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바다 ㅡ 이은주 > 2021년 8월 12일 목 (음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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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6건 조회 5,338회 작성일 21-08-12 14:0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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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주림은 가장 큰 병이요,
행行은 가장 큰 괴로움이다.
만일 이것은 분명히 알면
가장 편안한 열반이 있다.
욕망은 무한이다.
그러므로 그 불붙는 욕망을 식히는 일은 유한한 물질적 대상으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그의 정복에 의한 만족이 있을 뿐이다.

맛
언젠가 희한한 소송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갑이라는 사람이 을이라는 사람의 식당에 가서 냉면을 먹었다. 육수 맛에 반한 갑은 을에게 이런 제의를 했다. 천만원을 줄 터이니 육수 만드는 비법을 전수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계약이 이행되고 갑은 냉면 전문식당을 열었다.
그런데 을의 식당처럼 손님들이 몰려오지 않았다. 배운대로 육수를 만들었지만 을의 식당에서 먹은 맛이 나는 것 같지 않았다. 비법을 완전히 전수받지 못하고 돈만 날렸다고 생각한 갑은 법원에 가서 재판을 걸었다.
그러나 을의 대답이 음식의 맛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음식 맛은 음식 자체뿐만 아니라 그릇, 식당, 종업원의 인상, 조리사의 마음씨, 청결도와 같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요인들의 종합적인 영향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 가을 나는 가을산 황복숭아와 포도를 많이 먹었다. 두 가지 과일 모두 맛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복숭아와 포도를 같이 먹게 됐다. 나는 먼저 복숭아 한 쪽을 먹었다. 부드럽고 미끈하고 향기로웠다. 맛있다는 한마디로 끝내버리기에는 복숭아에 대해 미안할 정도로 좋았다. 다음에는 포도를 먹었다. 새카만 머루포도 역시 맛있었다. 다시 복숭아를 입에 넣었다. 여기서 나는 깜짝 놀랐다. 포도를 먹기 전의 복숭아 맛을 알아 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맛이 따로 있는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그 맛을 알아 볼 수 있다면 세상 어느 것에나 독특한 맛이 있다. 알아보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맛이 없다. 송이버섯의 향과 맛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탕을 먹은 후이거나 배불러 더 이상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된 다음에는 어떤 맛도 기대할 수 없다. 맛은 사람이 제 기분대로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일 뿐 어떤 고정적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맛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이고 방랑자다. 음식뿐만 아니라 돈, 권력, 명예, 색, 안락 등에도 맛을 들인다. 석가는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했지만 그 고통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저 맛이 뜻대로 얻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고통을 지어내 느낄 뿐이다.
인도에서 참선법을 갖고 중국에 온 달마대사는 소림굴에서 오랜 기간 벽을 보면서 마음을 관(觀)하는 수행을 하고 있었다. 이때 마음에 번민을 느끼는 혜가선사가 찾아와 제자로 받아 들여주십사고 부탁했다.
스승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제자는 자신의 팔을 잘라 구도의 열정을 보였다. 그리고 괴로운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을 물었다. 제자는 마음도 고통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답하자마자 스승은 제자의 마음이 이미 편한해졌다고 말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려면 어떤 맛을 몇 번이나 봐야 할까.
어리석은 질문이다.
우리는 한가지 맛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것의 맛을 보고 나면 다시 저것의 맛을 보고 싶다. 연이어서 다른 맛을 찾는다. 이렇게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의 맛을 다 본다고 치자. 그러면 아무 맛도 없는 경지에 이른다. 모든 맛을 뒤섞어놓으면 아무 맛도 나지 않게 되거니와, 고생고생하면서 맛을 찾아헤매지만 그 맛이라는 것이 영원불명의 실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러면 맛을 무시하고 외면해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다. 끊임없이 맛을 찾고, 개발하고, 음미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을 느껴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한가지 맛에서 여러 가지 맛으로 가고, 필경에는 아무 맛도 없는 곳에 이른다.
이 무미(無味)에 이르는 데 두 길이 있다. 하나는 출세와 성공이라는 머나먼 우회로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일미(一味), 다미(多味), 무미(無味)를 한꺼번에 터득하는 것이다. 참선하는 수행자들은 이 무미를 통해서 모든 종류의 맛에 자재하려고 한다.
세상에 맛없는 것은 없다. 주변에 흔히 널린 하찮은 것도 잘 곱십어보면 끝없이 깊은 맛을 낸다. 마음의 요리와 미각에 따라 어떤 다른 맛에 비해 밑지지 않는 독특한 맛을 낼 수 있다. 이제까지 별수없게 여겨졌던 내 곁의 사람과 환경이 내게 특별한 맛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은 너무 후덥지근한 날씨입니다.
안면암 청정 바다를 바라보면서
잠시라도 더위를 식히시게 된다면 매우 감사하겠습니다.
바다 / 이은주
삶이 무거운 날은
그곳에 가보자
와르르르 내게로 몰려오는
거친 파도가 살아 있는 바다
나 대신
거칠게 울어 주고
소리쳐 화내 주고
미친 듯 달려 주는
하얀 포말들이 끝없이 몰아쳐 주는
그 바다는 알고 있으리라
위로하는 방법도
용기 내는 방법도
사랑하는 방법도
모두 내 안에 있음을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조재희님의 댓글
조재희 작성일
멋집니다
바다의 생각 말을
다 들려주신 이은주님
우리에게 전해주신 해탈심게시봉사님
참 좋아요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조재희 꽃보살님!~
생각이 넓으며 예의가 바르십니다.
오랫만에 오셨네요.
반갑고 반갑습니다.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모두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나무아미타불.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저도 모두에게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마음의 요리와 미각에 따라 어떤 다른 맛에 비해 밑지지 않는 독특한 맛을 낼 수 있다.
이제까지 별수없게 여겨졌던 내 곁의 사람과 환경이 내게 특별한 맛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곁의 사람과 환경을 소중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