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 흉년에 사냥하기를 멈추신 나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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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선주게시대행 댓글 17건 조회 178,551회 작성일 20-05-31 17:54본문
人性은 원래 佛心
노루의 배를 가르니 허옇고 출렁거리는 듯한 크다란 물보자기 같은 것이 보이고 그 속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있었다. 그걸 본 사람들이 흠칫 놀란 듯 한발씩 물러나는 것을 어린 나는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 * *
1946년, 병술(丙戌)년 흉년의 봄은 끔찍했었다. 날마다 굶어 죽어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살아 있는 사람들도 굶주려서 얼굴이 누렇게 퉁퉁 부어 있었고, 하룻밤만 자고 나도 누구네 막내 애기가 혹은 누구네 할매가 죽었다는 소문이 온 마을을 슬픔에 잠기게 하고 있었다.
그 해, 그러니까 광복 이듬해 5월, 나는 열 살까지 살던 일본 동경을 떠나 부모님을 따라 아버지의 고향 영양(英陽)으로 돌아왔다. 일본 큐슈 시모노세끼 항에서 관부(關釜)페리를 타고 부산항으로 들어와서, 부산에서 화물차 같은 낡은 기차를 타고 안동역에서 내려, 역 앞에서 전세 낸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영양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내겐 엄청나게 공포스런 여행길이었다.
트럭 짐칸에 태워진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름 걱정이 컸었다. 길은 울퉁불퉁 자갈 길인데다가 산은 높고 골은 깊어 오르막 내리막 구비구비 도는데 한 구비를 돌 때마다 민가가 보이려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주변은 적막강산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눈 앞에 보이는 소나무들이 밑 둥에 껍질이 없어 희끄므레 해 보이는 것이 마치 유령이 나열해 있는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소나무 껍질을 벗겨다가 송기(松肌)떡을 해 먹어 치운 흔적들이라 했다.
고향마을에 도착하니 일가친척들이 모여들었다. 콧 끝에 두 줄기 콧물 흘린 자욱이 난 어린아이들이 윗도리만 입은 채 바람만 가득 찬 배를 내밀고 애잔한 눈빛으로 이 낯선 외래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이들은 흉년 참상의 표본 같았다.
아버지는 문중 회의가 열리는 기회에 일가친척들이 굶어 죽는 이 판에 문중에서 무슨 대책이 있어야지 않겠냐면서 각성을 촉구하셨다. 부잣집 몇몇이 고방(庫房)에 감춰둔 곡식을 내 놓겠다는 서약이 있은 것은 성과지만 그 이상은 아무 묘안이 나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젊은 청년 몇 사람에게 멧돼지 사냥을 제안했다. 고갈된 단백질 보급을 위해서 낸 제안이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감자 밭을 요절내는 돼지를 잡는다는 기대에 반색을 하였다. 아버지는 읍내 장터 대장간에 가서 몇 종류의 쇠창을 만들어 오셨다. 내 키가 훨씬 넘는 나무를 길고 가늘게 다듬어서 창을 완성하셨다. 자원하고 나선 청년 몇 명과 산에 가셨지만 번번히 빈손으로 돌아오셨다. 내 아버지는 물론 자원자들도 허기진 배를 탓하지 않고 험한 산등성이를 오르내리며 애 쓰셨으니 마을 사람 모두 안스런 마음으로 그들의 하산을 맞이하곤 했다. 나는 빈손으로 오시는 아버지의 허탈해 하시는 표정에 울컥해서 몰래 숨어서 울었다.
우리 집에서 40리 가량 먼 석보 솔밑 마을에 있는 외가는 큰 과수원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세퍼드 개 몇 마리를 기르고 있었는데, 아직 과일 열매가 자라지 않아서 개들은 쉬고 있었다. 아버지는 처남에게 사정을 말하고, 개 두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이 빌려온 개들은 키가 훤칠하고 영리하고 용맹스러웠다. 아버지가 이 개들을 데리고 산에 가시는 날은 매번 노루나 돼지 아니면 못해도 산토끼 오소리 몇 마리는 잡아오셨다. 큰 짐승을 잡아오는 날이면 온 마을이 잔치가 열린 듯 떠들썩 해졌다. 우리 마을이 집성촌(集姓村)이어서 이웃 모두가 일가 친척이었다.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집에 고기를 한칼씩 떼어 보내고 나면 우리 집에는 뼈다귀 등 허접스런 것들만 남곤 했다. 이것들을 큰 가마솥에 넣어 몇 시간씩 끓이다 보면 뽀얀 국물이 솟구치는데 이 마져도 구수한 냄새를 맡고 오는 사람들이 한 양푼 씩 얻어 들고 갔다. 정작에 우리 집에 남는 것이 얼마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만족스러워하셨다.
그런데, 그 날은 사정이 달랐다. 아버지 말씀을 듣고 달려 나오신 할머니가 노루 배 안에서 나온 보자기 같은 것을 채반에 얹어서 부엌 부뚜막에 올려 놓고 그 옆에 정화수를 한 사발 떠놓고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넓다란 송판으로 만든 부엌 대문 뒤에 서서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며 할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었다. "부처님께 비나이다. 천지신명께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 산신령님께 비나이다. 삼신할머니께 비나이다. 부처님께서 이 일을 용서 하옵소서. 이 늙은 에미를 봉양하려고 저의 큰 아들 00가 산에 가서 살생하기를 거듭하다 오늘에 와서 새끼 벤 노루를 잡았으니 이는 분명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내리신 것이오니... 어쩌고... .
할머니는 그 야윈 손을 비스듬히 마주 비비며 수도 없이 절을 하셨다. 그리고는 그 채반을 가마솥에 넣어 오랫동안 불을 때셨다. 채반에 얹혀진 것은 노루 뱃속에서 다 자란, 말하자면 노루의 태아였다. 할머니는 이것을 안 마을 오랜 병고에 시달리는 석천댁(石泉宅) 큰할머니에게 약 삼아 드시라고 보내셨다. 할머니는 이왕지사 사람 손에 잡힌 것을 유익하게 보시한다 하셨다.
이 일 이후 아버지는 사냥 나가기를 사양하시고, 사냥용 창도 디딜방앗간의 가로지기 서까래 위에 꽁꽁 묶어 숨겨버렸다. 노루의 배를 가르면서 이 노루가 잉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장 크게 충격을 받은 사람이 바로 아버지셨다. 사냥을 성공적으로 도와주었던 충성스럽고 용맹한 개들과의 이별을 나는 슬퍼했다. 아버지가 사냥을 하지 않게 된 것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은 크게 아쉬워하였음은 물론이다.
그 날, 할머니의 기도 소리를 유심히 들어서인지 나는 그 후 고기를 먹으면 두드레기가 온 전신에 돋곤 했다. 내가 고기를 정상인처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세월이 훌쩍 지난 열 아홉 살에 들 무렵부터였다. 어느 결엔가 나는 고기를 먹을 때는 죽어간 짐승을 위해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져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참회하시는 마음이 내 마음에 전해져서 우러나는 기도일 것이다.
* * * *
나는 지아비의 위패를 속리산 법주사에 안치하고, 몇 해 후에 오랜 직장에서 은퇴한 후에사 절절한 마음을 안고 다시 절을 찾아 가게 되었다. 속세에서 수 많은 청년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나는 그 곳에서 영적 스승 석지명 스님을 만나 미미하지만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깨달으면서 가끔 먼 옛날 그 어린 시절을 돌아보곤 한다. 그 가난했던 시절에 할머니의 정성 어린 기도와 살생을 참회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이미 나는 큰 감화를 받고 있었던 사실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그 때 일을 회상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는 아버지의 달라진 모습에서 아버지의 佛心을 보았었다고 믿는다. 그 때 내가 감지(感知)한 아버지의 불심이 어린 내 가슴에 감화로 고여있다가 수 십 년이 흐른 후 나를 부처님 앞으로 가게 해주었다고 믿으며 오늘에도 감사하고 있다.
경자년 불탄일에, 무진성 吳 宣 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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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오선주 대보살님, 아주 좋은 글을 쓰셨네요. 감동입니다. 우리 중생이 존재하고 ,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알게 모르게 살생도 하고 다른 존재들에게 죄를 짓고 살아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만큼 밥값을 하며 사는 지, 다시 참회하고 되돌아봐야겠지요?? 무명으로 인한 연기로 탐진치를 버리지 못하고 이렇게 자연까지 파괴하고 바이러스 병마에까지 참혹하게 시달리고 있는 온 인류가 크게 반성하고 아름다운 정토를 만들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초파일을 맞이하여 모두가 더욱 다 분발하기를 빌며...독일의 소양자가 합장합니다.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자연심 큰 보살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회상하노라니
철이 없어 깨닫지 못한 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다가왔습니다.
부처님께서 모든 중생이 부처다라고 하신 말씀을 상기하니
내 아버지의 마음 속에 불심이 있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보살님께서 하시는 말씀 구구절절이
철학자의 깊은 고뇌를 연상케합니다.
철학자가 따로 있겠습니까 .
수십년을 두고 불경을 읽고
삶 속에서 진리를 터득하고 계시니
하시는 말씀 모두가 귀한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코로나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오선주 드림
마니주님의 댓글
마니주 작성일슬픈 글이네요. 가엾은 노루 모자의 극락왕생을 빕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마니주님!~
매우 바쁘신 교수님께서 오랜만에 왕림하셨습니다.
반갑고 반갑습니다.
우리나라 근대의 슬픈 역사 한 페이지입니다.
저도 노루 모자의 극락왕생을 빌겠습니다.
하지만
대보살님이신 조모님의 지극한 기도와
선구자이셨던 할아버님의 참회로 이미 극락왕생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존경하는 오선주 보살님!~
어제 늦은 시각에서야 게시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피로가 쌓여 읽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아 열어 보지 못했습니다.
조금 전 읽어 나서야 죄송스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 오고 말았지요.
다행히
소양자 자연심 보살님의
아주 좋은 댓글이 있어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佛心을 깨닫게 해주신 훌륭하신 할머님과
흉년에 굶주린 동네 사람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생을 하셨던 아버님과
그 분들께 감화를 받고 자라셨던 보살님의 어린 시절을 보면서
불교의 가장 핵심교리인 <연기법>이 저절로 떠올랐습니다.
우리들 안면암의
자랑스런
살아 있는 전설이신
오선주 보살님께서는 어느날 문득 대보살님으로 현현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남으로써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진다."
칠십이 되어서야 겨우 간신히 알게 되었던
<연기법>을 더욱 잘 배운 귀중한 시간입니다.
이 댓글을 쓰면서
우리들
석지명 큰스님의
★<한 권으로 읽는 불교 교리>
1장 苦와 緣起를 다시 한번 精讀했습니다.
귀하디 귀한
因緣과 佛緣에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탐욕의 결과라는
코로나 19 소멸을 기도하며
불심 깊으신 모든 불자님들을
건강하신 모습으로 곧 다시 만나 뵙기를 기원드립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마니주님의 댓글
마니주 작성일노루도 가엾고 노루를 죽이고 놀라고 마음 아파하셨을 외할아버님 모습도 눈에 그려집니다. 금생의 모든 죄업과 악연을 씻고 내세에는 모두 행복하시기를 부처님께 축원하옵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그 현장을 그대로
생생히 느끼신
마니주님의 자비심에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해탈심 합장
마니주님의 댓글
마니주 작성일해탈심 보살님. 오랫만에 인사 올립니다. 어제 부처님 오신 날을 지내시고 많이 고단하셨을 텐데 이렇게 글을 올리시니 반갑고 고맙습니다. 세월이 어수선한 때 안면암 가족 모두 건강하고 무탈하시기를 바랍니다. 마니주 합장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마니주 보살님!~
저는 먼 곳에서
연세 많으신 노보살님 요양보호하느라
애석하게도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에
동참하지 못했답니다.
인정넘치는 인사에 깊이 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부처님 오신날 쌀 공양 탁진우 탁효령 글씨도 정성스레 쓰셨읍니다. 사시 마지 공야이를 정서껏올며 감사합니다 삼배를 올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가족 분모두님께 소원 성취 하시옵소서. 노루 이야기읽는순간 벌턱펄턱 뚜어다니는 어떤 소를 잠시 생각났었읍니다.....홈피 불자님들 모두 건강하시고 감사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해지면서
막연히 느꼈던 아버지의 불심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시간에 읽어주신 여러분과
관심을 갖고 댓글 적어주신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드립니다.
연기법을 일깨워주신 헤탈심 보살님 고맙습니다.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원만행 보살님!
저는 마음으로는 공양미 3백석 올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더러 있습니다.
내 먹고 살 궁리가 앞서서 무지한 중생으로 주져앉아 삽니다.
안면암 포교당에 들어가시면서 마침내 삭발까지 하신
보살님의 불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젊으신 시절 어느날
우리 큰스님 바라보기만 해도 흐믓하다 하시더니
이제 지근에서 큰스님을 보필하게 되셨으니
소원성취하셨습니다.
나는 늙고 병들어 아무것도 못하지만
보살님께 내 몫까지 함께 부탁드려요.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네 보살님. 저는 큰스님 사대강건하시옵고 육 근청정하시어 큰스님의 원력따라 안면암 불자님들 의 정법받들어 보현행으로 날마다 행복한 발전의 삶 이되시길기원 발원하옵니다 코로나 19 가한시바삐소멸되고 지구촌 모든생몀체가 평화록게 인연따라 평등한 자연으로 영위하수있도록 하여지이다 이럴ㅇ게발원합니다. 수행이 엄격히며 정갈하시고 자비로우신 큰스님의 법제자가된 어린 걸음 마동자 이지요. 행복합니다. 불법형제 님들의 이세상에서 제일큰 ! 친 절 ! 날마다.날마다 .느끼고 새기고. 특히 법모님 오선주. 무진성 ! 감사의 두손모아 허리굽혀 절하옵니다. 나무 아미타불 .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원만행보살님!~
조어장부 큰스님의
법제자되심을 진심으로 경하드리고 찬탄하옵니다.
아무나 흉내내거나 따라 할 수 없는
보현행을
실천하시는
보살님은
세세생생에
복과 선근, 공덕을 크게 지으셨음에 틀림없습니다.
너무나 부럽고 부럽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유인순님의 댓글
유인순 작성일할머님, 아버님, 꼬마 여자 아이 모두 감동을 줍니다. 재미도 있고
유인순 안면암 관광객님의 댓글
유인순 안면암 관광객 작성일유인순 저는 안면암을 검색하던 관광객입니다.
오선주님의 댓글
오선주 작성일
유인순님!
환영합니다.
가족 관계가 단란해 보입니다.
이미 이 세상 복덕을 누리고 계시지만
안면암 창건주 석지명 대선사님을
뵐 기회를 갖이시면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깨달으시는데 도움이 되실 것 같습니다.
안면암은 그 역사가 오래지 않으나
석지명 지도법사님과 설봉 주지스님의
무한 노력으로 오늘에 이르러
많은 관광객 여러분께
영혼의 쉼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우리들의 도반으로 오시기를 기대합니다.
댁내에 건갈과 행복이 항상 충만하기를 기도합니다.
오선주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