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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갈애渴愛 ㅡ 고통의 원인 >: [석지명 큰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불교 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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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2,975회 작성일 21-10-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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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268

이른바 인명(仁明: 寂默)이란,

입으로 말이 없다, 그것 아니다.

마음이 어리석어 지혜 없으면,

한갓 바깥 형식만 따르는 것뿐.


가장 무관심한 듯한 미소, 무비판한 미소

일체를 다 경험한 듯, 초연한 듯한 미소, 저의 조소에 가까운 미소.

그것은 기실 한 개의 의혹에 불과하면서, 학문으로 가장 부도덕한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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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애 渴愛 ㅡ  고통의 원인

앞에서 우리는 고집멸도 사성제의 둘째인 집集을 번뇌의 뭉치라고 보고, 번뇌 가운데서도 그 핵심을 이루는 것을 갈애라고 읽었다. 갈애가 고통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떤 이는 이런 질문을 한다. 종교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사랑과 돈과 명예를 구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가지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오욕락을 구하고 누리면서도 바르게 사는 건전한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면 불교는 불행을 초래하는 어떤 과도한 탐욕과 집착만을 특별히 경계하는 것인가 아니년 사회 구성원 전체의 보편적인 욕망마저도 문제 삼는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불교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불교가 지금 숨 쉬며 살아 이쓴 사람들의 생존 의미와 가치를 송두리째 지워 버리려고 한다면, 종교로서의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 물음은 현실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에게서 나온 것이다.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을 갈애라고 가르치는데, 고통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이는 그 원인으로서의 갈애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 질문이 지적하듯이 고통의 뿌리로서의 갈애는 특별히 넘치는 집착심을 뜻하는가 아니면 중생심 전체를 말하는가?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둘 다이다. 과도한 갈애뿐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애욕도 고통의 뿌리가 된다. 요즘 우리는 10대들의 폭력성과 난잡성을 문제 삼고 있다. 동료나 후배 학생들을 폭력으로 괴롭히고 선생님마저도 두들겨 패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자신들의 음란행을 시연하고 그것을 비디오로 찍어서 판매하는 남녀 중고생들고 있다. 60퍼센트 이상의 중고생들이 집을 나가고 싶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들을 염두에 두고 물어 보자. 저들에게 괴로움을 겪을 만한 원인이 있는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보릿고개를 넘으며 살아온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저 아이들은 괴로워할 만한 것이 없다. 부모들은 저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파출부로 나가거나 심지어는 도둑질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다. 돈에 쪼들리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는 큰돈 쓰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요즘 아이들은 예전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성적으로도 자유롭게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다. 여론조사 기관들도 청소년들의 남녀 접촉이 성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밝히고 있다. 민주 의식이 높아지면서 나이 어린 이들에 대한 인권도 과거에 바해 존중되고 있다. 어른들이 보면 저 아이들의 고통은 이해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집으로부터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고 한다. 고통이 사실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공연히 스스로 괴로워할 뿐이다. 왜 그런가?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그리워하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외로워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아무리 집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폭력을 쓰고 본드를 마시고 성적으로 발가벗어도 허전하고 괴롭다.  실제로 10대 포르노 비디오에 출연한 한 여중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두 번씩이나 반장을 맡았었다고 한다. 모범생이었다는 말이다. 한 순간 빗나가서 "될 대로 되라'"의 길로 빠져서 아무렇게나 살았지만 괴로움은 더해만 갔다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울먹였다.

저 갈애의 심원에서 나오는 이유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이 아이들에게만 있는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있다. 단지 어른들은 그것들을 적당히 조절해서 배설하거나 참아낼 줄 안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남보다 더 잘나고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무엇엔가 무아지경으로 빠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 모두 더 갈애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중이다. 


우리가 용케 갈애의 그림자로부터 잘 피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어찌할 수 없이 만나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죽음의 고독이다. 죽음은 누구나 혼자 가야 하는 철저하게 외로운 길이다. 나를 사랑해 주던 이들도 나를 버리고 가야 하고, 내가 사랑하는 이가 있어도 나는 그를 버리고 가야 한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이루어 온 모든 성취들도 버려야 한다. 이 죽음은 육신의 소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저가 없이는 살지 못할 것 같은 내가 저에게 시큰둥해지는 마음의 죽음 또는 변덕도 포함된다. 

불교는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어느 하나만을 위한 종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는 살아 있는 이들이 과도한 갈애의 탐착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치고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모든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안내한다. 고통의 원인으로 갈애를 드는 것은 결코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 위주의 갈애를 타인 또는 우주 중심의 자비원력으로 돌리기 위해서이다.




날씨가 차가워지자 아침 일찍 여명 속을 줄지어 날으는 기러기떼들!

장엄한 안면암 무량수전 위와 평화로운 부상탑 부근을

앞서가는 우두머리 기러기가 큰 소리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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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박목월 시  <이별의 노래>

기러기 울어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박목월  시인의 제자와의 사랑
그 부인의  따뜻한 보살핌...
동창들과의 주고 받는 카톡 속에 사연이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보살님!~

저는 무지하여
시인님과 제자와의 프라토닉 러브에 대해서 전혀 몰랐습니다.
그 부인의 따뜻한 보살핌은 대승적 차원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동창생 친구분들 참 좋은 인연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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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황혼속 위를  날으는 갈매기때들  은    어디로가는걸까요  ?  나무아마타불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오늘 사진이  더욱    깊이 느껴집니다  .  참으로  행복감  는껴봅니다  .  서로서로 아끼며  사는세상 이어라  ...관세음보살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 보살 원만행보살님!~

정말로 기러기 떼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저는 새들을 볼 때마다 매우 안락해집니다.

해탈열반의 세계가 불현듯 떠오르지요.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