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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지명 큰스님 저서 : <그것만 내려 놓으라> 중 # 항순중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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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3,717회 작성일 21-06-15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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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


        예전에는 내가 길눈이 밝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신감이 없어졌다. 과거에 없던 길들이 무수히 생겼고, 지금도 계속 새로운 길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같은 방향이라고 하더라도 신호등이 많은 복잡한 길이 있는가 하면, 고속화도로가 있다. 그래서 나는 보통 '네비게이션'으로 불리는 GPS를 이용한 전자지도길 안내 단말기를 차에 달고 다닌다. 그런데 저 기기를 이용할 때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보현보살의 '항순중생원恒順衆生願' 즉 "중생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은 무조건 들어주고 따라 주기로 작정하는 서원"을 떠올린다.

    가령 시골에서 복잡한 서울의 한 곳에 간다고 치자. 나의 감탄은 저 기기가 안내하는 대로 따르지 않을 때 일어난다. 가령 갑의 방향으로 안내할 때, 내가 을의 방향으로 가버리면, 저 기기는 그 시점부터 새로운 길을 다시 계산하고 제시한다. 내가 열 번을 어긋나면 열 번을 다시 검색하고, 백 번, 천 번이라고 아무런 불평 없이 그 시점부터 최단의 길을 다시 찾아 준다.

    나는 자신을 돌아본다. "나의 안내를 무시하는 상대가 계속 안내하기를 요청할 때, 내가 끝까지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서 안내를 계속할 수 있을까?" 현실에서의 나는 아주 나쁜 기록을 갖고 있다. 한 VIP의 미국여행 때에 안내를 맡게 되었는데, 본래 일정에 충실한 나의 안내를 무시한다는 이유로, 상대를 미국에 남겨 두고 나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버린, 지금 생각하면 크게 잘못된 일이 있다. 저 기기와는 정반대로 행동한 것이다.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는 부처가 될 성품, 즉 삶을 가장 이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까?" 스승은 "없다"고 대답한다. 다른 기회에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한다. 이번의 대답은 다르다. "있다"이다. 다음에 계속해서 물으면 '있다'와 '없다'가 반복되거나, 침묵으로 대답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석가모니부처님은 시간, 공간, 사후의 존재 등에 대한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나는 잘살고 싶다. 아름답게 살고 싶다. 씨앗이 있는 것은 뿌리나, 싹이나, 꽃이나, 열매가 있다. 내가 하나의 화초 종자라고 치자' 내가 어떤 단계에서 가장 아름다울까. 물론 새싹이나 꽃이나 열매로 남을 좋게 할 때 가장 좋게 보이거나, 보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자. 현실에서의 이 추한 육신의 내가 언제 가장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삶의 보람을 느낄까. 어떻게 살 때 , 부처될 종자가 있다고 느껴질까. 남을 위해서 무언가를 행할 때일 것이다.

   나에게 제대로 살고 싶은 뜻이 없다면, 어떤 의미에서든지 꽃이 되어 남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뜻이 없다면, 중생을 위하는 부처가 되고 싶은 뜻이 없다면, 불성이 있거나 없거나, 사후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 있거나 없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태양이 생물에게 자라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나무와 풀들은 태양 쪽으로 머리를 향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종교를 가지든, 나름대로 어떤 신조를 갖고 살든, 내가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지 않는다면, 그 종교와 신조와 나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이상적인 삶에 중요한 것은 '있다' '없다'가 아니다. 내 삶의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드는 '주변을 위하는 자세'이다.

   어떻게 해야 주변을 가장 잘 위할 수 있을까. '하심下心'이나 '인내'가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가 부담을 느낄 것이다. 내가 자존심이 강한데 일부러 낮춘다거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참으면서 상대를 위한다고 생각하면, 상대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저 기기처럼 무심해야 한다. 단지 저 기기에 없는 생명력을 추가해야 한다. '서원誓願'이다. 내가 위하는 중생에 대해서 일체의 판단을 중지하고, 상대의 근기에 맞추어서 무조건 순응하겠다는 서원이다. 그래서 서원이 있는 나는 부처가 될 수 있지만, 저 기기는 부처가 될 수 없다. 또 나는 이런 원을 세우고 실천할 수 있다. "아픈 이에게는 약초가 되고, 깜깜한 밤중에는 촛불이 되고, 배고픈 이에게는 곡식이 되겠다"고.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무명의 저 해탈심도
원을 세워 천천히 한결같이 실천하고 싶습니다.


"아픈 이에게는 약초가 되고,

캄캄한 밤중에는 촛불이 되고, 배고픈 이에게는 곡식이 되겠고

외로운 이에게는 좋은 말벗이 되겠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원만행 보살님의 댓글입니다.

해탈심 보살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의 원을 세우셨네요.
큰스님의 글 정말 철학박사.
진실한 불교의 선구자.
진실로 따르는 불제자.
희망을 갖고 수행!

                                                    원만행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생기발랄하신 큰보살, 원만행보살님!~

과찬이 너무너무 부끄럽습니다.

예리하신 통찰력이십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시시처처에서
모두 다 함께 희망을 갖고 수행정진해야 합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지금까지 서원은 당사자가 자신에게 잘 되어달라고 기도 하는것으로 알았는데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내 삶의 의미를 존재하게 하는 주변을 " 무조건 상대방을 위하고 그분에 맞도록 잘해드리고 편하게 해드리는게 서원" 이라구요..상대방은 그걸  잘 모르게지요. 결국은 자기가 행복해지기 위한 이기심이네요. ㅎㅎㅎ

독일의 소양자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글로벌 원더 우면 소양자 대보살님!~

역시 지혜로우신 불자이십니다.
서원의 실천이 무척 어렵습니다만, 마음 여하 노력 여하에 달렸습니다.

이기심도 있겠지만,
불교는 분명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종교입니다. ㅎ

머나먼 타국의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