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창창(蒼蒼)한 하늘에 나부끼는 등들> 2021년 5월 13일 木 (음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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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7,745회 작성일 21-05-13 09:4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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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사람은 형식만 따라
달마다 음식에 고행을 본받아도,
그는 참된 법을 아는 사람의
16분의 1(아주 작은 부분)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상이란 목석이나 쇠붙이만이 아니다.
섬기지 않을 것을 섬기는 것, 내가 마땅히 시키고 부려야 할 것을 도리어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 모두 우상이다.
부귀. 명예. 지식. 색정 등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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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짜낸 쇠젖은 상하지 않듯,
재에 덮힌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어진 업이 당장에는 안 보이나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죄업이 두려워, 고뇌를 벗어나려 너는 산속으로, 바닷가로, 공중으로 가 보려무나.
그러나 그 방소(方所)는 바이없을 것이다.
먼저 네 마음에서 벗어나라! 마음에서!

해탈한 사람의 시간 ( 2 )
시간의 줄을 타고 시간의 줄 위에서
영원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한 순간의 일념에서
영원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가 여기서 조신대사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은 꿈 속의 1분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살았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의 길이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시간을 정해서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혹한 중생은 자신이 시간을 정하고 그 시간의 감옥에 자기가 갇히고 만다. 해탈한 사람은 시간이 있거나 말거나 시간을 자유롭게 부리기 때문에 시간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고 시간이 없어도 시간 속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 의하면 일념의 순간이 무량겁이라는 헤아릴 수 없는 긴 시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시간의 주관성과 인간의 먹고 자고 생활하는 주기를 시험하고자 했다. 그래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동굴 속의 각 방에 들게 하고 햇빛이 없는 상태에서 6개월을 살게 했다. 밤낮을 알 수 없게 하기 위해서이다. 호롱불은 자유롭게 끄고 켤 수 있지만 밖에서 해가 뜨는지 지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시계도 달력도 주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접촉하지도 못하게 했다. 만약 접촉하게 되면 서로 상의해서 같은 주기를 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굴 속의 각 방에 있는 사람들은 날짜 가는 줄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몸이 나타내는 주기로 하루하루를 계산했다. 가령 하루 세 끼를 먹고 밤에 잘 경우, 아침식사부터 다음 식사 전까지를 한 주기로 계산했다. 해가 뜨고 지는 생활 속에서는 하루 24시간이 한 주기로 계산했다. 해가 뜨고 지는 생활 속에서는 하루 24시간이 한 주기로 정해져 있지만 굴 속에서는 사람에 따라 주기의 시간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는 것이었다. 주기가 짧은 사람의 하루는 16시간인 반면 주기가 긴 사람의 하루는 75시간이 되기도 했다. 이 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생활주기가 얼마든지 달라 질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지만 시간은 주관적이라는 것도 실증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불교의 모든 중요 교리나 사상에서는 실체적인 시간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체를 부정하는 공사상이나, 모든 것을 주관작으로 지어서 본 바일 뿐이라고 하는 일체유심조 사상에서도 다 같이 시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시간은 우매한 범부중생이 '나'라고 하는 것이나 '내 것'이라고 하는 것에 집착함으로써 생긴다고 보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생각이 없는 바위에게는 천년만년 동안 세월의 풍화작용을 겪으면서 형태가 변하더라고 특별히 붙잡거나 그리워해야 할 시간이 없다. 또 설사 시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교에서는 그 시간의 줄을 타고 시간의 줄 위에서 영원을 얻으려고 하거나 모든 시간을 다 밟아서 영원을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한 순간의 일념에서 영원을 찾으려고 한다. 마치 한 모금의 바닷물에서 모든 바닷물의 맛을 다 보듯이 말이다.
해탈은 불교적 이상이므로 불교에서는 궁극적으로 시간의 존재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가세나 비구는 어떤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고 업을 짓지 않고 수행해서 해탈한 사람에게는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업을 짓는 사람의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미혹과 집착에서 스스로 지어보는 것일 뿐이다.
불교의 이상은 시간을 지우는 것이다. 시간을 지우기 위해서는 나와 내 것이라는 자기중심적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면 바위에게 시간이 없듯이 우리에게도 시간이 없어진다. 불교의 이상은 무량겁을 살아서 영원을 얻는 것이 아니다. 한 모금의 바닷물에서 이 세계 모든 바닷물의 짠 맛을 알듯이 한 순간의 일념에서 무량겁의 시간을 살고자 하는 것이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구름 한 점 없는 안면암 도량 위 창창(蒼蒼)한 하늘에
청정 바닷바람을 맞으며
<부처님 오신 날>을 기다리는 연등들이 살랑살랑 나부끼고 있습니다.
너무 쎄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에
자연스레 몸을 맡기며 천상의 꽃마냥 오색으로 아름다히 피었습니다.
2566년 전에 탄생하시어
6년의 고행 끝에
무상정등정각을 이루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찌기 중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 ㅡ
세상 일의 참된 내용이나 형편을 두루 알며
최고로 바르고 원만한 부처의 마음 또는 그 지혜)
*중도(中道) ㅡ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
苦(고)와 樂(낙)의 양면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얻는 길을 의미하는 불교교리)
우리 범부중생들의 삶도
중도를 지키며
너무 팍팍하지도
너무 해이(解弛)하지도 않게
시시처처에서 안락했으면 하는 바람 절실합니다.
부처님 머리 형상을 닮은
불두화(佛頭花)가
초파일이 다가올수록
더욱더
희디흰 순백의 영혼처럼 영롱하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이제깨달음을 얻았으니 물마시매 스슷로알뿐이지요?그맛은 설명할수없고 먹어본사람이안다 앎 과 생각이 일치해야한다. 우리는 위선을 가장하고있다 . 지혜의 능력으로 잘살펴서 깨달음종교 마음닦고 닥아야한다 ,한걸음나와서 안과밖이 사무쳐서그본성을알아 일체망상이없는 무념으로 .만일망념은 뜬구름 가림과같아 해와달이 바람이불어겉어주면 자성 가운데 만가지가 밝아지니 견성한것이다.수정같이묘한깨달음이당연히 일체지에중도에처하며 맑고맑아야한다. 모름지기선지식이 끌어주어 그본성은 차별이 없다. 성주괴 공 의 상을 보았으나 내면을보면 색에서 공까지 자성이다.위의 글도 잘보았읍니다 .,지장보살님의도량 위에는 약사불 아래는 지장 보살님 위에불전 함있는곳은 해수 관세음 보살님 이 서계셨으면 좋을듯 싶어요.! , ..나무 아미타불 감사드립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원만행을 적극 실천하시는 큰보살님!~
해수관세음 보살님이 서계셨으면 좋을 듯 싶다는
보살님의 고견에
절대 공감합니다.
지장보살님과 애기동자 천진불 함께 계신
전망 뛰어난 곳에
장차 해수관세음보살님께서 봉안되시면
명실공히
서해안 관음성지로 완성되리라 굳세게 믿습니다.
감사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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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 합장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너무 덥네요
더운 날씨 건강들 하셔요
그늘에 앉아 있어요
바람도 불고요
좋은 날 들만 있으시길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셔요
정광월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다정다감하시고 총명하신 정광월보살님!~
날씨가 벌써 너무 덥다는 말이 나올 정도인가요?
저는 방콕 집콕이니까 추운지 더운지 모르고 세월만 보내고 있답니다.
불자님들! 독자님들!
오늘도 내일도 좋은 날들만 있으시길
정광월보살님 덩달아 저도 기원드리겠습니다.
감사 감사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