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영산홍 노래 (1942년) 104. 일천제가 법신을 해치지 못해 (월유품 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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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2건 조회 175회 작성일 25-05-04 08:51본문
104. 일천제가 법신을 해치지 못해 (월유품 3) 끝
일천제 즉 극악무도한 사람은 경계할 일이기는 하지만 일천제의 악행은 다른 인간이 가진 문제점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환상문학이라는 것이 있다. 환상문학은 질서정연한 삶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의 내면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이 품고 있는 사랑이라는 그릇에 담긴 악의 씨앗을 있는 그대로 찾아내서 그리려고 하다 보니까 다분히 비현실적인 면이 있게 된다. 환상문학의 대표자인 프랑스의 사드는 패륜적인 글을 쓰고 부도덕한 사디즘의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인간의 성격 욕망 같은 것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드는 환상적인 성적 도착을 통해 당시 귀족 사회의 허구성을 폭로하려고 했다. 사드는 프로이트 이전에 있었던 욕망의 해방자로 알려져 있다. 사드는 사랑에 관한 상상의 금기 사항들을 풀어 놓고자 했다는 죄목으로 거의 온 생애를 바스티유·벵센·샤랑통 등의 감옥에 갇혀 보냈고 말년에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드는 당대에 탕아로 버림받았지만 후대에는 그의 에로티시즘에 담긴 인간 내면의 진실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인간의 내면에 있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악들을 남김없이 드러내고자 했던 사드의 문학이 그가 죽고 난 뒤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사드와 일천제 사이에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악을 드러냈다는 공통 점이 있다. 사드는 환상적인 글을 통해서 인간이 가진 성적 도착증을 있는 그대로 글로 나타내고자 했고, 일천제는 인간이 가진 악을 행동으로 보이고자 한다. 한쪽은 글이고 다른 쪽은 행동이지만 양쪽 모두 인간 내면의 악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한다. 부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 얼마나 극악무도한 면이 많은지를 잘 아신다. 부처님이 악보다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짓지 못하도록 경계하고 악을 이미 지었으면 마지못해 그것을 용서해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천제가 저지른 악을 인간의 내면을 짐작케 하는 각본으로 사용하고 계신 것이다. 끝
비로전
아래 불이여래불 사이의 동산에서
<2569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하며
불타면서 피어 있는 영산홍
용왕수 곁의 관세음보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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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가르침}
“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
<잡보장경>
[영산홍 노래(1942년)]
-작사/조명암 작곡/이봉룡 노래/ 이화자
비오는 꽃서울 해가 지는 창변에
피어서 꿈을 꾸는 영산홍이여
바람에 지려거든 기달리는 사람의
다정한 가슴 위로 날려 지려나
가냘픈 노래로 지는 해를 보내면
분홍빛 가로등이 비에 흐르어
불러도 대답없는 영산홍의 하소연
보낼 길 없는 밤이 찾아옵니다
새빨간 영산홍 타오르는 꽃잎에
보슬비는 어쩌자고 흐득이는고
우는 건 어리석은 젊은 날의 벤치요
영산홍 꽃잎처럼 웃어오리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오늘 월만 거사님
셋 따님들과
안면암 과천 포교당
참석하시나요
무진성 교수님과
초파일 마다 오셨는
생각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