의 대상, 인식을 부정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간다.    

      부정은 계속되어서 미혹의 과정으로서의 12연기나 해탈의 과정으로서의 12연기도 부정되고, 불교 교리의 기본이라고 하는 사성제마저도 부정된다.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거자 부처님께 공양하는 보시는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보시만 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 보시만 하면서 살 수도 없다.

     보시하는 사람들보다는 남의 것을 얻거나 빼앗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 보시의 반대는 간탐이다. 보시하는 사람은 부처에 가깝거나 부처 쪽을 가는 사람이고, 간탐하는 사람은 지옥에 가깝거나 지옥 쪽으로 가는 사람이다. 보시하는 사람의 수보다도 간탐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다는 것은, 부처 쪽에 있는 사람보다도 지옥 쪽에 있는 사람의 수가 많다는 것을 뜻한다.

      중생들이 불보살에게 귀의하고 감사하는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불보살이 중생을 자신의 몸이나 자식처럼 생각하고 보살피기 때문이다. 중생이 부처가 되려고 하는 이유도, 불행한 나가 아닌 행복한 나, 작은 나가 아닌 큰 나, 거짓 나가 아닌 참다운 나를 얻기 위해서이다. 만약 중생심에서 이기심을 제거하고 나면, 중생들은 아무 의욕도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중생들에게 아무런 책임도 물을 수가 없게 된다.

     나라고 하는 주체가 없는 마당에 나의 책임을 거론한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작은 나를 부처가 되라고 하고, 남이 아닌 네가 부처가 되라고 할 때, 중생들은 움직인다. 이런데 나를 완전히 지운 부처만 존재할 가치가 있고, 이기심을 갖고 있는 중생들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중생이 무엇을 위해서 부처가 되려고 할 것이며, 부처는 무엇 하려 중생을 구제하려고 할 것인가.

     이전에는 암을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알았지만, 요즘에는 암에 걸리더라도 약 50퍼센트 정도의 사람은 살 수 있다고 한다. 에이즈에 걸리면 거의 다 죽는다. 우리가 암이나 에이즈를 치료한다고 하는 것이 암균과 에이즈균을 죽이는 일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람을 살려 두면서 병균을 선별적으로 죽여야 한다. 그냥 에이즈균을 죽이기로 말하면 병에 걸린 사람을 죽이는 것 이상으로 더 쉽게 에이즈 균을 퇴치하는 방법은 없다, 중생을 부처로 만드는 것도 중생심의 모두를 죽여 버리는 것은 아니다. 이기심을 완전히 없애는 것도 아니다. 이기심을 살려 두어야 내가 부처가 되고 내가 중생을 구제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그 이기심을 개인적인 것에서 우주적인 것으로, 혼자만 생각하는 것에서 자기와 같은 이기심을 가진 다른 이가 있음을 살피는 것으로 확대하려고 할 뿐이다.


     {금강경}은 한편으로 "집착과 상을 없애라."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보시하거나 불국토를 장엄하려는 마음을 내라."고 설한다. 상과 집착을 지우라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마음을 내라고 하는 것은 중생이 살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중생세계에 있는 집착과 상이라는 병균만 제거하려는 것이지 결코 중생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반야심경}의 부정도 마찬가지이다. 끝까지 읽어보면 부정되는 것들이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무소득의 지혜를 위해서 부정할 뿐, 중생세계의 가치는 그대로 남아 있다. 어떤 소득이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을 때, 나는 무너지고 공포에 떨게 된다. 가짜 소득에 대한 미련이 없을 때 공포가 없고 공포가 없을 때 진정한 나를 얻게 된다. 이기심의 부정은 보시이다. 보시를 부정하면 우리의 탐욕을 긍정하는 것이 된다.

     부정과 긍정을 반복하는  것은 중생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미혹의 병균을 제거하는 데 큰 어려움이 있음을 나타낸다. 보이고 들리는 것에 홀리지 않으면서 마음을 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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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부처님 말씀>
게으름은 곧
더러움에 이르는 길이요

부지런함은
깨끗함에 이르는 길이다.

마음대로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하는 것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길이요

한결같은 마음은
고요에 이르는 길이다.
                              - 문수사리정률경 -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가을  하늘
안면암
한폭의 그림 같고
시 같네요

설봉스님
좋은 풍경 찍으시느라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셔요

              정광월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보살님!~

역시 시인의 안목을 갖고 계십니다.

설봉스님의 예술 작품이 항상  늘 감동이지요.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육통삼명으로  대단한정신세계  육진통  누진통  일체미진 버뢰타파  타심통의 정신세계 시공을초월한    천안통  현재미래      숙명ㅡㅡ신족  선정즉도  선악을 볼지라도  자기마음이  어지러움이없다 .  내마음 무비 무악하여그릇된  악한마음 없이  이치알아서    자연스러운것이며    자기마음관조하여  모든악을짓지 아니하니  집착하면안된다  무소한자기공한데  빠지지 말고    적정함에빠지지  말고    너와나와동시에있다는  연기법  !      내본심을  보기위해서다  .직지보리요  진실을  보기위하여    불법은  밖에있는것이  아니라  내성품에있어  인격이  익어야한다  ,나무아미타불  .    하늘이  맑고깨끗하네요.  감사합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깜빡하여 돋보기를 집에 두고 딸네 와서 죄송합니다.
불법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성품 안에 있다는 진리 깊이 새기겠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