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홍도야 울어라 > ㅡ {진흙이 꽃을 피우네} 석지명 큰스님 산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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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7건 조회 8,107회 작성일 21-08-26 08:21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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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 열반을 바라보고
즐거이 힘써 게으르지 않으며,
마음에 욕심의 걸림이 없으면,
생사의 물을 끊어 건너가리라.
인식은 의지의 추적자요, 추수자(追隨者)

홍도야 울어라
언젠가 <홍도야 우지 마라>와 눈물 젖은 두만강>을 각기 관람할 수 있는 입장권 여러 장을 선물받았다. 그 극을 보면서 실컷 울 수 있었던 노년층 불교신자들이 한두 장씩 선사한 표들이었다. "우는 것이 속을 시원하고 편안하게 해준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리기는 하지만, 오직 그 때문에 수차례 관람했다는 이도 있었다.
음반가게에서 흥미로운 판을 구입한 적이 있다. 슬픔을 노래하는 곡만 모은 것이다. 도니체티의 <남몰래 흐르는 눈물>, 리스트의 <사랑의 꿈>, 프로코피예프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별 전에> 등이다. 이 판은 또 유명한 오페라 가운데 슬픈 장면을 소개하기도 한다. 푸치니 작 <토스카>의 <토스카의 번민>, 바그너 작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레온카발로 작 <팔리아치>의 <슬픈 광대> 등이다.
이 판이 더욱 내 관심을 끈 것은 슬픔의 이유와 그것을 해소하는 처방을 11가지씩 제시했기 때문이다. 슬픔의 원인으로는 생로병사, 배신, 가난, 실직, 낙방, 의사불통 등을, 그것을 삭이는 방법으로는 실컷 울거나 웃기, 배터지게 먹기, 쇼핑, 푹 자기, 음악듣기, 음주 등을 든다.
홍콩 무술영화를 보면 대부분 복수극으로 이루어진다. 악한들이 불시에 침입해 무참하게 부모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른다. 어린이는 울면서 그 장면을 본다. 그 아이는 자라면서 울음은 그치지만 부모의 죽음을 떠올리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 그리고 오직 복수를 생각하며 일생을 산다.
극,영화, 음악, 소설에만 슬픔이 있지 않다. 부모가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아이에게만 슬픔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도 있다. 누구든지 늙고, 병들고, 배신당하고, 실패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보자. 돈, 명예,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은 복수하려는 아이가 죽자사자 무술을 연마하듯 슬픔을 삭이기 위해 힘을 축적하려는 것이 아닐까. 웃음에 허기 들린 것처럼 웃음을 찾아헤매는 사람들, 떠들며 술 마시고 노래하는 사람들, 또는 과식해서라도 육체를 학대하지 않고는 심심해 못 견디는 사람들도 모두 슬픔을 피하기 위해 저리하는 것은 아닐까.
석가는 우리의 현실을 고통으로 규정한다. 다겁생래多怯生來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인간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데 그 시도가 욕망으로 나타난다. 욕망의 뿌리가 슬픔이라서 여기에는 자학성이 담겨 있다. 원하는 것이 얻어지거나 말거나 똑같이 아프다. 욕망의 본래 목적은 슬픔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가지 성취로 만족되지 않는다. 반드시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괴롭고 슬퍼지게 된다.
축적된 슬픔을 삭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된다. 비극을 보아 울어서 속을 풀듯이 말이다. 희극도 상관없다. 그 뒤에는 반드시 고달픈 인생에 대한 조망과 슬픔이 깔려 있다.
그런데 무대에 올려진 비극은 밖의 것이다. 내 체험과 이야기에서 슬픔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체험은 제한된다. 사람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직접 겪을 수는 없다. 내 경험에 의해 모든 슬픔을 다 알 수는 없다. 이때 우리의 본성에 있는 슬픔을 찾아내야 한다. 다겁생에서 금생에 이르도록 의식 또는 무의식에 본래로 축적된 슬픔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저 극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 이상으로도 깊은 슬픔에 잠길 수 있다. 영원히 울 수가 있다.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저 슬픔을 보고 인간의 발악과 같은 몸부림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것이 아니던가. 아무리 악한 사람의 행동도 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미워하고 원망할 것이 없지 않은가. 오직 연민의 정만 생길 것이 아닌가.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극성을 부리던 폭염이 가을 장마 덕분에
어제 오늘은 새벽이 약간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땅을 파보면 금세 고인 빗물이 보일만큼 엄청난 빗 속에서
몇 날 며칠을
안면암 동산의 돌탑들과 부처님들과 동자승들과
불자님들의 공덕비들이 차가움과 외로움 속에 덜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안면암에서 유일하게 피어나
아름다운 모습을 백일간 약속한 목백일홍 배롱나무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따라 지장대원탑을 경배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 장해 보이기만 합니다.
해가 뜨나 달이 뜨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결같이 우리들 안면암을 장엄하고 있는
유정무정(有情無情)의 이들은
이른 아침에
설봉스님께서 카메라를 들이대시자 마자 얼른 평정심을 되찾는 표정관리합니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안면암 불자님들과 #독자님들께서는
'홍도야 울어야' 처럼
울고 싶을 때는 마냥 실컷 울면서
부디 항상 무탈하시고 행복하시라고 무언의 당부를 마음 모아 경건히 보내고 있습니다.
나무대원본존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감사합니다.수고하세요. 나무아미타불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미사일처럼 빠른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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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월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 보살님!~
저는 불행히도 안면암 늦깎이 신도여서
큰스님과 안면암에 대한 소중한 역사를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실로 유감이지만 전생에 심은 선근이 매우 부족해서겠지요.
언젠가 오래전에 보살님으로부터
큰스님께서는 <만인의 연인>이시라는 표현을 들었던 게 생각납니다.
안면암과 포교당 불자님들이
큰스님께 드리는 지극한 정성에 갈채를 보냅니다.
하얀 모시 한복이나 미색 한복 등 한복이 어울리는 대보살님들이 너무 부럽습니다.
큰스님의 용맹정진하시는 상좌스님들 중
설봉스님 설정스님 설학스님 설중스님 들은 친숙하고,
지장사의 설몽스님은 존함만으로 잘 기억하고 있는데
해마다 맛있는 옥수수는 아주 잘 먹고 지냈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설몽스님께선 청계사 계셨어요
안면암 정율스님.설학.설중스님은
저는 몰라요
법주사 사리각 혜정큰스님 시봉하시던 스님
법명은 몰라요
구봉대선사님께선 잘 계시는지요
건강하셔요
정광월 합장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참 좋은 도반 , 정광월보살님!~
포교당에서 가끔 들었던 정율스님은 안면암에서 처음 뵈었어요.
심신이 아주 고우신 비구니 스님이십니다.
설학스님은 몇 년 전 안면암에서 수행정진하시던 참선객이시고요,
설중스님은 오래 전 안면암에서 기도중이셨는데 염불을 아주 잘하시던 스님이십니다.
구봉스님 꼭 뵙고 싶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