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줌과 받음이 다르지 않다 > 2021년 9월 11일 土 (음 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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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252회 작성일 21-09-11 16:1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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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의 귀의할 곳을 만들라.
부지런히 힘쓰고 지혜로워라.
마음에 더러움이 없는 사람은
거룩하고 빛나는 하늘에 날 것이다.
어둠에서 어둠으로, 고독에서 적막으로 헤매며 허덕이는 나그네의 인생에,
어디엔가 광명과 위안이 있을 듯 느끼는 이 요구는
어디서 울까?

줌과 받음이 다르지 않다
한 종교단체에서 얼마 전 탁발행사를 했다. 수행자들이 거리에서 동냥을 한 것이다. 모아진 금전은 중국이나 북한
동포와 같이 지금 어려운 처지에 있는 동족을 위해 쓴다는 취지였다.
석가 당시 수제자엔 가섭이 탁발에 나섰다. 세상에는 많이 가진 이와 적게 가진 이가 있게 마련이다. 가섭은 부잣집만을 골라 동냥을 했다. 빈궁한 이가 보시를 하면 더욱 가난해질 수가 있고, 부유한 이가 보시를 하게 해야 세상의 물질소유 균형을 맞추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석가는 제자의 판단이 크게 잘못됐다고 꾸짖었다. 부자만 보시하고 빈자가 보시하지 않으면 부자만 공덕을 지을 수 있다. 부자의 영향력은 더욱 커져 더 큰 부자가 될 수 있고, 빈자는 점점 더 오그라들게 된다. 탁발은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복을 지을 기회를 주는 의식이다. 나와 남을 같이 생각하게 한다. 그러므로 골고루 찾아 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수행자들은 빈부를 가리지 않고 일곱 집 이상을 찾아다니면서 탁발하게 됐다.
눈이 오는 추운 겨울에 한 수행승이 산길을 가게 됐다. 헐벗은 거지가 바위 틈새에서 떠는 것을 본다. 그 수행승은 순간 마음속에서 갈등을 겪는다. 그냥 지나치자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기의 누비 두루마기를 벗어주자니 자신이 추위를 이기지 못할 것 같다.
망설이던 수행승은 크게 마음먹고 옷을 벗어주기로 결단을 내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거지는 수행승의 옷을 받고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말은 커녕 감사하지는 못할지언정 오히려 인사를 받으려고 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수행승은 그 자리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자세히 보려고 하니 이미 그 자리에 거지는 없다. 자신이 벗어준 옷만 가지런히 놓여 있을 뿐이었다.
불교에서는 연꽃의 특징을 이용해 '줌과 받음' 또는 '출발점과 도달점'이 둘이 아님을 깨우치려고 한다. 연은 진흙에게서 영양분이라는 원문을 받아 연꽃이라는, 중생이 좋아하는 모양으로 번역해낸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연꽃의 원문은 진흙이다. 번역을 좋아한다면 왜 원문은 싫어하는가. 연꽃을 좋아할 수 있다면 왜 진흙은 좋아할 수 없는가.
세상은 진흙이기도 하고 연꽃이기도 하다. 중생이 보면 진흙이요, 깨끗하게 보이는 진흙은 도달점이다. 세상은 진흙의 출발점에서 연꽃의 도착점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 우리 모두의 인생여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씨앗은 출발점인 진흙은 외면하고, 오직 최후 도달점인 연꽃에만 눈독을 들이는 데 있다. 삶을 제대로 맛보려면 진흙이라는 출발점에서부터 연꽃이라는 도달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부산행 또는 목포행 열차표를 구입했을 때부터 도착지에서 누리게 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스키장의 리프트에 걸터앉을때부터 눈 위를 미끄러져 내리는 스릴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주려고 하는 본능이 있다. 출세하려는 이는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려고' 하거나 최소한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려고'한다. 팁을 받는 업소의 종업원도 손님이 감사표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주는 이와 받는 이가 모두 주려고 한다. 설령 바로 주지 않더라도 다른 때에 주기 위해서다.
우리는 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멋있고 복되게 주느냐는 데 있다. 작은 보시의 출발점에서 큰 성취의 도달점을 누리느냐는 데 있다.
청명한 가을날씨의 안면암이
우리들의 마음을 한결 맑고 밝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불교에서는
<반야심경>에서
시제법공생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 . . 가르쳐 주십니다.
마찬가지로 줌과 받음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대소를 불문하시고 받으면 거의 다 그 이상으로 베풀어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보승화 대보살님께서는
옛날부터 불자들에게 엄청 나눠 주셨다고 하시더니
결국은 전 재산을 안면암을 위해 희사하시는 무량공덕을 지으셨습니다.
살아 오면서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훨씬 큼을 배웠습니다.
받는 기쁨은 마음의 빚으로 크게 자리잡기 때문이겠지요?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깨달음은 득견심성 심즉 상주 . 망념에서 벗어나는것. 보현시방 무량도 . 망념이 없는것이 깨달음 ! 수억 만년 살아온지금 생명의 감로를 얻어 외도를 항상 다 꺽어 항상 사람도 하늑ㄴ도 청정 하다 . 한량 없는 법 해의 덕에 감사하며 합장 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 무상법과대지혜로 활동해 진여 실상 을아니 장애가 없다 . 부증 불감 불생 불 멸이다 . 베풀 라 재수없으면 100세산다 .방콕 생 하면서 고독생 빈굔 질병 함께살면 재수없다 . 화엄경은 전부여래설법공덕 중생 을 깨우쳐주는 목적 ? 깨달음은 그 가지에서얻는것을 지식 개념 주장 생각도.... 청각의 이름이란 여래 10 호마다 중생의 제도하는것 여래출현 이 불가사의하다 . 여래 신업은 무궁 무진하다 . 무상법과 진여실상 을아니 장 애가없다 . 위의 큰스님께ㅣ서 써주신 글 옮겨주신 자비심설봉 스님ㅇ 해탈심보살님의 보현행 에대하여 두손모아 대자비심으으로 받겠읍니다 . 항상 한 우리 들의 불으로 거듭 거듭 한 수행 으로요 감사드립 니다 . 나무 아미타불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자비심의 설봉스님 은덕으로
우리 불자님들의 하루하루가 새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보살님께서 언제나 칭찬일색으로
애어(愛語)를 선물해 주시니 그 자비심에 감사 감사드립니다.
우리 불자들은 죽는 날까지 거듭거듭 작은 수행이라도 멈추지 않아야겠지요.
물론 독자님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만
먼후일?? 염라대왕님 앞에 섰을 때
사시나무 앞에서처럼 덜덜 벌벌 떨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