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비오는 날 고적한 산사에서 그윽히 퍼지는 노란 국화 향기 > 2021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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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279회 작성일 21-10-08 14:36본문
법구경
260
이른바 장로()란,
반드시 나이 많은 것만이 아니다.
얼굴이 주름지고 머리털이 희어도
그것은 하염없이 늙었다 할 뿐.
되도록 오래 살아서 생의 경험을 풍부히 하려는 사람.
그 눈으로 보아서는,
천하에 하나의 ‘새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김성동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이 책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 고려 인종시대에 난을 일으켜 대위국을 세운 묘청, 그리고 고려말 토지개혁을 하다가 보수기득권에 밀린 신돈 등을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하려고 노력한다.
궁예, 묘청, 신돈은 다 같이 공통점이 있다. 모두 승려였다는 사실과 그들의 꿈이 완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그들을 제압한 세력이 쓴 역사책에 악역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궁예는 비구 선종이었고, 묘청은 뒤헤 정심으로 이름을 고친 승려였으며, 신돈은 비구 편조였다.
미륵신앙을 중동지방에서 발달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표현을 빌려서 나타낸다면 메시아신앙이다. 저자는 미륵상생경과 미륵하생경의 사상을 구별한다. 즉 미륵상생경은 미륵이 머무른다는 도솔천에 가서 미륵의 이상세계에 도달함을 가르치고, 미륵하생경은 현세의 이 국토에 미륵불을 모셔서 성취하는 이상세계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신라불교가 미륵상생경 쪽에 기울고 백제불교가 미륵하생경 쪽으로 기운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륵하생경의 사상을 궁예, 묘청, 신돈이 실천하려고 했다고 본다.
저자가 그리려 한 세 사람이 다 같이 똑같은 정도로 미륵신앙에 젖어 있지는 않았다. 궁예는 스스로를 미륵부처라고 칭하고 두 아들을 청광보살, 신광보살이라고 부를 정도로 미륵사상에 빠져 있었지만,묘청과 신돈은 두드러지게 미륵사상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세 승려가 다 같이 ‘꿈의 나라인 미륵의 이상세계’를 자신들이 사는 국토에서 이룩하려 했다고 저자가 보는 이유는, 그들이 고통받는 백성을 착취하는 지배자의 힘으로부터 해방하려 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궁예와 묘청이 옛 고구려 땅의 회복과 중국에 예속된 현실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했고, 신돈은 토지개혁 등을 통해서 바닥 계급 사람들을 정치적 경제적인 고통으로부터 해방하려 했다는 것이다.
소위 ‘정사’라는 역사책에서, 세 승려 중 가장 탐욕스럽고 음탕한 인격으로 그려지는 사람은 신돈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 역사책이라고 하는 것이 정권을 잡은 세력의 이념적 합법성과 정통성을 얻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돈이 그를 처형한 사람들이 쓴 역사책에서 그려지는 음탕한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로, 신돈을 사형하는 사유 가운데 한 군데도 여자문제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저자는 또한 같은 시대에 살았던 신돈과 태고보우(1301~ 1382)를 비교하면서, 태고보우는 자신만의 고고청청을 위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구제할 생각을 내지 않는 안일한 일생을 살았고, 신돈은 자신의 성불을 연기하더라도 고통받는 중생의 구제를 우선으로 삼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태고보우는 당대의 대표적인 권문세족과 태도를 같이하는 불쌍한 백성보다는 기성 실세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라고 평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교묘하게 원효를 살린다. 역사책에서 위대한 인물로 그려지는 태고보우보다는 악한 인물로 그려지는 신돈이 훨씬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논리를 일관성있게 연장한다면, 신라시대에 권력의 비호를 받던 원효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저자는 원효가 시장바닥으로 숨어든 사실을 중시한다. 원효가 시장에서 광대춤을 추었다는 사실을 귀족을 위한 승려생활을 포기하고 일반서민을 위한 중노릇을 하기로 마음과 생활을 바꾸었더는 상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민대중이 가지는, 나름대로 문화와 진실을 추구하는 방법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해 한용운이 <조선불교유신론>이라는 논문에서 석가모니를 본뜬 불상만 남겨두고 산신, 칠성, 용왕, 천왕 등의 탱화나 동상을 사찰에서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거짓이나 미신 아닌 것이 없으며, 진리의 견지에서 본다면 이 세상 어느것 하나 법신불의 몸체가 아닌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배웠다는 자들’ ‘가졌다는 자들’의 문화와 진실한 삶을 추구하는 방법은 중요시되고, 가진 것도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 나름의 전통적인 문화와 방법은 미신이라는 이름으로 무시되어야 하느냐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땡초’라는 말의 어원을 ‘당취’에서 잡는다. 조선의 건국이념인 유교에 쫒겨 산속으로 밀린 불교가 서민대중과 삶을 함께할 기회를 갖고 ‘장길산의 농민전쟁’이나 ‘홍경래의 농민전쟁’ 같은 비밀결사운동을 벌이는데, 그 운동이 바로 당취라는 것이다. 자료미비를 이유로 저자는 당취의 조직과 활동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단지 그 비밀결사운동이 근세의 항일운동과 반민족, 반민중적 매판세력에 대항하는 운동으로 이어졌다는 점만 강조하는 데 그친다.
이 책은 불교교리 전체를 쉬운 말로 풀어서 구어체고 말하면서 아울러 신라시대부터 이어지는 한국불교의 흐름도 포착하고자 한다. 그리고 저자 자신이 서문의 첫머리에서 밣히듯이, 이긴 자나 가진 자의 편보다는 못 가진 자의 편에 서서 해방된 세계 즉 너와 나, 승리와 패배, 가짐과 못 가짐으로부터 완전 해탈한 꿈의 나라 미륵세계를 나타내고자 한다.
석가가 이 사바세계에 고통과 즐거움이 덧없이 교차되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이 세계를 고통의 세계라고 단정하고, 고통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 고통의 세계를 벗어나는 길이라고 말한 것, 즐거움보다는 고통 쪽에서, 기쁨보다는 슬픔 쪽에서, 혼잡보다는 고독 쪽에서 보아야만 세상을 더욱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계급을 나누어서 한쪽을 친구로 다른 한쪽을 적대시해야 할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나 얽어매는 자보다는 얽어매인 자 편에서 보아야만 세상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해서 이 책 저자의 방법적인 반골시각을 귀히 여긴다. 이긴 자에 의햇서 꾸며진 역사책만 보고 궁예스님, 묘청스님, 신돈스님을 알아왔던 사람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나한전 나한님들 보수 삼매에 빠지신 <김현ㅇ 불교탱화 기능인님>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고적한 산사에 가을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습니다.
대웅전을 오가는 중년의 보살님들이
노란 국화 화분에 코를 박고 향기를 맡습니다.
엊그제 진여화총무님께서 매점 손처사님 차를 타고 마트에 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사오신 다섯 개의 국화 화분입니다.
"아! 국화 향기 참 좋다."
"그래. 정말 진하구나."
흔히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하지만, 여자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가정사에서 잠시 일탈한 3,4명의 중년 여자분들이
가을 여행을 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한가롭고 여유롭습니다.
저는 아직 한번도 순례여행을 못했던
전국 4대 관음성지 여수 향일암을 참배하는 딸부부를 따라 마음은 부지런히 뒤쫒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여수 하일함의 ...'지금쯤 갓 지 가 엄청 맛있을텐데 ..'''국화가만발하는 가을의 이즈음 하얀 햇쌀밥 고돌비 무침 ..총무님께서 해탈심보살님과 수고가 많으십니다 .파도가 출렁 이는 바다의 해일이 눈에선합니다 .자유인 해탈인이되고자 하는것이다 . 사교입선 이치의 권장 알았으면버리고 선으로간다 . 계정혜 해탈 지견향 차향 이마음안에서 훈습한다 습관적으로 이마음 심성 가운데서찿는다 . 자비희사 사무량심 한량없는마음 발고여락 육바라밀을 행동으로베픈다 . 탐진치 불 덩어리를 버려라 .그것이 보시다 '허공은 걸림이없다 . 근심덩이 버리고 불심을즐기기 위하에 ...극락 세계다 . 불 교를 왜 밑는가 ? 아라한 과 성자가 된다 . 부처님과같이 윋대한 사상가 가된다 널리듣고배워서 스스로 본심을 알아 모든 부처님 분별않고 추호도..''? 나무아미타불 ' ' 감사합니다 . 건강 하세요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과거 불교계는 위정자들의 치세를 위하기도 했지만, 시대개혁을 위해 많은 밑거름이 되어주기도 했지요
21세기 불교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아메리카에서도 불심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정보회시대인 지금도 지구촌의 세계인은 여전히 가치관의 혼란속에 살고 있습니다
불교계에서 많은 깨달음과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