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024 사성제를 보는 네 가지 시각 > [석지명 큰스님의 한 권으로 읽…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7건 조회 3,284회 작성일 21-11-04 07:36본문
<법구경>
286
'여름에는 내 여기서 살 것이다.
겨울에는 내 여기서 살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며
죽음의 이름을 깨닫지 못하는구나.
새까만 망각의 바다에 영원히 어두워진 우리의 많은 꿈!
그의 영원한 이별을 생각할 때,
당신은 눈물 없이 바라볼 수 있습니까?

024 사성제를 보는 네 가지 시각
석존의 기본적인 가르침인 사성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 불이가 얼마만큼 드러나 있느냐에 따라서, 현실의 고통, 그 원인인 번뇌 뭉치, 고통을 바로잡은 열반, 그 열반에 이르는 수행으로 이루어지는 고집멸도 사성제가, 네 가지 깊이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네 가지의 사성제 즉 사종사제는 실체적인 생멸에 기초한 생멸사제生滅四諦, 공사상에 기초한 무생사제, 유심사상에 기초한 무량사제, 성구사상에 기초한 무작사제다. 여기서 앞의 세 가지는 다른 종파에서 잘못 파악한 것이고, 마지막의 무작사제만이 사성제의 본뜻을 제대로 파악했다는 것이 천태종의 주장이다. 공사상이나 유심사상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공과 유심은 모든 불교 종파가 한 편에 치우쳐서 사성제를 잘못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멸사제는 삶과 죽음을 실제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여기에도 공사상은 있다. 그러나 그 공에 대한 이해가 분석적이다. 삶이 괴로운 것은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필경에는 무상한 세월에 의해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통, 성취, 실패, 삶, 죽음을 실체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공하다고 하는 것이 고통이나 죽음에까지 철저하게 적용되지 못한다. 분석적인 사고는 공을 받아들이더라도 무엇인가 있을 것이라는 기초 위에 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즐거움과 고통은 각기 둘로 나누어진다. 무생사제는 공사상의 지움이 철저하다. 생멸사제는 분석적으로 공을 파악했지만, 여기에서는 체달하는 공이다. 삶도 없고 죽음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을 철두철미하게 부정하고 지우다 보니 현실의 역사를 소홀히 대하게 된다. 공사상이 허무주의는 아니지만 공을 강조하므로 삶과 현실을 무시하게 된다. 공에 의해서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 즐거움과 고통 같은 상대적인 양극 개념을 지우기는 하지만, 공과 현실이라는 새로운 차별이 생긴다. 이 무생사제도 모든 차별에서 불이를 끌어내는데 실패한다.
무량사제는 모든 것이 마음으로부터 생긴다는 유심사상이 전제되었다. 참마음을 진여라고 하고 번뇌의 거짓 마음을 무명이라고 치자. 진여는 부처님의 세계이고 무명은 중생의 세계이다. 세상은 진여의 마음에 무명의 마음이 덮여서 일어난다. 무명만 없애면 고통의 세계가 그대로 극락의 세계요,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니다. 부처의 마음, 진여의 마음을 전제로 해서 세상의 모든 상대 개념과 차별을 극복하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실의 무명을 본래 없는 것이거나 앞으로 없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문제가 있다. 중생이란 번뇌 그 자체이다. 부처의 세계에서부터 지옥의 세계까지 십계 가운데서, 부처의 세계에만 진여로 가득 차 있고 나머지 9계에는 무명이 가미되어 있다. 진여만 인정하고 무명을 부정한다면, 오직 부처의 세계만 존재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나머지 아홉의 세계는 없어져야 할 것으로 여기는 셈이 된다.
결국 진여의 세계와 무명의 세계, 부처의 세계와 다른 세계 사이에 편가름이 있다. 여기에 진정한 불이란 있을 수 없다. 무작사제는 성구사상을 전제로 하면서 인위적으로 지어내는 것을 배격한다. 세상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진여와 무명은 처음부터 있었고 또 영원히 있을 수밖에 없다. 중생은 바로 무명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중생이 없다면 진여와 무명을 가르는 것이 무의미하다. 그 경지에는 진여라는 말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현재 눈앞에 펼쳐져 있는 중생의 세계를 무시하고 , 부처의 세계만을 인위적으로 가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무작無作이다. 궁극의 경지는 현실의 이 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석존의 본래성불과 삼라만물의 성구를 생각하면, 참과 거짓, 선과 악, 부처와 지옥은 본래부터 서로 포함되어 있다. 모든 상대개념은 둘이 아니다.
무작사제에서는 고집멸도가 따로 있지 않다. 현실의 고통을 바로 읽으면 그것이 바로 법신이다. 고통과 열반은 둘이 아니다. 고통 속에 그 원인과 해결이 다 들어있다. 마찬가지로 번뇌나 열반에도 각기 다른 셋이 들어 있다.

< 나한전 석가모니 부처님과 노란 국화 >
진여화총무님께서 보시한 5개의 국화 화분 중
하나를 안면암을 떠나오던 날,
안면암 강풍과 추위가 너무 염려스러워
석가모니부처님께 정중히 공양했습니다.
설봉스님과 불교회화 기능공인 김ㅇ현 불자님께서
사랑과 함께 정성껏 물을 주셨기에
아직도 건강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는 노란 국화입니다.
부처님 ,
설봉스님, 김선생님, 노란 국화님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부처님 말씀>
"한량없는 백천만업 겁 동안
부처님의 이름을 듣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부처님을 만나봄이랴.
그대, 부처님에게 능히 훌륭한 믿음을 냈으니 이와 같은 믿음은 실로 얻기 힘들다."
<덕호장자경>
[ 누가 바람을 보았으리 ]
ㅡ C.로세티
누가 바람을 보았으리?
나도 너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바람은 나뭇잎 사이를 스쳐 간다.
누가 바람을 보았으리?
나도 너도 보지 못했다.
그러니 나무들이 머리를 숙일 때
바람은 스쳐 간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새카만 망각의 바다에 영원히 어두워진 우리의 많은 꿈!
그의 영원한 이별을 생각할 때,
당신은 눈물 없이 바라볼 수 있습니까? -> 없습니다 ㅜㅜ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새카만 망각의 바다에 영원히 어두워진 우리의 많은 꿈!
그의 영원한 이별을 생각할 때,
당신은 눈물 없이 바라볼 수 있습니까? -> 없습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ㅇㄷ님!~
<새카만>은 <새까만>의 오타여서 미안합니다.
지극한 마음의 댓글 감사합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바람이 전하는 말 조용필 노래 가사가
나뭇잎은 많이 떨어지고
다음 주 부터는 추워진다고
쌀쌀한 날씨
감기 조심하셔요
그곳 과천 안면암 포교당
단풍이 아름답겠네요
내일 10월 상달
좋은 날 들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보살님!~
가왕이라는 조용필씨의
노래 제목만 들어본 적 있습니다.
벌써 겨울을 재촉하나 보네요.
저는 태어난 봄이 좋습니다.
10월 상달
모두에게 좋은 일만 생기기를 기대하겠습니다.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꿈을가진자는 행복합니다 .그 꿈을가진사람들이 함께하면 더행복합니다 . 그꿈을 실현하기워하여 함께노력하는삶은 더없는기쁨입니다 .우리들의 본분사가 기도임을 놓지말고끝까지정진하는 도반님들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나한님들의 단청이 예쁘겠네요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모두모두 건강하세요 .,원만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