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미소짓는 부처님과 탑들 > 2021년 5월 28일 금 (음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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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1건 조회 3,264회 작성일 21-05-28 09:43본문

8. 술천품(述千品)
부처님이 사위국에 계실 때에 반특이라는 비구가 있었다. 원체 재주가 없어서 오백 명의 아라한이 날마다 그를 가르치기 삼 년, 그러나 한 게송도 깨닫지 못했다. 천하 사람이 그의 우둔을 알았다. 부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입을 지키고, 뜻을 거두고, 몸으로 범하지 말라."는 한 게송을 일러 주시고, 그 뜻까지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반특은 문득 크게 깨쳐 아라한이 되었다.
어느 날, 파사의 왕은 부처님과 여러 제자를 청했다. 부처님은 반특에게 바루를 들리시고 뒤를 따라 그의 위신(威神)을 나타낸게 하셨다. 왕이 놀라 물었을 때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반드시 많이 배우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행하는 것이 제일이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많이 알더라도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곧 다음의 게송(100, 101, 102 참조)을 설하시매, 모두 기뻐했다.
ㅡ 법구비유경, 술천품
100
비록 천 글귀를 외더라도
그 글 뜻이 바르지 못하면,
단 한 마디 말을 들어서라도
편안함을 얻으면 그것이 낫다.
우주를 주어도 바꿀 수 없는 목숨,
이 목숨마저
오직 한 마디를 위해
한 마디 법을 위해
즐거이 버리나니.
101
비록 천 게송을 외더라도
그 글 뜻이 없으면 무엇이 유익하리.
단 하나의 뜻을 물어도
편안함을 얻으면 그것이 나으리.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은들 무슨 뉘우침이 있으랴." ㅡ 공자



반야경의 종류가 많은 이유 ( 1 )
먼저 핵심적인 사상이 생기고 그것이 기본적 경의 모습을 갖추고,
다시 전해지고, 수정되면서 현재 형태의 반야부 경전들이 생겼으리라.
반야부 경전들은 짧은 것은 260자의 <반야심경>같은 것이 있는가 하면 긴 것은 600권의 <대반야경>같은 것도 있다. 또 같은 내용이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반야부에서 왜 이와 같이 다양한 경전들이 생겼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간다. 왜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은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간다.
어떤 지역에서 긴 세월 동안 대승의 사상을 가진 수행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 듣고 생각하고 실천에 옮기면서 나름대도 부처님의 본래적 취지를 그리고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똑같은 말도 사람에 따라서, 시대 환경이나 개인의 주관에 따라서 나름대로 독특하게 듣고 기억할 수가 있다. 불경을 편집할 때, 부처님 말씀과 상관없이 불도 수행자들이 마음대로 편집했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
입과 입으로 또는 마음과 마음으로 석가모니부처님의 말씀을 전해들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 부처님의 말씀을 그 시대나 환경의 요청에 의해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수행자들이 부처님 말씀에 의해서 수행을 하다 보니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 경우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세계에는 한 부처님만 그 세계의 교주가 될 수 있다는 원칙이 있다.
사바세계에는 석가모니부처님이 이미 교주로 계신다. 그래서 설사 어떤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독자적으로 부처님 행세를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자신의 깨달음을 석가모니부처님의 이름으로 돌리게 된다.
실제로 우주의 진리는 같기 때문에 누가 깨달았다고 하더라조 그 기본적 내용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새로운 깨달음도 석가모니부처님이 이미 깨달은 내용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내용은 같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의 표현은 시대롸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대승의 사상을 가진 수행자들은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을 대승적인 견지에서 전해 듣고 지니고 실천하게 된다. 그들이 어떤 시대의 일정한 기간 동안 축적된 반야를 중심으로 한 불법의 아이디어를 책으로 엮게 된다.
이 경우 먼저 핵심적인 사상이 생기고 그 핵심이 기본적 경의 모습을 갖추고 다시 그것이 전해지고 수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가지진 반야부 경전의 한 종류가 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대승경전이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에 의해서 편집되지 않았다고 해서 대승경전을 부처님 말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것은 큰 업을 짓는 것이 된다.
부처님의 원력과 위신력을 중생의 소견으로 상상할 수 없다.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생각할 때 시간을 말하고 편집자를 말하지만, 우리의 두뇌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힘과 방법으로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들의 세계에 나타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부처님께서 직접 쓰시거나 부처님이 구술하시고 제자들로 하여금 목전에서 기록하게 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진 대승경전과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용과 형태의 대승경전과는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반야부 경전들이 기본적인 내용에 큰 차이가 없이 여러 형태로 편집된 이유를 짐작해 보느라고 중생의 입장에서 경전편집의 절차를 추리해 볼 뿐이다. 어떤 시대, 어떤 환경에서든 대승불교도들이 자신들에게 축적된 부처님 말씀을 편집했을 때 그것이 반야부 경전의 한 형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편집된 반야부의 한 경전에 다른 종류의 아이디어나 보다 높고 색다른 수준의 깨달음이나 표현들이 추가되면서 그 경전의 양이 늘어날 수가 있다. 이 경전은 앞의 경전에 비해서 그 내용과 질적인 면이나 양적인 면에서 발전된 형태의 경전이 되는 것이다.
경전은 어떤 한 사람에 의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신앙공동체의 산물이기 때문에 번잡하고 똑같은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올 수가 있다. 또 전체적으로 완전한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세월이 가면서 경의 체제가 정비되고 간략화되며 축소된 경전이 되는 것이다.
또 기존의 경을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체제를 바꾸는 일도 생각할 수 있다. 이때는 주로 어떤 용어를 집중적으로 사용한다거나 아니면 다른 용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가 있다. 또 목표하는 바를 유도하기 위해서 경의 구성을 바꿀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 다양한 형태의 반야부 경전들이 생기기까지는 반야부의 한 경전이 편집되거나, 그 경전에 새로운 사상이나 표현이 추가. 삭제되어 확정되거나 축약되거나,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기존의 경의 형태나 표현을 고치는 등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앞에서 <소품반야경> <대품반야경> <십만송반야경> <금강경> <반야심경> 등이 있다는 것을 정리했다. 이 중에서 <소품반야경> <대품반야경> 그리고 <십만송반야경> 중에 어떤 것이 보다 먼저 생긴 원형이냐가 문제가 된다.
학자가 따라서 <십만송반야경>으로부처 <대품반야경>, 다시 <소품반야경>으로 축소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소품반야경>에서 <대품반야경>과 <십만송반야경>으로 확장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죄송합니다만, 내일 계속됩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봄비가 자주 오시더니
어제 내린 비에 신록이 한층 더 보기 좋습니다.
열흘 전
초파일을 경축하시던
안면암 동산의 돌부처님들께서도
관욕(灌浴)을 하신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셨습니다.
탑들도 티끌과 먼지를 깨끗이 다 씻어 내리니
여린 신심을 고양시켜 주고 있습니다.
미소짓는 부처님들 따라
중생의 마음에도 덩달아 웃음꽃이 피어 납니다.
흔히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웃음꽃이라고 말하지요.
왕림하시는 선남선녀님들께서는
오늘도
내일도 웃음꽃이 피어나는 축복받은 삶이 되시길 비옵니다.
########
미국의 여류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
<미소>
"인생이 노래처럼 잘 흘러 갈 때는 명랑한 사람이 되기 매우 쉽다.
그러나 진짜 가치 있는 사람은 웃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잘 안 흘러갈 때도 웃는 사람 말이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