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도시 마부르크에서 살다 간 4명의 유학생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8건 조회 6,169회 작성일 21-08-08 16:15본문
코로나를 이겨낸 녹색 '마부르크' 도시
독일도 코로나가 줄어들더니, 장마에 피해를 입은 도시가 많다. 원인은 자연 파괴의 결과이고 설마 하고 사전 준비를 안 했고, 갑자기 전기가 끊어지니 연락이 서로 안 되어 아깝게도 170명이나 사망하고, 아직도 복구 중이다. 다행히 국가에서 빨리 도와주었고 도와준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오지 말라고 통제하고 있다. 수해 지원 모금도 많이 모여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 연기 사상 이다. 이 와중에도 천천히 욕심 부리지 않고 항상 녹색과 희망을 보여주는 도시, '마부르크'를 방문했다.
우리가 사는 헤센 지방에 속하는 '마부르크'는 아주 유명한 대학 도시이고 ( 124 Km2 면적에 인구 8만, 그 중에 대학생 수가 2만 5천이고, 유명 교수가 370명이다.) 녹색과 무공해로 유명하고 온 도시를 걸어서 다 볼 수 있다. 교육의 최고 첨단 시설과 대학생들에게 좋다는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다. 공해가 심하다는 이유로 아우토반(고속도로) 에서 일부러 50Km 떨어지게 시민들이 오랫동안 데모를 해서 이겼고, 우리가 보기엔 약간 가난해 보지만 행복한 도시 생활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시내에 많은 쫄쫄 물이 흘러서 더운 줄을 모르고 습도를 조절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줄어든 화창한 일요일에, 차로 약 100 Km를 달려 가보니, 예전보다 변한 게 별로 없었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더 많아졌고 길거리의 집 앞에 갖은 물건들을 내놓고 ”필요 하신 분은 가져가세요.” 라는 쪽지 들이 많이 보였다. 신기해서 자세히 보니, 빵, 옷, 신발, 부엌 용품, 심지어는 중고 VW 자동차까지 선물한다는 쪽지가 있었다. 눈물겨운 감동을 주는 지상 낙원 같았다. 1년 만에 오픈 한 음식점들은 두 번 백신 맞은 이와 코로나 병을 이겨낸 자, 그리고 48시간 내 음성으로 나온 자만 밖의 자리에 받아주고 있었다.
그 도시의 유명하거나 오래된 건물들은 '리모델링'해서 다 대학에서 쓰고 있었다. 특히 서울의 남산 같이 보이는 그 도시의 산꼭대기에 있는 '필립 '성도 대학 건물이다. 마침 야외 전시회도 하고 누구나 들어 가 관람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건물 벽에 유난히 빨간 큰 하이힐이 걸려 있었다. 만약에 한국의 서울대학교에 그런 전시회를 한다면, 여론이 어떨까? 생각해 보며 재미있어서 혼자 크게 웃었다. 이 도시의 어머니 격인 '엘리자벳 '성당은 로마닉, 고딕 스타일로 잘 보존 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유료(성당이나 교회에서 입장료를 받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 로만 볼 수 있는 묘지에는 역사적인 유명인들의 무덤 들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청정 도시에서 힘들고 재미있게 유학을 하다가 간, 한국의 네 가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첫째 종교 학자 태자 이야기; 수녀 아님 비구니 스님이 되려고 했다가 어쩌다 한 생각 때문에, 35살의 노처녀가 마부르크로 공부 하러 왔었다. 대구의 어느 유명한의사 딸이었다. 그 당시 에 기숙사는 너무 비싸고 얻을 수가 없어서 임시로 펜션에서 살면서, 그 '엘리자벳 ;성당에 가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를 했단다. “제발 방 좀 하나 얻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가 이루어졌다. 우연히 옆에 있던 어느 독일 여인이 가엽게 여겼는지 방을 하나 줄 수 있다고 했다.
태자는 너무 기쁘고 황공해서 당장 성당 안에서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고마워요. 제가 당신의 종이 될게요. 무엇이든지 시켜주세요” 라고 선언을 했다고. 그 독일 여자 분은 깜짝 놀라며 “어마나 ! 빨리 일어나세요. 신 앞에서만 무릎을 꿇는 거예요” 하며, 무척 무안해 했다고... 그 후 좋은 인연이 되어 그 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녀같이 아주 잘 지냈다. 우리 부처 신랑이 그분의 유서까지 써 주어, 태자는 집 한 채를 선물 받아서 그 임대비로 유학비를 충당하고, 편하게 공부해서 학위를 딴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둘째 최 교수 이야기: 성균관 대학의 교수로, 법학 박사를 하러 가족과 함께 왔었다. 시인인 부인과 아들 둘을 데리고... 이 분은 준비를 열심히 잘 해 가지고 와서, 2년 만에 학위가 끝났다. 지도 교수께서 “그렇게 너무 빨리 하면 훼스트 후드 박사 학위처럼, '싸구려 '라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실무 경험도 해보고 여행도 좀 하고 가라고 1 년을 더 연장 시켰다. 이분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존경을 받았는지 한국의 위상을 아주 높이기도 했다. 최교수눈 아직도 명예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때는 경제적으로 원만치 않아서 내 꼬마 차를 빌려주었더니, 그 차로 영국까지 다녀왔다. 영국에 가서 기름을 잘 못 넣어 사고를 쳤으나 잘 해결되었다. 아이들을 오자마자 독일 학교에 보냈는데, 들어가자마자 독일어가 필요 없는 과목은 (수학, 예술, 체육, 영어 등..) 다 A 점을 받아와서 자랑스럽고 감동이었다. 어머니께서 한국어를 잘 가르쳐주어 귀국해서 아무 지장 없이 잘 따라가, 지금은 아들들이, 물리학, 법학 박사가 되어 아주 잘 살고 있다. 지금도 우리가 한국에 가면 옛날이야기를 하며 많이 웃는다. 모범적인 아주 행복한 가족이다. 작은 아들이 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최신 벤츠 한대를 선물했다. 여행 중 어머니가 “나도 저런 빨간 벤츠 한번 갖고 싶다” 고 했다나...
셋째 15년짜리 늦깎이, 유학생 이야기; 그는 박사 학위 하려 왔다가 거의 50살이 되어 귀국했다. 어머님은 산부인과 의사, 아버지는 법대 교수였고 외동아들로 Y 엘리트 대학을 나온 L. 은 너무 욕심을 부리고(?) 너무 잘 쓸려고 하다가 결국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으며 박사 논문을 힘들게 썼다. 모교에서 5년이나 교수 자리를 비워 놓고 그를 기다렸고, 한국에서 결혼할 규수 감도 수 없이 놓쳤다.
상기의 최 교수에 말에 의하면, 그는 박사 논문의 서론만 100 장을 쓰곤 더 이상 진전이 안 되었다고. 그분은 나이 35세에서 50세가 될 때까지 머리에 든 이론은 많았으나 총정리를 못 해 그렇게 지옥에서 살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기적적으로 학위를 받아 귀국해서 지금은 교수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휴가 때 그분을 만났는데 “내가 독일 유학한 사람 중에 독일어를 제일 잘 한다” 고 폼을 내고 있었다. 아직도 철이 안든 것 같다. ( 웃음)
넷째 '해피 앤딩 케이스' 진국과 영아 , 욱이 이야기;
이 가족은 너무나 정이 들었고 아주 인간적이기에 도와 준 보람과 행복을 지금까지 누리고 있다. 진국은 공룡 자국이 있는, 우리나라 끝에 있는 고성 태생이고, (어려서 집 앞이 바로 바다라서 눈만 뜨면 항상 멱을 감고 자랐다는..) 영아는 부산 태생인 독문학 박사이다. 아들 욱이는 아마도 우리 집에서 만들어진 아이 같다.(웃음) 독한 법률학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온 진국은 독일에 오기 전에 조교로 있었던 영아를 꼬였단다. “네 손금을 보니 팔자가 사나워서 나 밖에 도와 줄 사람이 없다” 라며.. 그래서 '푸로포즈' 를 해서 결혼을 하고, 영아가 학비를 벌어서 독일로 보내주게 했다.( 요령도 좋지요??)
진국은 처음에 우리에게 오더니 '영화배우 탈랜트' 같이 잘 생긴 멋쟁이가(나는 아직도 , 진국이가 영화배우가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 만나자마자, “집에선 80세 넘으신 노부모님께서 자기만 기다리고 계시고, 아내, 영아는 여기에 올 비행기 표가 없어서 신혼인데도 못 만난다” 며, 펑 펑 울고 있었다. 그래서 우린 얼른 장학금을 신청해 주고, 우리 사무실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며 도와주었다. 그러더니 방학 때 영아가 활짝 웃으며 다녀갔다. 그 다음에는 아들, 욱이가 부산의 친정에서 태어났는데 우유 값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도와주며 그냥 허물없는 부양가족으로 삼아버렸다.
양아들, 진국은 대학교에서도, 거의 매일 같이 지도 교수 비서에게 가서 울먹거리며 “교수님께 제 논문 좀 빨리 봐 달라고 해 주세요.” 하며 졸라 대서, 지도 교수님도 골치가 아팠는지, 결국 3년 만에 형사법 학위가 끝났다. 그러자 한국에서 시간강사 자리가 나와서, 나오는 장학금도 다 쓰지도 못하고 귀국했다. 지금은 수원의 A 대학에서 인기 중에 형사법을 강의 하고 있다. 영아는 이젠 아파트 주인이 되었고, 자원 봉사를 하고, 욱이는 벌써 경희 대학교의 4학년이 되었다. 진국이는 어떻게 잘 가르치는지 로스쿨 시험 률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단다.
그래서 예전엔 항상 녹색이고 마음 편한 마부르크엔 아주 자주 다녔는데, 오랜만에 또 가보니 추억이 다시 새로웠다. 코로나도 문제지만, 한국에선 독일어가 인기가 없어져서 독일에 유학 오는 이가 없어져서 안타깝다. 그래도 지구와 세상은 돌고 도는 것, 언젠가는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들 와서 좋은 점 많이 배우고 우리도 좋은 경험을 했으면 더욱 좋겠다.
2021년 8월 8일, 독일의 소양자
댓글목록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상기의 '마부르크' 도시는 ' 후라이부르크' 와 함께 녹색정치로 이론과 실천을 시도하는 독일에서 모범적인 무공해도시 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절약 하고 ( 법정스님의 아이디어!!) 자연에 고마워하고 현재를 즐기고 장래의 고사리 자손들을 위해 먹척스럽게 싸우며 자연을 보호하며 평화롭게 사는 도시입니다. 경제적으로만 생각하고 생태를 파괴하는 부르조아 생활은 이제 그만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또 세상은 이상하게 요즈음은' 메타버스'니 ' AI ' 세대가 왔다고 난리입니다. 무식하고 무명한 저는, 로버트가 아바타로 되어 우릴 살게 해주고 도와준다는 게 어쩐지 거북합니다. 그리고 로버트는 겨우 가르쳐서 배운것만 알고 행봉하기에 , 갑자기 일어나는 상황에 대처하는데 불가능하고, 데이터를 분석해야하기에 대답이 느리고 , 사회와 인간에게 연결해주는 인연과 연기를 모르기에 , 인간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고 , 결국은 혼돈과 빅뱅을 자초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 우리 도반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럼 또... 독일에서 소양자올림
조재희님의 댓글
조재희 작성일
좋은 일 많이 하셔요. 불자 독일 보살님
자랑스러워요. 글도 고맙습니다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조재희님, 감사합니다. 첨 뵙는 것 같아요. 칭찬까지 해주셔서 힘이 납니다. 독일로 여행 오시는 분이 있거나 유학 오고싶은 분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이곳에선 독일어만 통하면, 아주 공부하기도 쉽고 , 살기도 좋습니다. ( 웃음) 그럼 만수무강하세요. 독일의 소양자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독일 유학 많이 가던데요 학비...
성악.법학
보살님 9월에 오신다니 국내 사찰.큰스닝
많이 뵙고 건강하셔요
미국 필라델비아 계시는
지월 홍보살님 께서도
거사님
거북이 등 같이 생기신
유라 할아버지가 거사님 등 모습
부자되는
홍보살님
속히 한국 오심을 기다려요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고
기쁨으로 가득 차시길 바랍니다
의대 두명이나 손녀들
축하드립니다
보살님의 부처님과
큰스님들 향한 거룩한
보살핌이
모든 액난 물러나고
좋은 일만 있으실 것 같아요
오실 때 까지...
화엄성 이사장님
수심화 회장님
그때 뵈요
정광월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구봉 대선사님도
함께요
건강하셔요
정광월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정광월 대보사님, 정말 반가워요. 여전히 건강히 잘 계셔서 고마워요. 이젠 곧 정상적인 삶이 될거예요. 오늘 독일은 춥고 비가 내리고 있어요. 뵈올 때까지 안녕히들 계셔요. 항상 소양자합장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글로벌 원더우먼 소양자 대보살님!~
인터넷 사정과 맞물려
제가 너무 바빠서 이제야 댓글 달게 되어 죄송합니다.
많은 분들 이야기를 이처럼 세밀하게 잘 쓰시다니 너무나 부럽습니다.
9월에 부처신랑님과 함께 귀국하신다니 무척 반갑습니다.
약소하지만
김치국수라도 꼭 대접해 드리고 싶어요.
소중하고
귀한 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해탈심 대보살님, 감사합니다. 부지런하시고 신심이 강하신 우리 대보살님, 건강하시고 김치국수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코로나가 꺾인 듯 하더니 이젠 산불로 고생을 시키네요. 그것도 또 지나가겠지요?? 우린 매순간을 재미잇고 즐겁게 보내도록 해요. 그럼 또... 독일의 자연심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