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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닦음이 바로 깨달음 > 2021년 9월 12일 일 (음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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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3,000회 작성일 21-09-12 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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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제 젊은 때를 이미 지나,

염마의 곁에 와 가까이 섰다.

그러나 가는 중간 머물 곳도 없구나.

또 너는 앞길의 노자도 없구나.


해는 어느새 서천에 비꼈는데

북을 울려서 목숨을 재촉하네.

저승 가는 길에 나그네집 없거니

아아, 오늘 밤 어디서 쉴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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닦음이 바로 깨달음


        매년 성도재일(成道齋日)을 맞을 때마다 만나는 좌절이 있다. 많은 불자들이 성도재일을 기념해서 철야정진을 하면서도, "나도 석존처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확신과 "나도 반드시 도를 이루어야겠다"는 강한 의지의 원願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들이 부처를 이루겠다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은 석존이 이룩한 궁극적인 도의 깨달음"을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것으로 신비화해서 포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道, 즉 참 삶의 길을 깨닫는다"는 말은 인식 면에서 '안다'는 뜻을 뛰어넘어 몸과 마음으로 '실천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실천은 물론 수도修道를 의미한다. 아함부전유경箭喩經에서 석존은 이점을 분명히 밝힌다. 석존은 우주의 시간적 공간적 시작과 끝 또는 사후死後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침묵을 보이면서, 우리를 독화살에 맞은 사람으로 비유한다. 독화살에 맞은 사람에게 가장 우선 취해야 할 조치는 그 화살을 뽑는 것이듯이, 우리가 우선해야 할 일은 윤회의 길을 뛰어넘어 열반의 길을 닦는 것이라고 말이다. 석존에게 성도成道는 바로 수도修道요 수도가 바로 오도悟道다.

   보조국사 普照國師 지눌의 '돈오점수(頓悟漸修, 깨닫고 나서 점차적으로 계속 닦아나간다)'를 대하면서 '돈점'을 시간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돈오돈수(頓悟頓修, 한번 완전히 해탈하면 더이상 닦을 필요가 없다)를 말하는가 하면 다른 이는 보조국사의 주장을 옹호하기도 하지만, 모두 다 깨달음과 수행 사이에 시간차를 두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보조국사의 가르침을 자세히 살펴보면 '돈점'이라는 말은 논리적인 의미에서 쓰였지, 시간적인 의미에서 쓰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깨달음과 수행 사이에는 논리적으로 선후先後가 있을지언정 시간적으로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깨달음은 바로 닦음이고 닦음은 바로 깨달음이 된다. 

    요즘의 선사禪사들이나 옛 조사祖師들을 막론하고 법상法床에 오르기만 하면 "네가 있는 그대로 부처다"고 외친다. 보조국사도 마찬가지다.  부처가 중생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오직 스스로 부처임을 깨닫지 못하고 부처의 행을 짓지 않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바로 닦음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어떤 조사는 이런 말을 한다. 찰나 동안 마음과 몸으로 부처의 행을 지으면 찰나 동안 부처요, 하루 동안 부처의 행을 지으면 하루 동안 부처요, 영원히 부처의 행을 지으면 영원히 부처라고. 깨달음이라는 것이 한번 얻으면 여의주와 같이 신통력을 발휘하는, 영원히 고정적이고 실제적인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닦는 행동 그 자체라는 뜻이다.

    불교의 수행이 지니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깨달음의 내용을 석존에게 바치는 것이요, 성불을 연기하는 것이다. 다불多佛을 주장하는 불교에서 석존 이후에 한 사람도 부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석존 이후에 한 명도 도를 깨달은 사람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를 얻은 모든 불제자가 이 사바세계의 교주敎主이신 석존에게 자신들의 깨달음을 모두 바쳐왔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보살사상을 예로 들면 지장보살의 원력願力은 이 세상의 고통중생들이 없어질 때까지 성불成佛을 미루는 것이다. 그런데 깨달음을 바치는 일이나 성불을 미루는 일이 바로 지혜를 구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 그 자체다.

    석존의 깨달음은 정토(淨土,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에서가 아니라 예토(穢土,이승)에서 필요하다. 상호불신과 무질서 부도덕으로 꽉 찬 이 국토에서 석존의 깨달음과 그에 의한 닦음이 절실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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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부처님께
깨달음을 바치는 일이나
성불을 미루는 일이
바로 지혜를 구하고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 그 자체라는 것을

오늘 이 순간이 되고 나서야  겨우 가까스로 배우고 말았습니다.

무명(無明)에서 한 발자국 멀어지는 소중하고 귀중한 찰라입니다.

마음이 청정하면
이 사바세상은 예토(穢土,이승)가 아니라 시시처처 어디에서나 정토(淨土)입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염마 = 염라대왕
오늘에야 알았네요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ㅇㄷ님!~

관심과 성의로 열심히 읽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염라대왕님이 무섭지 않도록 선량하게 살고 싶네요.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깨달은    사람은 앉은 자리에서    마음을 청정케한다  ..  아미타불 부르면    시언사구    자세이들어라  분명 히 극락세계가머지않다  .지혜있는상근기 사람은  인유양중에  진 리는하나다  .다함이없는  염불해야한다  .  아는마큼  부처님법  전하라 .. ...  부천ㅁ  가르침은  세간과  떨어진  것이아니다  .  나가  부천ㅁ께서  내가 어떠게  말하였기에    못 알아든  나!  ,다함이없는  염불  해야한다  .  불가전법  소행 무애  운전할수없는  버을굴린다 .    지정각세    헤아리수없는지혜  목전  명견  눈앞에서다본다 .  보견삼세  !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다함이 없는 염불이 되어야 하는데 저는 신심이 너무 부족합니다.
장차 이 말씀 잘 새기고 싶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지혜는 오직 부처님의 무상정등정각뿐일 것입니다.

목전명견 ㅡ 눈 앞에서 본다.

눈이 있으되, 귀가 있으되
내 앞의 무정설법을  전혀 들을 수 없으니 심히 유감이지요.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