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혹업고惑業苦 ㅡ 미혹의 윤회 세계를 설명하는 기본틀 >: [석지명 큰스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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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033회 작성일 21-10-18 08:19본문
법구경 270
이른바 유도(有道:성중聖衆)란,
하나의 생명만을 구하는 것 아니다.
널리 온 천하 두루 건져
해침이 없는 것을 '도'라 하나니.
잔학무쌍한, 독인(毒刃)을 쥐고 넘어진 적의 시체 위에 한 줌의 꽃을 던져 명복을 빈 여성이 있었다 한다.
여기에 일체의 이론을 버려라.
'사람'이 있을 뿐이다.

006 혹업고惑業苦 ㅡ 미혹의 윤회 세계를 설명하는 기본틀
우리는 지금 교리를 이해하는 데 키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지점에 와 있다. 미혹, 악업, 고통의 순환적 의존 관계가 바로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연기법의 기초이고 여기에 근거해서 윤회의 길과 해탈의 길이 설명되기 때문이다. 교리상 십이연기, 업감연기業感緣起, 아뢰야연기阿賴耶緣起, 진여연기眞如緣起, 법계연기法界緣起, 육대연기六大緣起, 성구연기 등 여러 가지의 연기설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이 흑업고 관계를 여러 각도에서 보충 설명한 것일 뿐이다.
고통의 원인이 갈애이고, 갈애의 원인이 업이고, 업의 원인이 미혹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미혹의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실은 원인과 결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흑업고가 서로 서고 로 원인이 되기도 하고 결과가 되기도 한다.
나는 바닷가에서 조그만 돛단배를 타던 중에 폭풍을 만났다. 바람이 거세지면 당연히 육지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엉뚱한 만용과 욕심이 생겼다. 그 폭풍과 씨름하면서 즐겨 보자는 것이었다. 바람이 갑자기 더 강해졌다. 나는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바람이 흐르는 방향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돛이 바람을 너무 많이 받은 나머지 배가 뒤집어지고 부서졌다. 큰 배의 도움을 받아서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뒤에 생각하니 내가 너무 멍청했던 것이다. 폭풍이 불면 바다에 나가지 않아야 한다든지, 바람이 강하면 오히려 바람 쪽으로 뱃머리를 향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떠올리거나 행하지 못한 것이다. 왜 내가 그리 바보짓을 했을까?
돌이켜 보니 나의 자만과 과욕이 판단을 흐리게 했고 잘못된 판단이 고난을 만든 것이었다. 이 세상은 욕망의 바다이다. 너 나 할 것 없이 크고 작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이 자기 것일 경우에는 아름다운 이상으로 보이고 남의 것일 때는 과욕으로 보인다. 내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우리의 마음에는 바른 판단이 나올 수가 없다.
평소에 우애를 나누며 잘 지내던 형제들도 부모가 많은 유산을 남기고 사망했을 때 체면을 벗어 던지고 더 큰 몫을 갖기 위해서 날뛴다. 재물, 애정, 권력 등이 눈을 가리면 사람ㅇ; 미쳐 버려서 어떤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다. 일류 대학 법대를 졸업한 한 수재가 자기의 결혼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도 음주음전 중에 사망한 일이 있었다. 아버지를 죽인 교수도 있고, 부인을 죽인 의사도 있다. 저들에게 지식은 넘치도록 많았다. 갈애의 탐착에 빠지면 바른 판단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미혹해질 수밖에 없다. 탐착하면 미혹하고, 미혹하면 악업을 짓고, 악업을 지으면 고통을 받는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악업을 짓다 보면 미혹해지고, 미혹하면 고통을 받게 된다거나, 고통을 받으면 더욱 미혹해져서 악업을 짓고, 고통은 더욱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미혹과 악업과 고통이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원인과 결과가 된다. 그렇다면 혹업고에 일정한 순서가 없는가? 있다. 다음에 십이연기를 공부할 때 보게 되겠지만, 미혹해서 악업을 짓고, 악업을 짓기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혹업고가 순서이다. 허면 이 논리적 순서가 시간적 순서와 일치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시간상으로는 동시적이다. 미혹이 있은 후에 업을 짓고 업을 지은 후에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미혹이 있는 그 자리에는 바로 업과 고통이 있고, 업이 있는 곳에는 미혹과 고통이 있다. 고통이 있는 곳에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미혹과 업이 있다. 이 셋은 항상 한 몸으로 붙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혹업고를 보다 정확하게 나타내려면 "미혹과 업에 찬 고통", "미혹과 고통에 찬 업" 또는 "업과 고통에 찬 미혹"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미혹과 악업과 고통은 생사윤회의 길이다. 불교는 윤회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그렇다면 해탈의 길, 즉 혹업고와 반대되는 길도 있을 것이다. 반야의 지혜, 해탈 수행, 법신안락法身安樂이다. 줄여서 반야, 해탈, 법신이라고 하고, 이 셋을 삼덕三德이라고 부른다. 미혹의 반대는 반야라는 지혜이고, 업의 반대는 해탈을 향한 수행이다. 그리고 고통의 반대는 우주의 몸인 법신을 사는 안락이다
.
혹업고 삼도는 윤회의 과정이 되고, 반야. 해탈, 법신의 삼덕을 해탈의 과정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혹업고 삼도를 삼덕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미혹을 바로 반야로 전환시키거나 고통을 바로 법신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의 악업을 수행으로 바꿀 수는 있다. 악업 대신에 수행을 하면 그 자리에 반야와 법신이 나타난다. 혹업고 삼도가 한 몸체이듯이 반야, 해탈, 법신도 한 묶음이기 때문이다.
차나무 꽃을 피우다.
불가(佛家)에서는 다선일치(茶禪一致)라고 합니다.
차밭을 일구기 위해 노심초사하시는
설봉스님께서 보내 주신
어제의 귀한 차나무꽃 사진입니다.
순백의 꽃에 노오란 꽃수술을 풍성히 달고 있는
차나무꽃 그윽한 향기가
안면암 바다와 산을 넘고 넘어 전국 방방곡곡에 전해지는 듯합니다.

아직은 대낮의 무더위가 한창인 9월 하순 어느날,
설봉스님을 도와
2인 1조로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밭에서 일하고 있는
중도화 보살님과 보타심 보살님이십니다.
배추 고추 가지 호박 토마토 깻잎 감자 도라지 고구마 등등
온갖 안면암 먹거리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시는 두 보살님!!
다음날은,
쏟아지는 궂은 비를 맞으며
온 몸이 젖은 채 아픈 다리와 허리통증을 잊고 차밭의 억센 잡초들을 뽑고 계십니다.

안면암 대소사 일에 언제나 늘 최선을 다하시는 매점 손처사님!~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넓은 들판의 맑은 호수는
비록 그 물이 맑고 깨끗해도
그것을 쓰는 사람이 없으면
호수는 스스로 말라 없어진다.
아무리 귀한 재물일지라도
어리석은 사람이 가지면
자기를 위해서 쓰지도 못하고
남을 위해 베풀지도 못한다.
오직 모으고 지키느라
매일 걱정만 하다가
죽음과 함께 귀한 재물을
잃어버리고 만다.
지혜로운 사람은
재물을 남을 위해 쓸 줄도 알고,
자기를 위해 쓸 줄도 알기에
그가 죽은 뒤에도
공덕이 지워지지 않는다.
- 잡아함경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무상한것이 집착을 멈추면 무슨 재미인가? 이것은 어리섞음 농담이라야., ..생멸이없으면 무슨 재미인가? ., . 이고득락 생멸이 즐거우면적멸이라 . 생사없는극락 ! 생사의 세계는 두렵지요 부지런히 정진하라 .생사에서 벗어나는 일을구하라 . 이것이 부처님의 최후의 가르침이다 . 인간의 자존심은 자기를 위하여서는 자기할일을 할때지켜준다 일승 신심 일승 수행 한길 닦는것이 천마디 만마디 해도 해탈이다 ,부처님이다 ,소승 불교 대승 불교 도 통합적으로 인연법을 말한다 .일승 하나의 지혜뿐 ! 의상 스님의 한길뿐이요 학문과 도력 으로 빛냈다 ? 법성은 너도나도 온갖법이 제법이다 , 제행 무상 생 멸법에 적멸이 즐겁다 , 나무 아미타불 차밭에서 수고하시는 설봉스님 보사님들 훈ㄱ속에 자연을 만끽 하며 건강 을 비옵니다 , ..남아미타불 감사합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 보살, 원만행보살님!~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마지막 유언이 "쉬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이셨습니다.
우리 중생은 죽는 날까지 수행정진을 해야 제대로 산 것이겠지요.
2,3년 후면
설봉스님께서 덖으신 맑고 깊은 차를 음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