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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30 불교에서 말하는 평등과 정의 > 2021년 11월 12일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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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2,298회 작성일 21-11-12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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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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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행할 일 힘써 행하고

마땅히 버릴 일 힘써 버려서,

스스로 깨달아 내 몸을 닦으면

바른 지혜는 날로 자라나리니.


악이 악임을 알거든 행하지 말라.

선이 선임을 알거든 행하라.

마음의 더러움은 없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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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불교에서 말하는 평등과 정의


앞에서 우리는 다겁생래의 끝없는 인연과 공에 근거해서 아버지를 죽인 아사세 왕과 세존을 해한 제바달다의 중죄가 용서되는 것을 보았다. 이에 대해 몇몇 독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해 왔다. 만약 죄와 불의를 전생 인과응보의 얽힘과 공에 의해서 처리한다면, 현실 세계에서 평등과 정의를 표현하는데 인간의 의지는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다.

    불교가 종교라는 것과 용서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 현실을 개선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의미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인연, 공, 성구, 법신사상에 의해서 우주의 시간 공간을 한 뭉치의 연결고리로 보는 불교의 입장에서 볼 때 죄를 들먹거리기로 말하면 세상에 죄 아닌 것이 없고, 죄가 없기로 말하면 그 어디에서도 죄를 찾을 수 없다.

    아무런 물질적 욕망이 없이 삶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남의 것 탐내거나 빼앗지도 않고 버려지는 것만 먹고 입고 쓰면서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람도 무엇인가 먹고 배설해야 한다. 주먹 한번 쥐었다 펴는데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균 목숨의 생사가 교차된다고 한다. 몸이 움직이며 사는 데는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다칠 것인가.

   불교는 세상 사람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고 하지 않는다. 인간의 모든 소유를 죄로 몰아붙이려고 하지도 않는다. 단지 죄를 말하기로 하면 모든 사람은 죄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법을 정하고 어디까지는 허용하고 그 이상을 금하는 것은 우리의 자의적 규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공사상에 의하면 세상에 똑같은 물건이 있을 수 없다. 설사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놓이는 공간과 시간에 의해서 다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세상에는 100퍼센트 같은 지문이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없다고 한다.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는 세상에서 동일한 것을 전제로 평등과 정의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우리의 업력, 복력, 수행력 등은 무량 백천만억 년의 다겁생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눈에 보이는 것은 빙산의 일각과 같다. 그런데도 금생 100년 미만을 기준으로 삼아서 억겁의 평등과 정의를 논한다면 부당하지 않은가. 죄를 지우고 보면 사랑과 미움이 모두 무량겁에 걸친 인연의 숨바꼭질일 뿐이다. 성구의 입장에서 끝없는 인연의 줄기를 생각하면 세상사는 모두 한 몸뚱이의 뒤척거림과 같다. 입은 먹는 일을 하고 발은 몸을 지탱하는 힘든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발과 입 사이에 불공평과 불의를 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탈락을 가른 속도 가운데는 10분의 1초 또는 100분의 1초가 자주 있다. 이 시간은 눈 깜짝 하는 사이보다도 짧다. 그러나 1등은 영웅으로 대접받고 다른 이들의 꿈과 노력은 어둠에 묻혀야 한다. 김동성과 전이경은 골인 지점에서 한 쪽 발의 스케이트 날을 번쩍 앞으로 내밀어서 금메달을 땄다. 그리고 우리의 영웅이 되었다. 한 표라도 앞서서 대통령에 당선되며 위대한 사람이 되고 낙선하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된다. 인간이 정하는 영광이라는 것이 이렇게 해서 생긴다. 죄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물론 죄의 경중과 과거 미래를 구별해야 한다. 과거의 죄에서는 전생을 생각하고, 미래의 죄에서는 인간의 의지를 묻게 된다. 과거와 미래의 것을 구별해서 하나는 용서하고 다른 하나는 금하며, 남과 나를 구별해서 남의 죄는 용서하고 나의 죄는 엄하게 따지는 것 그 자체가 바로 인간 의지의 위대한 활용이 아니겠는가.


    끝없이 연결된 무시겁래의 인연 실타래를 여실히 보아야 그것에 묶이면서도 자재를 얻을 수가 있고 자재를 얻을 때에 진정한 평등과 정의가 드러난다. 인간의 의지도 오직 성구의 인연을 여실지견하는 데서만 제대로 펼쳐질 수 있다. 거리에서의 외침이나 법정이 추구하는 평등과 정의는 오직 상대적이고 외형적인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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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나를 깨우는 부처님 말씀  ( BTN )>


남을 가르치듯 스스로 행한다면

그 자신을 잘 다룰 수 있고

남도 잘 다스리게 될 것이다

자신을 다루기란 참으로 어렵다

                                    ㅡ 법구경


<낙엽  /  박인걸>

나뭇잎이 머물던 가지마다

마침표가 하나씩 남았다.

맡겨진 역할을 끝내고

아름다운 종지부를 찍었다.


출발부터 종료하기까지

치열하게 내 달렸던 시간들

많은 사연들을 간직한 채

아쉽지만 자리를 비워야만 했다.


'은퇴는 허구에 불과하며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의미 있는 삶을 찾아 나거라.

인생은 마침표가 없다.'고 외치던

미치니 앤서니의 주장이 진실일까


중대한 착각이다.

길가에 뒹구는 낙엽을 보라.

차가운 겨울바람에

어디론가 흩어지는  저 낙엽을!

인생은 마침내 낙엽이 된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단풍잎이 벽에 그린  벽화 같아요
추운  날씨
설봉스님께선 잘 지내시나요
감기 조심하셔요
여긴 전철 속인 데도
추워요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보살님!~

예리하신 안목이십니다. 벽화처럼 그윽하고 아름답습니다.

갑자기 너무 추워진 듯하네요.

귀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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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  끝없이 연결된 무시겁래의 인연 실타래를 여실히 보아야 그것에 묶이면서도 자재를 얻을 수가 있고 자재를 얻을 때에 진정한 평등과 정의가 드러난다. 인간의 의지도 오직 성구의 인연을 여실지견하는 데서만 제대로 펼쳐질 수 있다. 거리에서의 외침이나 법정이 추구하는 평등과 정의는 오직 상대적이고 외형적인 것일 뿐이다." 오늘의 법문 감사합니다. 소양자합장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글로벌 원더우먼 소양자 대보살님!~

큰스님 법문은 대단히 심오하면서도
마음만 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감해 주셔 매우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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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