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ㅡ <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는 고요한 아침산사 > 2021년 5월 9일 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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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4,639회 작성일 21-05-09 08:26본문

5. 우암품(愚闇品)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밖으로 적을 물리치고, 안으로 간사한 놈들을 잘 막는 것을 대장이라고 한다. 만일 대장으로서 그 생각이 여러 사람 중에서 뛰어 나지 못한다면, 한갓 이름만 탐내어 적 속에 깊이 들어가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겠는가. 혹은 안으로는 겁쟁이로서 밖으로만 사나운 모양을 나타내어, 싸울 때에는 적을 두려워해 물러나고 , 상줄 때에는 함부로 남의 앞장에 서려 한다면 어떻겠는가. 이런 대장은 스스로 자기 몸을 편안하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까지도 편안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조달 비구도 이런 사람이다. 함부로 아사세 태자의 재물을 받아 도리어 자기의 재앙을 받을 뿐 아니라, 남까지 죄에 빠지게 하니, 그 두 죄는 쌓이고 쌓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ㅡ 출요경, 이양품
62
내 아들이다, 내 자산이다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 허덕인다.
나의 '나'가 이미 없거니,
누구의 아들이며 누구의 재산인고!
한 세계에 다 같이 살면서, 또한 제각각 다른 세계에 산다는 것은 슬프고 외로운 일이다. 그러나 다 같이 제각각 다른 세계에 살면서 서로 눈짓하고, 서로 허여(許與)하고, 서로 이해의 미소를 바꾼다는 것은 얼마나 신비롭고 기쁜 일인가.
"여기 내가 있다. ㅡ 어디 내가 있느냐?"
63
어리석은 사람으로 '어리석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벌써 어진 것이다.
어리석은 사람으로 '어질다' 생각하면
그야말로 어리석음, 어리석은 것이다.
"너 자신을 알라." ㅡ 소크라테스
여기서 모든 철학과 종교의 기원이 출발한다.
우주와 자기 자신과의 관계, 그에 대한 자기 자신의 위치의 확인.
여기서 지식과 논리의 합리적 철학이 그의 가능성의 한계를 아는 총명을 가질 때,
비로소 무한한 가능의 신앙과 행지(行知)의 종교 세계가 눈 앞에 전개될 것이다.

상처가 났을 때 연고를 바르고 붕대로 감는 것은
상처가 소중해서가 아니라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복을 짓고 그 공덕으로 재물을 풍족히 얻는 일은 좋지만 그 복을 종점의 목표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는 뛰어넘어야 할 언덕으로 언젠가는 치료해야 할 상처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가세나 비구는 수행승이 육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부상당한 사람이 상처를 귀히 여기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육신은 끈적끈적한 살갗에 덮인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 큰 종기와 같다. 부정하고 악취나는 것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필자는 지금까지 우리 몸에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 줄을 알지 못했다. 보통 눈. 귀. 코. 혀. 몸의 다섯 가지 감각 기관만을 알고 있었다. 이 다섯 가지 감각기관에 마음을 합치면 여섯 가지가 될 뿐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우리의 몸이 아홉 개의 구멍이 뚫린 종기와 같다고 한다. 우리 몸에 있는 구멍들을 세어보면, 눈구멍 2개, 귓구멍 2개, 콧구멍 2개, 입구멍 1개, 소변구멍 1개, 대변구멍 1개, 총 아홉 개가 된다. 이 아홉 개의 구멍에서 악취나는 것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이 몸은 전체가 상처로 되어 있으므로 상처를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행하는 사람들은 그 몸을 그리고 재가 불자들은 우리가 가진 재물과 명예와 안락 등을 9개의 구멍 난 종기를 다루듯, 오물이 나오는 상처투성이의 구멍을 다루듯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 왕은 비구에게 해탈한 사람도 고통을 느끼느냐고 묻는다. 비구는 육체적인 고통은 느끼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왕이 이유를 묻자 비구가 대답한다.
"대왕이여, 해탈한 사람에게 있어서 육체적인 인연은 계속되지만 정신적인 고통의 인연은 끝나기 때문에 육체적인 고통은 느끼고 정신적인 고통은 느끼지 않습니다."
해탈한 사람은 육체적인 고통은 느끼지면서도 정신적인 고통은 느끼지 않는다는 말은 선종에 있어서 '불매인과(不昧因果)' 즉 '인과를 받으면서도 인과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한 수도승이 조실스님에게 "깨달으면 자기가 지은 업을 자기가 받습니까? 안 받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조실스님은 "깨달은 이는 인과에 떨어지지 않느니라."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잘못한 벌로 그 조실스님은 500생 동안 여우의 몸을 받았다고 한다.
바른 대답은 "악업을 지은 사람이 해탈을 했을 경우 그 사람은 자기가 지은 악업의 과보를 받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악업의 과보에 괴로워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가 되어야 한다. 나쁜 일을 하면 그 과보로 고통을 당하게 되지만 존재의 실상을 깨쳐서 여실히 관찰하기 때문에 육체적인 괴로움을 당한다고 해서 정신까지 괴로워지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괴로운 것은 앞뒤를 알 수 없을 때이다. 가차가 갑자기 터널을 통과하게 될 때 철로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나 아는 사람이 다 같이 어둠을 겪게 된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언제 터널을 완전히 통과할지 모르기 때문에 당황하고 두려워하게 되지만 철로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둠이 걷힐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무런 괴로움을 느낄 것이 없다. 사업하는 사람이 자금에 쪼들릴 때 조그만 성패에도 마음이 오그라들고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어떤 실패의 과정 뒤에 반드시 오게 될 성공을 아는 사람은 과정의 실패를 무서워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실패라는 과정은 육체적. 물질적으로 괴로운 일이지만 마음은 전혀 딴판으로 편안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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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2566년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는 고요한 아침산사는 신비롭습니다.
비로전과 나한전
지장대원탑과 대탑
삼쌍탑
그밖의 탑들의 위용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불심과 환희심을 드높혀 주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 어떤
속세의
먼지나
바이러스를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용맹(勇猛)을 떨치시는
두 신장님들의 모습이
장관입니다.
감동의 연속입니다.
선남선녀(善男善女)님들께서는
안면암의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맞이하시면서
평정심을 되찾아
다시 또 활기차게 보람된 하루를 시작하시길 축원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맑은 하늘 햇 살이 비추고 우뚝선 탑이 한층 선명 하며 마을 환희와 안정된 기쁨 을줍니다.,,며칠 남지안은 초파일 ! 얼마나 멀리서 멀리서 오셨는가 물에도젖 지않불에도타지않는 오로지 한마음한마음 간직하고 누구를위하여 역까지오셨는가 기쁨기쁨이여 찿아오셨는가 거룩하시고 미묘하신 진리 ! 우리들의 어리섞음을 캐우쳐서 지혜와 복덕구족하신 부처님 폰으로저의 마음을 찍으며 해복한 합장을 오리옵나이다 . 불법의 포교에 큰 감사를 드리며정말 다행이구나 또합장올립니다 . 거룩하시고거룩하신 석가모니 부처님 ! 어서 안정된 평등한 세상 으로살게하옵소서..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서카모니불 나무시아 본사 석가모니불 감사합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원만행을 적극 실천하시는 큰보살님!~
제가 어제는 더 정신없어서 지금에서야 답글드리네요.
보살님의 자비심에 깊이 감사올립니다.
폰으로 보살님의 마음을 찍으신다니 역시 상근기이십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