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거룩하신 나한전 석가모니부처님과 16나한님들 > 2021년 11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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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6건 조회 3,137회 작성일 21-11-10 06:45본문
<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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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수고와 괴롬을 끼쳐
거기서 내 공을 얻으려 하면,
그 재앙은 내게로 돌아롸
원망과 미움이 끝없을 것이다.
내 가슴속에 어떤 알 수 없는 하나의 힘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낀다.
비록 세상이 괴롭고, 어둡고, 귀찮고, 생존 경쟁이 심하다 하더라도,
내게 생명이 있는 한 그 힘은 내 속에서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선으로 향하려는 내 양심 ㅡ 숙명과 인과를 박차고, 오직 우주의 선도와 중생의 제도를 위하여 전진하려는 용기 있는 자비이다.
그러나 이 자비는 결국 '미타' 본원(本願)의 원천에서 솟아난다.

028 사유물이 아닌 본각
불자들은 석존의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긴다. 가비라성 싯달태자의 삶에 대한 회의, 출가, 고행, 성도가 없었다면 지금의 불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석존은 끝없는 무량겁 전에 이미 부처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사바세계에 몸을 나투었다가 감춘 것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일 뿐, 부처님이 태어나거나 죽는 일은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찌되는가? 싯달태자의 애욕, 번민, 발심, 결단, 고행, 마왕 항복, 성도 등은 모두 쇼였단 말인가? 어떻게 석존의 역사적인 행적과 본래 부처로서의 초역사적인 자재自在를 양립시키면서도 그 둘을 한줄기로 엮을 수 있는가. 석존이 무량겁 전에 성불한 본래 부처님이라는 것과 금생에 무척 노력해서 새로 성불했다는 것이 상충된다는 생각의 바닥에는, 어떤 이의 성불을 그 사람 개인의 것으로 간주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불경의 표현들도 이런 생각을 부추기기 십상이다. 가령 석존의 경우 성불하기 이전에 무량겁에 걸친 수행이 있었다고 한다. 석존이라는 한 주체에 과거의 수행이 축적되고 계승되지 않았다면 석존은 성불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또 미래에 성불할 것이라는 수기에도 반드시 무량업만생의 수행이 전제되어 있다.
그렇다 보니 어떤 이가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면, 그러나 아직 '나'를 가지고 있는 중생의 깨달음과, '나'로부터 완전히 해탈한 부처님의 큰 깨달음은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 중생에게는 개인적인 나가 있지만 부처님에게는 없다. 본각本覺 그 자체로서의 부처님 또는 법신불에게 있어서의 나는 전체 우주이다.
불교에도 법신法身이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인간 세계에 내려오는 화신사상化身사상이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기독교의 인격신사상 체계와는 완전히 다르다. 기독교의 궁극점 또는 신은 어떤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변덕을 부릴 수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법신에는 인격신적인 요소가 없다. 그래서 기독교와 대비해서 표현한 불교의 신관을 무신론적 범신론이라고 한다.
인격신을 부정하기로 하면 하나도 없고, 있기로 말하면 처처의 삼라만물이 모두 신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어느 누구도 'God'이라고 하는 최고신의 자리를 넘볼 수 없다. 아무도 최고의 신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 석존과 우리 사이에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점에는 아무런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이 말은 석존이 무량겁 전에 이룬 본각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과 함께 똑같이 공유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부처를 이루기 위한 노력이나 과정도 공평하다. 성불이 100미터 달리기라고 할 때, 석존은 구경만 하고 우리만 숨을 몰아쉬며 뛰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싯달태자의 발심, 고행, 성불이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모든 쾌락의 유혹과 고독의 공포를 굴복시키고 부처님이 된 것이다.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 낸것이다. 그래서 그를 세상에서 가장 높고 귀한 어른, 즉 세존이라고 부른다. 무량겁 전에 이룬 본각이 특정한 이의 고정적인 사유물이 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미혹을 깨달음으로 전환시키려면 업을 녹이고 욕망을 가라앉히는 수행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미혹과 번뇌가 한 번 물러가면 다시 오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아무리 쫒아내도 끊임없이 따라 온다. 존재는 바로 번뇌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팽이를 돌리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다. 수행이 멈추는 순간 깨달음은 미혹으로 바뀐다. 그러므로 찰나찰나 세세생생 새로운 수행과 깨달음이 이어져야 한다.
더이상 미혹이 발붙이지 못하게 할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은 불퇴전의 마음으로 수행 정진한다는 뜻이다. 할 일 없이 놀아도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석가모니부처님 가사에 문양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식 문양(연화당초문과 보상화문)을
고분기법으로 아로새겨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안면암 나한전 석가모니부처님이십니다. (2021년 11월 5일 자)
석불에 모시로 가사 입혀서 문양 넣어 개금한
거룩하신 석가모니부처님께
저절로 깊은 신심과 환희심이 솟아 오릅니다.
익살과 근엄의
새로 단장하신 16나한님께서도 덩달아 신이 나 보이십니다.
나한(羅漢) ㅡ성(聖)과 속(俗)을 잇는 영원한 성자
나한 사구게송 (四句偈頌)ㅡ 아생이진(我生已盡) 범행이립(梵行已立) 소작이판(所作已辦) 불수후유(不受後有)
생사를 이미 여의었고, 청정행도 이미 이루었으며. 해야 할 바도 이미 다 하였으므로 다시는 몸을 받지 않으리라.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내일초이레 법회 준비로 불기 닦는 중이어서 불기가 보이지 않습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부처님 말씀>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음을 알고 모든 집착과
탐욕을 버리며,
어디에도 얽매임이 없이
아무것에도 이끌리지
않는다면
그는 세상을
바르게 살아갈 것이다.
- 수타니파타 -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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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오늘날 까지 자업자득으로 이뤄진 이몸 판독할수없는 능력은 없지만 나하림들이 부럽습니다 . 사귀게에 뜻을 알고나니 부럽고 존경합니다 . 내업이 달라지면 세계가 달라지듯 업을고쳐야 불성과인과를믿고 이루기위해실질적으로 노력합니다 . 학또하고 행원으로 결과를 수용하되 나머지 부분을 회향하는 수행 입니다 . 열심히하여 결과를 나누고 전환시켜 항상 새출발하는 소유하면고통이고 회향하면 즐거운 행복은 잘 받아들이는것이 편안하다 .금란가사 석가모니 부처님 ! 거룩하신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저도 요즘 불광지 2021년 9월 호에서
표제인 익살과 근엄 사이 <나한>을 읽고 사구게를 처음 알았습니다.
나한전 참배하게 되면 정신과 자세를 더욱 경건히 하려고 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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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사진과 설명들 , 정말 아름답습니다. 또 휴가를 더 심해지는 코로나 때문에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덕분에 손발관리사로 열심히 뛰고 있습니다. 서울에는 벌써 눈이 내라고 선거때문에 요란스럽네요. 다 더 잘 살고 행복하라는 전조인 것 같습니다. 그럼 뵈올 때까지 건강하시고 부처되시길 빕니다. 독일에서 소양자올림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글로벌 원더우먼 소양자대보살님!~
너무 과찬이십니다만, 설봉스님께서 혼자 1인 10역쯤 하시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더이상 도와 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겨울 철이라 코로나가 더 심해져 휴가를 연기하셨다니 속상하시겠습니다.
대보살님께서는
지금까지 75년 간 성실근면하게 일생을 달려 오셨으니 손발관리사 역도 아주 보람되실 것입니다.
부디 젊은 날 간호사 때처럼 아픈 이들의 이웃과 친구가 되어 주시길 비옵니다.
저희 집은 따뜻해서 어제 눈구경 못했어요.ㅎㅎ
꽃피고 새우는 내년 봄날에
안면암 포교당에서
고운 마음씨처럼 더 밝고 건강해지신 모습 반가히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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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부처님 뒷면의 옴 자를 보며
모든 액난을 물리치고
선배 도반님들 건강하시고
하시는 모든 일들 성취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허허 지명 대종사님
건강하셔요
설봉.설몽
과천스님 법명이...
대종사님의 보필 하시며
도량 가꾸시며
추운 날씨 잘 지내셔요
정광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