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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 안면암 일기 } : < 언제나 신비로운 안면암 바다 > 2021년 7월 14일 수 (음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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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4,500회 작성일 21-07-14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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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세속품(世俗品)


     옛날 '다미사'라는 임금이 있었는데, 이도(異道) 96종을 받들어 섬겼다. 하루는 큰 선심을 일으켜 크게 보시를 행하려 했다. 바라문의 법은 칠보(七寶)를 산처럼 쌓아 두고, 얻으러 오는 사람에게 한 줌씩 집어가게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그를 교화시키기 위해서 바라문의 행색으로 그 나라에 가셨다. 왕이 나와 맞아 구하는 바를 물었다. 부처님은 "내가 멀리 온 것은 보물을 얻어다 집을 짓고자 함이라."고 하셨다. 왕는 "좋다.한 줌 쥐고 가라."고 했다. 부처님은 한 줌을 쥐고 몇 걸음 나오시다가 다시 돌아가 본디 있던 곳에 놓았다. 왕은 그 까닭을 물었다. 부처님은 "이것으로는 겨우 집밖에 못 짓겠다. 장가들 비용이 모자란다."고 했다. 왕은 다시 "그러면 세 옴큼을 가져가라."고 했다. 부처님은 또 먼저와 같이 했다. 왕은 또 물었다. 부처님은 다시 대답했다.

    "이것으로 장가들 비용은 되지만 밭도, 종도, 마소도 없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왕은 이번에는 일곱 옴큼을 가져가라고 했다. 부처님은 또 먼저와 같이 했다. 왕은 또 물었다. 부처님은 다시 "길흉의 큰 일이 있으면 어찌하겠는가?"라고 했다. 왕은 그 보물을 모조리 내주었다. 부처님은 받았다가 도로 던져 주었다.

    왕은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원래 내가 와서 구한 것은 모두 생활에 쓰기 위한 것뿐,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 모든 것은 덧없어 오래 가지기 어렵다. 보물이 산처럼 쌓여 있어도 내게 이익될 것은 없다. 탐욕이란 고통만 가져오니 , 차라리 무위(無爲)의 도를 구함만 못하구나. 그래서 내 보물을 받지 않는 것이다."

   왕은 그 뜻을 깨달아, 다시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부처님은 광명을 나타내시며 크게 연설하셨다. 

                                                                                ㅡ  법구비유경, 세속품

167

천하고 더러운 법 배우지 말라.

방일로 시간을 보내지 말라.

그릇된 소견을 가지지 말라.

세상의 악을 돕지 말라.


나는 인생을 진실히 묘사하자,

진실을 말하자.

그리하여 인생의 가장 착한 적이 되자

168

게으름 피우지 말고 힘차게 일어나라.

좋은 법을 따라 즐거이 나아가라.

좋은 법을 따르면 편안히 잔다.

이승에서도 또 저승에서도.


밤의 안정된 잠을 위해서 하루의 좋은 활동이 의의를 가진다면,

어디 그러한 무의미한 인생이 있겠는가?

한낮의 좋은 활동은 으례 안정된 밤의 잠을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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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 자연의 주체가 바로 '내 마음'

조기 퇴직했다는 50대 남성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세상을 사는 것이 아무런 재미가 없는데 우주는 나를 태어나게 한 목적이 있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

    그는 큰 부자는 아니지만 중류 이상의 경제력을 갖고 있단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특별히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없단다. 바둑이나 골프 같은 취미생활도 하고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기도 하지만, 진실로 그런 것들을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는 동안 삶의 재미없음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다고 자살할 정도로 염세주의자가 된 것은 아니고 단지 우주가 자신의 삶을 필요로 하는지 궁금할 뿐이란다.

    부처님은 세상이 즐거움이나 괴로움으로만 차 있지 않다고 한다. 즐거움 반, 괴로움 반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서 즐거움 또는 괴로움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주 자연 전체를 법신이라고 한다면, 그 법신은 어떤 목적이나 설계 의지를 가지고, 세상의 모든 생명을 품고 있을까? 불교에서 인간의 의지를 인정하는 것은 분명하다. '육근六根, 육경六境, 육식六識' 즉 '여섯 가지 감각기관, 그 감각기관의 대상, 그 감각기관과 대상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 인식'이 있고, 그 여섯 가지 감각기관과 대상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여섯 가지 인식'이 있고, 그 여섯 가지 감각기관 가운데서 '의意'는 인간의 의지를 나타낸다. 불교는 숙명론이나 우연론이 아닌, 인연론의 인간 의지를 강조한다. 그렇다면 법신의 의지도 인정될까"

    인간을 비롯한 현재의 생물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느냐에 대해서 과학에서는 진화로 설명한다. 생물이 살아가는데 필요에 의해서 동일한 업은 반복하고, 그 업에 의해서 어떤 부분은 발달하거나 다른 부분은 퇴화되어 왔다는 설, 자연 선택에 의해서 환경에 맞는 강한 것은 살아남고 약한 것은 도태되어 왔다는 설 등이 있고, 인간은 원숭이의 한 종류로부터 진화해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 진화론이 세상이 생겨난 것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람이 원숭이로부터 진화되었다면, 원숭이는 무엇으로부터 진화되었는지, 궁극적으로 물에서 모든 생명이 나왔다고 가정한다면, 물은 무엇으로부터 나왔는지까지 밝히지는 못한다.

    불교의 연기설이나 업설은 과학의 진화론과 공존할 수 있다. 기독교의 창조론처럼 상충되지 않는다. 창조론은 창조자의 의지를 내세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이유없이 쓸데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창조자의 설계에 의한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교의 연기론이나 법신사상에도 우주 자연의 의지가 인정되느냐를 묻게 된다.

    연기론과 창조론의 차이처럼, 불교와 기독교에는 우주 의지의 주체를 정하는 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기독교에서는 조물주가 주인이고 인간은 종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이 주인이고, 바깥세상은 그 인간 마음의 규정에 의해서 개념이나 명칭이 정해진다. 기독교에서는 창조한 설계자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불교에서는 외적인 설계자 개념이 없으므로 무조건 따를 것도 없다. 기독교에서는 신이 사람처럼 의지를 행사하고 죄에 대해 심판을 내리고 변덕을 부릴 수도 있는 인격신이지만, 불교에서는 자연이나 법신을 신격화한다로 하더라도 인격적인 면이 없다. 자연 흐름 그대로의 법칙이 있을 뿐이다.

    「 화엄경 」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저 법신 부처와 중생이 아무런 차별이 없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이 그대로 우주의 주체인 법신이다. 「 열반경 」에서의 법신도 세상에 항상 머문다고 하지만, 중생을 위하고 살리는 원을 가지고 행할 뿐, 사람에게 심판의 벌을 내리지는 않는다. 우리에게 불성이 있으니, 그 불성을 깨우치고 드러내면 법신불과 하나가 된다.

    우주 자연에 인간을 비롯한 생물 모두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느냐는 물음의 답은 물론 "예스"다. 단, 그 우주 자연의 주체가 바로 내 마음이다. 한 마음을 돌리면 세상은 재미로 꽉 차 있다. 극락이다. 우주 법신의 나에게 있어서, 중생인 나는 아주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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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뭇 바다 생명들을 태어나게 하고
자상히 품어 주면서
불자님들과 독자님들 관광객들을
늘상 평안으로 이끌어 주는
안면암 바다에게 경배하는 마음 간절해집니다.


진화론에서
일체의 생명은 물, 즉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생명의 원천인 바다의 공덕을 찬탄하며
평소에 존경하는 조병화 시인님의 <바다>를 겸허히 게시하겠습니다.


< 바다 > /  조병화

사랑하는 사람아
그리운 사람아

먼 곳에 있는 사람아
아주 먼곳에 있는 사람아
바다가 흐느끼는 걸 본 사람이 있는가

바다가 혼자서 혼자서
스스로의 가슴을 깎아내리는
그 흐느끼는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네게로 영 갈 수 없는
수많은 세월을
절망으로 깨지며 깨지며
혼자서 혼자서 사그라져 내리는
그 바다의 울음소리를 들은 일이 있는가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바다의부상탑의신비함이  안볼래야안볼수없는마음  찿을래야찿을수없는    공공적적 소소 영영  하고  밝고신령스럽다 .  공적지  바로깨달아  상근대오  직하대오  다시 의심없는것이  성불.!    닦음없이  닦는다.    아심명  이니라  불생불멸이  생노병사가 ..오늘의고마운  보살 님께  합장  합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 시를 잘 올리시네요..덕분에  내심금을  취해 봅니다.. 날마다  안면암의 보궁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행복한 오늘  에  합장  합니다 .  나무  아미타불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 보살, 원만행보살님!~

바닷물이 꽉 들어찬 바다 위에 고요히 자리잡고 있는 부상탑의 신비에 공감해 주시니 매우 기쁩니다.
소소영영 밝고 신령스럽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글귀네요.

저는 둔재라서 시를 쓸 수가 없으니 가끔 뛰어난 시에  풍덩 빠져 봅니다.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일몰.일출?
큰스님의  바다의 10덕
새벽녁의 구름.하늘
며칠전 부터 매미 소리
이생진 시인의 성산포  시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그리운 바다 성산포
이생진 시인의 시 낭송
유트브에
제목 잘못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