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ㅡ < 아기부처님 천진불 > 2021년 5월 10일 月 (음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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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2건 조회 3,544회 작성일 21-05-10 07:43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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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한평생 다하도록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어도
참다운 법을 알지 못하나니,
숟가락이 국 맛을 모르는 것처럼.
안 보이는 것이 없다. 내가 못 보는 것이다.
안 들리는 것이 없다. 내가 못 듣는 것이다.
안 되는 것이 없다. 내가 못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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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은 잠깐이라도
어진 사람을 가까이 섬기면
곧 참다운 법을 바로 아나니,
혀가 국 맛을 아는 것처럼.
말없는 가운데 강한 호흡이 맞고,
떠나 있어 심장의 고동을 같이하는 느낌의 세계.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로운 인생인가!

시간의 끝 ( 1 )
창조자를 누가 창조했느냐고 계속 질문해 들어가면,
결국 같은 답의 무한반복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無)자가 나온다는 말이다.
< 밀린다판하>에서 불교는 시간의 시초 또는 우주의 시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또는 아닌지 그리고 해탈한 이는 시간 속에 있는지 아니면 밖에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비구에게 우주 최초 시간의 출발점에 대해서 묻는다. 우주가 있어서 시간이 있을 수 있고, 시간이 있어야 우주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출발점을 따지면 자연히 우주의 처음에 대해서 문제를 삼게 된다.
밀린다 왕의 최초 시간에 관한 질문에 대해서 나가세나 비구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최초 시간의 근거는 미혹무명(迷惑無明)이다. 미혹무명으로 인해 업이 있고 업으로 인해 인식이 있고. . . "
이런 식으로 십이연기를 이야기한다. 왕은 시간의 시초를 물었는데 나가세나 비구는 엉뚱하게도 십이연기를 그 근거로 댄다.
미혹무명으로부터 시작한다는 말은 결국 '시간의 최초는 우리가 미혹해서 짐작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는 '사람들이 미혹해서 마음대로 시간을 정할 뿐이나 그 물음 자체에 시간이 실제로 있다는 전제가 숨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흔히 '우주는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을까?'하고 의심을 가진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타종교에서는 우주의 최초가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대해서 유식한 것처럼 이야기한다. 조물주 신이 었어서 이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교인들에게 핀잔을 준다. 불교에서는 '만동자가 부처님에게 우주의 시작에 대해서 질문하니 부처님이 침묵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떤 종교인들은 그 말을 이용해서 '부처님은 인간이니까 우주의 시초를 모를 수밖에 없다. 우리 종교는 신이어서 우주의 시작을 알 뿐만 아니라 바로 자신이 우주를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타종교인들이 이런 말을 하면 많은 불교인들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정말 그런가 하고 멍하니 있다.
그러나 타종교인들이 창조를 말하면서, 우주의 시초를 안다고 하는 것에는 큰 허점이 있다. 우주의 창조를 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창조를 말하는 사람들은 창조에 대해서 끝까지 말해야 한다. 즉, '우주를 창조한 신은 누가 창조했느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 그들은 그것도 신이 창조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그 이전의 창조자에 대해서 묻게 될 것이고 그들은 끊임없이 그 앞의 창조자가 창조했다고 말할 것이다. 결국 무한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無)자가 나온다는 말이다. 끝까지 물어도 답할 것이 없기 때문에 무한으로 올라가는 것은 '모른다'는 말과 같게 된다.어쩌면 그들은 이렇게 둘러댈 수도 있다. '창조자는 신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이 말은 '우리는 우주의 창조에 대해서 또는 시간의 시초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과 같다. 그들이 아무리 별 말을 꾸며대 보아도 공연히 자기가 알 수 없는 가공인물을 내세워 '나는 모르는데 그는 안다더라.'고 미루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물론 자기 종교 내에서 자기들이 그렇게 믿는 것은 우리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신앙문제이기때문이다. 그들이 불교인들에게 시간의 시초나 우주의 시초에 대해서 아는 척하고 불교를 비방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도교의 노자는 없을 무(無)자가 무에서 있을 유(有)자가 나오고, 유로부터 하나가, 하나로부터 둘이, 둘로부터 셋이, 셋으로부터 만물이 나왔다고 한다. 이 구도는 유를 말하고 숫자를 말하니까 우주의 최초에 대해 무슨 설명이 된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시간의 끝에 대해서 아무런 설명이 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알 수 없는 없을 무자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없을 무자로 시작한다는 것은 '모른다'는 말과 같다.
최초의 창조주를 무한히 추궁해 나가는 것도 결국 무한할 무 또는 없을 무자로 끝나고 만다. 이 무자는 노자가 우주의 최초라고 하는 무자와 다를 바 없다. 시간의 최초에 대해서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다시 왕과 비구의 대화로 돌아가서 나가세나 비구의 설명을 들어보자. 왕은 시간의 최초는 알 수 없다는 비구의 말을 듣고 비유로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다. 비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조그마한 씨앗 하나를 땅에 심는다고 합시다. 그 씨앗은 싹이 터서 점차로 성장하고 무성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씨앗을 받아 다시 땅에 심으면 또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 개체적 씨앗의 연속은 끝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최초는 끝이 없습니다.
씨앗과 싹과 열매가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에서 그 최초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듯이 시간의 끝을 잡고자 하는 것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2566년 부처님 오신 날>이 아흐레 남았습니다.
오늘 이른 아침,
찬란한 햇살 아래의
아기부처님 천진불 모습들이
더욱 사랑스럽고 한결 더 아름답습니다.
천진불들께 경배드리는
울긋불긋한 꽃보살님들 미소마저 그 여늬 때보다 화려합니다.
무명중생인 저도
꽃보살님들과 함께 더불어
아기부처님 천진불께 지극한 마음으로 경배드립니다.
(위법망구하시며
사진촬영하시는 설봉스님께서는 마치 돌부처님처럼 보이십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아침부터 비가제법 오네요. 해탈과 성불의 차이점은.,.,!두가지는 불교를밑는 목적 오랜역사로보면 남방불교의목적은해탈 성불은 북방불교 일본 중국등등 의 불교로 온것. 윤회해탈은 속박 윤회 집착 응무소착 에알려진것이니.....,심오한천추만대육조 정안의 교훈 ?! 청정한도량에는 도량신이 집신이 설익은것을 부끄러워 할일이다.,,백장스님말씀에., .나는 지나고나면 아는듯 ? 부끄럽다..참선기도는 남이 모르게한다. 발보리심 자비심 기본적틀의 참구를 놓치고 번뇌가 아이고 스님들의 수행이 존경스럽다..아무리안되도 그래도 해야지 ,! 이 뭐고 ! , , 인생잠시머물다가는데 . 대선지식이 이끌어주는 내마음을모르는마음의본성을 닦아서 정진한다..,법계여여 열반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