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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아들 생일에 뒤돌아 보는 1년의 특별한 참회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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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9건 조회 19,193회 작성일 21-01-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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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 생일에 뒤돌아 보는 1년간 특별한 참회 기도


나이 60이 되어

드디어  저의 인생 일막2장이 시작되었습니다.

38년간의 결혼생활이 무위(無爲로) 끝나면서입니다.


실상(實像을 허상(虛像)으로,

허상을 실상으로

전도몽상(顚倒夢想 반야심경에 나오는 글귀ㅡ앞뒤가 뒤바뀐 꿈같은 생각)되었던

결혼생활은

참 나를 찾아서  마침내 인생 일막 중  1장의 막을 내렸습니다.


인생 일막이장이라는 타이틀은

9년 전 효성이 지극한 저의 아들이 정해준 선물입니다.


세상은 거의 언제나 약자 편이어서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팬들은 대부분 약자를 응원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엄마의 너무 늦은 결정에 흔쾌히 동의해 주었던 고마운 아들과 딸입니다.

지혜로운 언니와 여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배를 얻은 셈이니

결코 손해본 인생이 아니라고 위로했습니다.


저는 일평생 영특하지 못하여,

지고지순(至高至順)한 사랑만을 꿈꾸며 시작된

인생최고의 수련장 결혼학교를 황혼에 중퇴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정처없이 천년고찰을 찾아

템플스테이를 하려고

과천의 안면암 포교당으로 큰스님을 무작정  찾아 뵈었습니다.


꿈많고 철없던 학생시절의 저를 잘 기억하시던

대자대비심의 큰스님께서는

빈 손으로 홀로된 무명(無明)의 중생을 안면암에 보내주셨습니다.


염치없이 한 달 가까이 법적인 숙려기간을 쓰라린 심정으로 자숙하면서 보냈습니다.

새벽예불, 울력, 약사여래부처님께 108배, 금강경 독송이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안면암의 영험하신 불보살님과 신장님들은

저의 뜨거운 눈물을 말없이 지켜 보셨으며,

설봉스님과 밀운행보살님 도일심보살님께서는

작고 늙은 보살을 따뜻한 시선으로 조용히 대해 주셨습니다.



이윽고 숙려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동안

평화롭고 아름다운  안면암의 광활한 하늘과 드넓은 앞 바다는

저의 지친 영혼과 육신을  정화시켜 주었으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무사히  귀가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현명하고 총명한 딸의 중재 아래 저는 싸늘한  눈길 한번

그분에게 주지 않은 채 영원히 남남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름 후  11월 중순 경,

일본에서 화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여고 동창생의 극진한 배려로

열흘 간 생전 처음의 일본여행(애지현)을 다녀 왔습니다.


효심이 깊은 아들과 딸 덕분에 더 오랫동안 휴식을 취할 수 있었지만,

곧바로 용감하게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습니다.


불교 요양원에서 1년간 근무했을 때 마음을 자주 나눴던 J선생님의 호의로

몇 군데 경기도 병원에서 1년 가까이 간병일을 쉬엄쉬엄 일했습니다.

날짜 기간이 일정치 않은 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내버스 안에서는  영낙없이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2014년이 찬란히 밝아 왔습니다.

몇 년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요양보호협회 M소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으므로 내일이면 무조건 믿고 일하러 가야 합니다.


한 겨울 추위가 제법인  1월 중순 어느날 새벽입니다.

비몽사몽으로

오랜 세월 부지불식(不知不識)간에 저를  항상 지켜 주셨던 신장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는 얼굴을 어느 찰라 뵈었습니다.

하여튼 좋은 인연이 될 것같은 예감이 스쳐갔습니다.


파주시 00동이라는 것까지만 듣고 더이상 묻지 않았는데

다음날 아침 일찌기 소장님이 전화상으로 주소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에 우째 이런 일이. . . . . . .'


이 넓은 하늘 아래 경기도 파주 땅에서

하필이면 깊은 회한과 진한 눈물을 흩뿌리며

떠나 왔던 내 집과 똑같은 아파트 단지라니 ㅡ

아침 조반을 거의 한 수저도 뜨지 못했습니다.



소장님과 요양보호해 드릴 어르신을 실망시킬 수 없어 무거운  발길을 움직여

아침 9시경 약속 시간에

도착해 보니 내 집이었던 10동 10층에서 대각선으로

뒷 베란다가 곧바로 마주 보이는 2동의 15층이었습니다.


80대 후반 인상 좋으신 날씬한 할아버지와

후덕한 인상의 몸피가 넉넉하신 할머니 부부를 모시는 일입니다.

입주 초기부터 10년 가까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한두번은  뵈었던 분들이셨으므로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말수가 아주 적으신 신사 분이셨는데 치매3급이셨고,

할머니께서는 평생 경제적 여유가 있으셨던 초기 치매의 정많은 이웃집 보통 할머니셨습니다.


한가해진

낮 시간을 틈타  출근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름 후면  화정 쪽으로 이사하니까  염려 마시라고 시원스럽게 말해줬습니다.

회사가 너무나 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으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밤 10시경,

오늘의 일을 무사히 끝내고 저의 자유시간입니다.

다시는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으리라고 맹세하며 떠났던

내 집 거실에 불이 환히 켜져 있습니다.

거실 대형 유리창으로 TV 화면이 반사되어 보입니다.

하지만 집주인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아 무척 다행입니다.


엄마는 뒷 베란다 유리 창문을 활짝 열어 손을 힘차게 움직입니다.

밤늦게 퇴근하여 귀가한 아들은 자기 방에서 엄마를 향해 손을 반갑게 흔듭니다.

모자는 이렇게 가까이서 웃으며 반가운 상봉을 매일매일 했습니다.



밑반찬과 먹거리는 서울에서 잘 사는 효녀 따님이

일주일에 한번씩 큰 트렁크에다 가득 장만해 오니 음식 솜씨가

겨우 낙제를 면한

저는 다행히 밥과 국만 하면 되었습니다.

음식 솜씨가 뛰어 나셨던 할머니께서는 말상대해줄  젊은 아줌마가 절실하셨던 것입니다.


외로움을 몹시 타시어 가끔은 잠자리에서도 눈물을 흘리시면

할아버지께서 눈물을 글썽인 채

할머니  두 손을 잡으며 말없이 위로해 주시는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저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자는 척할 따름입니다.


할머니의 청으로 셋이서 함께 거실 바닥에서 잠자게 되었으나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된 의미심장한 상황은 무엇일까 하며

며칠 동안 의문에 빠져 있었는데 어르신들 모르게 여러 번 슬픔의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아마도  아직 분명히 해결되지 않은 깊은 인연의 뿌리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어르신들은 이미 깊은 잠에 빠지셨고,

몇 년 동안 자기 전에 항상 하는 기도 중 참회 진언을 조용히 하고 있노라니

애들 아빠에게 지었던 숙생의 참회기도가 남았음을 가까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생애에는  부디 좋은 여자 만나

제 옆에서는 이루지 못한 천부적인 자기 꿈을 반드시 이루게 해주십시오!

옴 살바못자모지 사바하

옴 살바못자모지 사바하

옴 살바못자모지 사바하'

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만성적으로 설사를 자주 하시는 할아버지의 손을 다정히 잡고  

아파트 정문 입구의

가정의학과 의원에 다니게 된 첫날입니다.

허리가 굽으신 할아버지께서는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으셨으며, 10미터쯤 겨우 걷다가 잠시 서서 허리를 펴셨는데

벌써 제가  이곳 생활을 시작한 지 2주째입니다.


바야흐로 내일이면 아들이 이사를 떠나는 날이건만,

정문 차량 차단기 앞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는

애들 아빠의  승용차를 목격하고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자칫 잘못했더라면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코 앞에서 들킬 뻔했습니다.

다행히 길의 각도가 약간 달랐기 때문에 사단은 일어나지 않았고,

전생의 악연들이 아주 무사히 끝나고 말았습니다.


밤에 퇴근한 아들에게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이제는 엄마  마음 편하게  일 잘 하시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이삿날입니다.

아들은 출근해서 보이지 않고 전 남편의 모습도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고층 사다리가 두어 대 와서 분주히 일하는 모습들을  베란다에서

무심히 내려다 봤습니다.

낯익은 정든  저의 살림들이 고스란히 떠나고 있었습니다.

일하느라 미처 작별인사를 건네지 못했으며 떠나가는 마지막 모습은 놓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오후에 쓰레기 버리러 나갔다가 살았던 집 앞으로 잠깐 가보니

버려진 장농과 가구가 쓸쓸히 저를 반겨 줍니다.

병든 우리 엄마가 철부지 둘째딸이

부모님 속썩이며 대학 중퇴한 채 시집갈 때 알뜰살뜰 장만해 주셨던 가구들입니다.

이곳은 삯월세 주고 35평에서 10평 가까이 줄여 가는 까닭에 살림을 버리는 것이었는데

부모님께

정들었던 가구들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며칠 후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나 그 어느날부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 (空) 무상(無常) 무아(無我)를

철저히 가르쳐 주고 허공(虛空) 속으로  완전무결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후다닥 1년의 시간이 흘러 지나갔습니다.

난청(難聽)이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청력을 많이 회복하셨고,

여기저기 고통을 자면서까지 표현하셨던 할머니께서도 얼굴이 훨씬  밝고 편해지셨습니다.

구정을 얼마 앞두고 가끔 저를 괴롭히던 요통이 재발하였습니다.

정 많으신 할머니의 협조로

저를 보내지 않으려는 할아버지께는 다시 허리가 좋아지면 꼭 일하러 오겠다고 약속하고서

가까스로 집으로 돌아와 병원 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그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했지만  더이상 케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애들 아빠를 위한 참회기도도 그 댁을 떠나 오면서 더이상 없었습니다.



마침내 숙생의 깊은 악연이 거의 다 사라졌는지

1년 정도 지나 애들 아빠는 좋은 여자를 만나 오늘날까지 잘 살고 있습니다.


눈꺼풀에 콩깍지가 두텁게 씌여 있을 때는

너무 작고 귀여워 주머니 속에 늘 넣어 다니고 싶다고 노래부르던

저 대신

늘씬하게 키크고 젊고 경제력있는 여자를 만났으니 정말 잘 되었습니다.


짧았던 1년간의 참회기도는 대보살님이셨던 전 시어머니께서

당신 아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하신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생에서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오늘은

서설(瑞雪)이 몹시 내리던 소한(小寒) 다음날

위생병원에서 태어났던 저의 아들 음력 생일(12월 6일 7시 30분)입니다.

멀리 떨어져 살기에 찹쌀밥도 미역국도 없습니다.

하지만

초하룻날 부처님께  큰스님께서

특별헌공을 올려 주셨으므로 그냥 넘어가도 즐겁기만 합니다.


아들과 딸은

항상 늘 바보같았던 엄마에게  좋은 도반이며 큰 스승이었습니다.


금생에서 가장 귀한 보배인 아들과 딸을  저에게 선물해 준

애들 아빠에게 멀리서나마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참회기도와 함께 깊은 감사를 바칩니다.


옴 살바못자모지 사바하

옴 살바못자모지 사바하

옴 살바못자모시 사바하





아들이 멀리 이사가기 전날의 마지막 거실 풍경 ,왼쪽 중간

img.jpg

사은품으로 타왔으나

겁이 많고 게을러서  한번도 타보지 못하고

현관문 밖을 쓸쓸히 지켜줬던 저의 새 자전거 (오른쪽)ㅡ

이렇게 무상으로 끝나 버릴 줄 모르고 어영부영 미루기만 했으니

이 자전거 사진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밀려듭니다.

img.jpg

버려진 채

형태를 갖추고 있는 장롱과 부서져 버린 장롱의 잔해.

img.jpg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능력이 매우 부족한 사람이
사랑하는 아들 생일에
꼭 쓰고 싶어 정신없이 휘갈겼습니다.

왜 추접스럽게 이런 글을 쓰느냐고
질책하시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저의 일생에서  중요했던 순간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끝까지 읽어 주신
선남선녀님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드립니다.

새해가 밝았으며 곧 입춘이 다가옵니다.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늘 여여하시길 비옵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ㅇㄷ님의 댓글

ㅇㄷ 작성일

이혼은 주홍글씨가 아닌 잊고있던 나를 찾는 새로운 시작이자 탄생입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가르쳐 주셨으니
귀한 스승님이십니다.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설봉스님님의 댓글

설봉스님 작성일

추운 겨울을 힘겹게 지내고나면 따스한 봄이 오듯이 인생사 새옹지마라도 추운겨울을 생각해보기도 하고  그겨울이 부처님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이 봄을 맞이하시는 해탈심 보살님의 불심에 찬사를 보냅니다. 설봉합장.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설봉스님의 말씀처럼 저는 추운 겨울을 지내고 따스한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부처님의 가호와 가피력이십니다.
작은 신도에게 보여 주시는 성원과 배려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송 삼 마 야님의 댓글

송 삼 마 야 작성일

가슴이 먹먹 합니다 보살님을 볼때면 착한 작은 선녀 같이 생각
하거던요 착한 해탈심 보살님 좋은 일만 있을거여요
전생의 업이 남아서 이를 갚느라 애쓰는걸거여요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할것 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을 이렇게 믿으니까요 관세음보살 마하살.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송삼마야 보살님!~~~

아주 작은 사람에게
언제나 넘치게 베풀어 주시는
크나큰 사랑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전생의 업장들 갚느라 많은 세월 애썼습니다.
대자대비하신 불보살님들의 가호와 가피로
앞으로의 여생은 고운 미소 가득한 채
안면암과 포교당을 위해
봉사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나무약사여래불
                                          나무관세음보살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우리의  생사  는  인연  법 이라는  누가  ?  내가    확실히    알아  빈틈없는  수행  모든 괴로움은  또 얽 메임은  잘  살펴봄은  내마음이 일으키지요.    그러나 밖으로  부터오는거 같애도  안심입명  을  항시 안  으로살피면  그러나  마음의 실체가 공한줄 알고 고요한  호흡으로  하나의 화두를 든다면  모든 괴로음과  얽메임이  즉시 사라지지요!    해탈심보살 님  넒고  깊은 원력세워  보살도를 닦아  관세음보살  님의  가피로 성불 합시다.  옴아로늑계사바하 .....친견하고  함께 성불 하여지이다.    사랑해 ......요...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원만행보살님!~

불교는 인연법 연기법을 깨친다면 일체법을 증득하기가 어렵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저는 보살님처럼 넓고 깊은 원력은 감히 흉내도 낼 수 없습니다.
우리 모든  불자님께서는
법계에 두루 계신 불보살님들의 가피로 언젠가는 성불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멸업장진언
아로늑계사바하
아로늑계사바하
아로늑계사바하     

                                  저도 사랑합니다.

                    願共法界 諸衆生 自他一時 成佛道
                    (원컨대 다함께 법계 모든 중생들 자신도 타인도 일시에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나무약사여래불
                        나무관세음보살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