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속사랑에서 속고통이 > ㅡ 진흙이 꽃을 피우네 석지명 큰스님 산문집에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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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3,750회 작성일 21-08-31 07:29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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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을 참아서 분(忿)을 이기고
착함으로써 악을 이겨라.
보시를 줌으로써 인색을 이기고
지성으로써 거짓을 이겨라.
분을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가?
그는 항상 무시를 당하고,
진실과 정직도 한계가 있는가?
그는 흔히 따돌림 당하고,
남에게 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가?
그는 대개는 가난하다.

속고통에서 속사랑이
한 라디오 방송국에는 청취자로 하여금 과거에 깊이 감동했던 경험을 말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나는 며칠 전에 우연히 40~50대 남자의 '감동'을 들었다. 한 청년이 60년대 어느 겨울에 훈련을 마치고 강원도 북부의 부대에 배치받게 된다. 요즘에 비해 당시에는 군기가 엄하고 기합도 셌다. 침을 뱉으면 바로 얼어버리는 추운 날씨에 그 신참 졸병은 고참에게서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엎드려 있어야 하는 '원산폭격'의 기합은 받을 때도 많았다. 그토록 힘든 졸병생활을 시작하던 어느날 어머니로부터 첫 편지를 받는다. 화장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펼쳐보니 '사랑하는 아들에게'라는 제목이 먼저 들어온다. 그 순간 청년의 눈에선 눈물이 핑 돈다. 서러움과 그리움이 왈칵 몰려온다. 이때 아들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아주 진하게 느낀다.
여기까지 이야기에도 감동은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이것은 나를 편하게 , 좋게, 또는 이롭게 해준 것과 관련된 겉감동이다. 그 다음 단계의 속감동이 있다. 그 졸병은 이제 아버지가 됐다. 애들을 낳고 키우면서 '자식 일은 마음대로 안된다'는 속담을 절감하게 된다. 자식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 , 새로운 고마움과 사랑을 어머니에게 느끼게 된다. 육체적인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고통,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고통이 아닌 정신적인 고통,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 고통이 아닌 모든 부모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깨닫고 나서야,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사랑을 갖게 된다.
석가의 가르침은 고통에서 시작된다. 고통을 알아야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고통을 알아야 감사할 줄 알고, 감사해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육체적인 고통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자기중심으로 감사하고 자기중심으로 남을 위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이 끊임없이 되풀이해 겪어야 하는 삶, 늙음, 죽음,병듦, 변덕, 미움, 이별 등의 고통을 여실히 볼 때 자신과 남을 지우고 업業의 파도에 휘말린 사람들을 지침 없이 감싸안고 사랑할 수 있다.
철없는 아이들의 풋사랑에도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본래부터 자리잡은 권태와 변덕이라는 덫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래서 감동적인 속사랑은 어떻게든지 미움, 늙음, 이별 같은 것과 배합돼야 한다. 잡고 싶어도 잡지 못하고, 떠나기 싫어도 떠나야 하는 고통을 섞어넣지 않으면서 감동적인 드라마나 현실을 만들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바보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은 오직 애달픈 이별만이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겉고통이나 겉즐거움은 일직선적으로 단순하다. 괴롭거나 즐겁거나 둘 중의 하나다. 이에 비해 속고통과 속즐거움은 복잡하게 뒤엉켜있다. 자기를 지워야 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동시에 상대와 결합되는 묘한 환희도 느낀다. 그래서 '고통에 찬 환희'나 '환희에 찬 괴로움'이란 이상한 표현이 있게 된다.
선사들은 속즐거움과 속사랑을 이루려는 이들에게 일련의 단어들을 늘어놓고 가르친다. 대고大苦, 즉 큰 고통에서 대분大憤, 즉 큰 분발심이 나오고 큰 분발심에서 대의大疑, 즉 큰 의심이 나온다. 큰 의심은 대사大死, 즉 큰 죽음을 만들고 큰 죽음에서 대각大覺, 즉 큰 깨달음이 나온다. 이 큰 깨달음이 있어야 큰 대비大悲, 즉 큰 사랑이 가능하다.
이 순서는 수행자에 따라 얼마든지 뒤바뀌거나 생략될 수 있다. 삶에 대한 회의가 속고통을 겪게 할 수도 있고, 이별이나 절망이라는 큰 죽음이 삶 전체에 대한 회의를 만들 수도 있다. 단 아무리 순서가 바뀌더라도 큰 고통과 큰 죽음이 없이는 큰 깨달음과 큰 사랑이 나올 수 없다.
자, 우리 모두 자신을 점검해보자. 나는 지금 속고통과 속사랑 쪽을 향하는지, 아니면 겉고통과 겉사랑 쪽에서 한 속물로 떠내려가는지 말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선사님들께서 속즐거움과 속사랑을 이루려는 이들에게 가르쳐 주시는 단어 ㅡ
<대고大苦>, 즉 큰 고통에서 <대분大憤>, 즉 큰 분발심이 나오고
큰 분발심에서 <대의大疑>, 즉 큰 의심이 나온다.
큰 의심은 <대사大死>, 즉 큰 죽음을 만들고 큰 죽음에서 <대각大覺>, 즉 큰 깨달음이 나온다.
이 큰 깨달음이 있어야 <대비大悲>, 즉 큰 사랑이 가능하다.
우리들 큰스님께서
오래 전에 손수 붓으로 쓰셔 방 벽에 모셔 놓은
대의심(大疑心) 대분심(大憤心) 대신심(大信心)과 일맥상통하는
불교의 대명제(大命題, 반드시 지켜야 하거나 이루어야 하는 것을 쓴 말)임을
너무 늦었지만 오늘에서야 비로소 명확히 깨달은 것 같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큰스님
붓글씨 저 못받았는데요
스님 건강하셔요
고우 큰스님께서 봉암사에서 입적하셨다고
유라 할아버지가 새벽 회사 모임 법문
고우 큰스님 초청 하셨어요
그땐 법련사 선방회장 시
오래전엔 법주사 유스호텔에서 직원들 연수하고
새벽에 법주사 참배 하러 직원들 모셔 많이 갔어요
법산크느님.보광큰스님.인경스님
지눌스님. 인사동 대나무 밥통집
청계산 정토사 보광 큰스님 절에
목탁 연습 철야기도도 자주 갔어요
지눌스님 부채전
고우 큰스님
입적 소식 보며 많은 생각이...
큰스님
건강하셔요
정광월 두 손 모음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참 좋은 도반, 정광월보살님!~
큰스님 붓글씨는 애석하지만 저도 받은 적 없답니다.
고우 큰스님 입적 소식 이제 알았는데
자비로우신 모습은 TV로만 가끔 뵈었습니다.
요새는 극락왕생을 비는 것보다
속환사바하시길 기원하는 추세인 것 같습니다.
큰스님들 살아 생전에 친견할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만,
저의 두터운 업장 때문인지 쉽지가 않네요.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복을짓고 지혜를닦고 진여는? 열반은? 말배우는것이아니고 인생을 배워야 배움의 행복을생노병사 안심입명 묻는 그놈이 인생 이다 ! 자기 지혜를 딱 배워놓면 색즉시색 공즉 시색 환 무정상 어는사이 모르게 ...불교는 인생을배우는것 행복과지혜를배우는것 어려움을 함께나누고 믿음과지혜로써 정말행복하기위하여잘배워서 묘락 과 복락을 받자 .나무아미타불 큰스님글 잘 이해하여 더욱 정진 하겠읍니다 . 새로지은 지장탑이 아름답습니다 . 건강하십시요 . 마하반야바라밀 . 보사님들도 건강과 항상하신 부처님 진리속의 믿음과 행복 의 실천 속의 제호상미 와 되지않은 그런 큰 깨달음을 축원 합니다 . 나무아미타불...우리모두 ......진리의 행진 합시다 . 감사합니다 .
ㅇ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큰스님 법문은 깨닫고자 하는 마음만 가진다면
성인 누구나 거의 다 이해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었을 경우에는
자신의 지혜가 한 단계 성장했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새로 지은 지장대원탑 ㅡ
자주 보면 볼수록 웅장하고 아름답습니다.
지장대원탑 불사하실 때
공양간 등 여러 곳에서 봉사하시느라
애 많이 쓰셨습니다.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