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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ㅡ < 초파일 다음 날 안면암의 초록 > 2021년 5월 20일 木 (음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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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2건 조회 3,992회 작성일 21-05-20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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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대인(大人)은 세상 일에 빠지지 않아

자손. 재물. 토지를 바라지 않고,

항상 계(戒)와 지혜와 도를 지키어

그릇된 부귀를 탐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거의 모든 사람은

부와 귀 또는 명예에 자기의 자유 정신의 활동이 완전히 속박된 때에

비로소 명사(名士)가 되는 성싶다.

     85

세상은 모두 욕심에 빠져

피안(彼案)에 이른 사람 아주 드물다.

혹 사람 있어 마음을 가졌어도

이쪽 언덕(생사) 위에서 헤매고 있다.


우리의 이상이 현실을 부정할수록,

현실에 알맞은 우리의 수단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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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념 속의 극락 ( 1 )

(밀린다판하 11)


어떤 순간에 마음의 혁명 일으켜서

선업을 짓는다면 과거의 악업은 돌과 같은 것이 되고

최후 순간의 선업은 배와 같은 것이 된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이란 움직이는 동물이므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움직임을 뜻한다. 행동하는 것이다. 이 행동에는 신체적인 것도 있겠고 정신적인 것도 있다. 또 언어로 짓는 행위도 있다. 이 세 가지 행위를 불교에서는 몸(身) . 입(口) . 뜻(意)의 삼업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삼업에 의해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이 세가지 행위 또는 업을 다스려야 하느냐가 불교의 근본명제이다. 생사를 벗어난다는 것은 이 업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업에 의해 끌려가지 않고 오히려 업을 이끌어 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업이 순전히 나의 내면의 원인으로부터만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외면적인 원인으로부터 지어질 수도 있다. 상대적으로 업을 짓는 상황을 그려보기 위해서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고부간의 갈등을 생각해 보자.

     아주 성질이 나쁘고 남편이나 시어머니를 공경스럽게 생각하지도 않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며느리가 있다고 하자. 이 며느리가 나쁜 것이 시어머니의 주관적인 판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누가 보아도 며느리가 그르다고 판단되는 그런 상황을 가정하자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당사자라고 가정하면 그처럼 고약한 며느리를 둔 상황에서 여러분은 그 며느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마음으로 업을 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쁜 말, 나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이러할 경우 '나의 업은 어떻게 중단해야 하며 또 어떻게 업을 수행으로 돌릴 수 있는가?'가 문제로 떠오른다.

      밀린다 왕도 업을 짓고 업을 수행으로 바꾸는 문제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나가세나 비구에게 묻는다.


      스님, 수행자들은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백년 동안 악행을 했더라도 죽을 때 한번만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또 수행자들은 "단 한번 살생을 했더라도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것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밀린다 왕은 100년 동안 죄를 지었으면 그 죄업을 다 녹이기 위해서는 업을 짓는 기간과 같은 100년이 걸려야 할 터인데 어떻게 한번 부처님을 마음속으로 생각했다고 해서, 100년 동안 지은 죄업이 다 소멸되느냐는 의문이다. 또 100년 동안 좋은 일을 했더라도 지금 이 순간에 살생을 한다면 그 한번의 살생으로 지옥에 떨어진다고 하는데 밀린다 왕은 그것도 납득이 안 간다. 좋은 일 한 것과 나쁜 일 한 것이 상쇄되고 그 나머지로 극락과 지옥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수학적 계산인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나가세나 비구가 대답한다.


     대왕이여, 조그마한 돌이라도 배에 싣지 않고는 물에 뜰 수 없습니다. 백 개의 수레에 실을 만한 큰 바위라도 배에 싣는다면 물 위에 뜰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을 실천할 당시 순간의 선행이나 악행은 과거의 모든 업을 한꺼번에 실은 배와 같습니다. 


     우리가 평상 시에 짓는 업을 무거운 바위로 비유한다. 그리고 극락과 지옥을 결정하는 시점의 선행이나 악행을 배에 비유한다. 그리고 극락과 지옥을 결정하는 시점의 선행이나 악행을 배에 비유한다. 과거에 아무리 악업을 많이 지었더라도 어떤 순간에 마음에 혁명을 일으켜서 선업을 짓는다면 과거의 악업은 돌과 같은 것이 되고 최후 순간의 선업은 배와 같은 것이 된다.


    과거에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최후의 순간에 나쁜 일을 했다면 그 반대가 될 것이다. 과거에 좋은 일을 한 것은 돌이 되고, 최후에 나쁜 이를 한 것이 배가 된다. 아무리 무거운 것도 배에 실으면 뜰 수 있다. 아무리 오랜 기간 동안의 악행도 최후의 선행만 가지고 극락과 지옥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과거에 아무리 업을 많이 지은 사람도 죽기 전에 부처님을 마음과 업으로 부르면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고 아무리 선행을 많이 지은 사람도 최후에 마음을 잘못 먹으면 지옥에 태어나게 된다.


                                       ( 죄송합니다만, 내일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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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불교에서 가장 큰 명절인 초파일이 지났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너무 아쉬운 경축일이었으나
오월이 깊어가니
무심한 자연 속의 초록은 더욱 푸르릅니다.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도 봉축 행사 준비에
최선을 다하신
설봉스님,
사무실의  밀운행보살님,
진여화총무님 연화봉보살님 일진행보살님 현주행보살님 유마심보살님 등과

접수와 후원에서 애쓰신 
보타심보살님  월명지보살님  중도화보살님 수월정보살님 등등  ,
힘든 일 도맡아 하시는 매점 손거사님께 정중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코로나 19 무릅쓰고 초파일 법회에 동참하신 불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량이 항순이도
예년에 비해 나한전 앞 야외등이 바람에 덜 나부끼고,
초파일에 신도님들이
훨씬 적게 찾아 오셔 외롭고 심심했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불자님께서는
내년 초파일에는
마스크를 벗은 환한 얼굴들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경축드릴 것을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드리고 있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문보경화  보살님 공덕비
북유럽 여행 같은  방 쓰던  기억
진여화 보살님과 함께 두분이...
저는 독수공방
아득한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