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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백중절 포교당에서 다시 만나게 되신 우리 엄마와 친할머니 영가 (靈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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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8건 조회 166,351회 작성일 19-08-01 00:06

본문



올 백중절

포교당에서 다시 만나게 되신

우리  엄마와  친할머니 영가(靈駕)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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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여행

아주 한국적인  우리 할머니와 노년의 아버지, 간경화증으로 오래된 병든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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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_14.gif?v=2 여동생의 카카오 스토리에서 빌려온 사진 


 

장마와 폭염 속에 한 여름이 점점 무르익어 갑니다.

올 해도 어김없이 백중기도 불공드리시느라

포교당의 큰스님과

설정스님

안면암의 설봉스님께서 굵은 땀방울을 매일  몇 되씩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더불어 청정심 총무님, 진여화 총무님, 허공장 회장님, 이사장님,

각운행 보살님, 현주행 보살님, 유마심 보살님,

문사수 보살님. 안면암 공양주 보살님,

안면암과 포교당 공양간 담당봉사 보살님 등 등 ,

처처에서 수많은 봉사자님들의 소리없는  땀과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백중기도가 이제 2주 남았습니다.



저는 열한 달만에 세상에 태어났다고

어릴 적에 엄마가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멍청한 저는 남들은 열 달인데 왜 열한 달일까? 특이하네 라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생일을 맞이하여

오랜 세월 불효했던  엄마 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만 알았지

제가 우리 사바세계(娑婆世界)에

태어날 때 엄마를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게 했는지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엄마는  첫 딸 언니를  낳은 후,

외할아버지의 죽음을  무릅쓰고 3.8선을 넘으셨던 헌신적인 사랑덕분에 5년만에

간신히 저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열 달이 넘어서자 다른 신생아들처럼 출산의 징조인 이슬이라는 분비물만 내보이고

저의  못 생긴 얼굴을 결코 보여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제나저제나 매일 애타게 기다린 시간이 한 달을 끌었다고 하네요.

해산관을 하시게 된

宋0禮 친할머니께서는 66년 전이라 시골까지 버스가 다니지 않았으므로

서산 동문리에서 oo면까지

왕복 30리 길을  거의 매일 걸어 다니셨다고 합니다.

드디어 열한 달만에 제가 겨우

세상에  작은 모습을 들어내줬고, 또   21일 만에 아버지 초등학교 근무지

홍성군 oo국민학교 사택으로 이사갔는데

트럭 조수석 할머니 품에 안겨 있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었습니다.


학교 선생님들 기억력이 대체적으로 좋아 수십 년이 지났어도 학생들의 이름이나 얼굴 행동들을

잘 기억하는 것처럼

우리 아버지의 기억력은  불과 얼마 전까지도 94세의 연세에 비해 놀라우실 정도였습니다.


어릴 적이나 고희를 바라보는 지금이나

매양 한결같이 철없는 저는

제가 세상에 신고식을 하지 않는 동안

만삭의  엄마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안했을지는 여태 단 한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친할머니의  진한 외로움이나 삶의 고단함을 추측해 본 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한국적인 우리 할머니께서는 작으마한 키와 몸피셨는데

한글도 전혀 모르시고

시계만 겨우 볼 줄 아시며 오로지 자손들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십니다.


결혼한 자식이 많더라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것은 좋아하지 않으셔서

장남인 아들집에서만 계셨으며 만약에 다른 자식들 집에 가시더라도 하룻밤만 묵으시고

매일 잠들기 전에는  발까지 아주 정갈하게 닦으시는 매우 부지런하신 분이셨습니다.


36살 젊디젊은 나이에 청상과부가 되어 다섯 명의 아들과 유복녀를 성실하게 키워내신

할머니의 신산한 삶을 알려고 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들 여섯 중에서  중학교 3학년에 다니던 다섯째 아들은

 6.25 전쟁의 와중에  귀가하다가 한 밤중  가족들  아무도 모르게 의용군으로 납치당했다고 합니다.

(그 후 이산가족이 되어 상봉을 간절히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인물이 좋고 잘 생겼던 막내 아들은 법대 다니다 군에 입대하여 탱크로 훈련받던 중,

어이없는  불행한 사고를 당해

왼쪽 팔을 짜르고 나서야 탱크에서 무사히 살아 나왔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로 걸려 온 悲報 전화에  부모님께서 몹시 슬퍼 하셨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저는 중학생 때 상경하여 장남과 함께 살고 계시는 신촌 할머니 댁에서

반 년 동안  산 적 있는데

긴 곰방대에 잎담배를 말아 방바닥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이셨으며,

가끔씩  <한 오백년> 노래를 구슬프게 부르곤 하셨습니다.

전교 1등만 했던 언니는 중, 고등학교 6년 동안을 큰 댁에서 신세를 졌는데

인자하신 할머니가 계셨기에 별다른  설움없이 마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매우 조용하고 인자하셨을 뿐 아니라  음식솜씨 뛰어나고 살림살이에도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실 만큼  요조숙녀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오래 전에 쓰신 <思母曲>을 보면

속세의 흔하디 흔한 여성이 아니라 仙界에 사는 仙女님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게 우리 아버지께서는

일찍 홀로 되어 6남매를 성실히 키워내신 우리 송씨 할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담배 선물이 최악의 선물이지만,

월급 날마다 정기적으로 사드리는 아버지의 담배 몇 볼은 깊은 시름을 달래주는 아주 착한 선물이었습니다.




저는 작년 추석 때부터 시작한

{ BTN 나를 깨우는 108배  백팔대참회문} 따라하기는

아픈 허리를 핑계로 하루에 5배씩 늘려가다가

한달이 채 안 되어 108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요통이 재발했을 때는 한참을 중지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하지만

역시 아버지와 동갑내기이신 노보살님께서 하루 중 가장 기다리시는 경건한 기도 시간입니다.


<백팔 대참회문>을 그냥 무턱대고 입으로 따라 읽으며 절하다가

어느 날엔가 문득

8.조상님들의 은혜를  잊고 살아온  죄를 참회합니다.가 새삼스럽게 눈에 살며시 들어오고

뇌리에 깊이 박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 할머니께서 저를 위해 해산관하시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나이 칠십이 다 되도록 한 번도 감사의 말씀,  선물 한 가지도 드리지 않았으니 참으로 염치가 없습니다.

아주 오래 전 친정에서 잠시 할머니를 뵈었을 때 일입니다.

할머니께서는 단정히 입으신  한복 치마 속의 복주머니에서 잘 접힌 새 돈을 꺼내 어린 저의 애들에게 용돈을 두둑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기뻐하는 애들을 바라보기만 하고

만류하지 않았으니 효심이라곤 전혀 없는 나쁜 손녀딸이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장성한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을 아꼈다가 기꺼이 주신 것임을 잘 알면서도. . . . . . .)


그리고 저는 고3때 대입입시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엉뚱한 책만 좋아하고

꿈과 낭만을 쫒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시험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오고 

할머니께서는 철없는 저를 몹시 걱정하시다가 그만 장독대에서 떨어져 팔이 골절되어 큰 고생을 하셨다고 들었지만

한 번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째서 그토록 철면피였는지 생각할 수록 저를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엄마 백중기도는 포교당에서  몇 년 전부터 정성껏 드리게 되었으나,

항상 늘 마음을 짓눌렀던 엄마 제사를 작년부터 포교당에서 설 추석 명절에 지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딸 둘만 키우는 할머니의 장손이

자기 부모 제사는  열심히 지내지만 할머니 제사는 모른 체 하므로

유복녀인 잘 사는 고모가 성당에서 합동 미사를 드린다고 예전에 여동생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올 백중 때부터

이제 우리 할머니의 위패를 포교당에 모시고 백중기도를 올리게 되었으니 조상님의 은혜를 잊은

죄가 조금은 줄어든 것만 같습니다.


며느리가 다섯이나 되었건만

어느 며느리에게나 다 공평히 아껴 주시고

안 들으니 못한 말거리는 그냥 덮어 주시어

고부간의 사이가  항상 좋으셨던 할머니를

우리 엄마가  大福人이라고 평소에 말씀하신 적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제가 기억하고 있는 우리 할머니께서는 아주 젊잖고 자상한 목소리의  인욕 보살님이셨고 자비로운 보살님이셨습니다.

어질고 어지신 할머니의  온화한 모습을  보고 자라며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은 다 우리 할머니같으신 줄 알고 살았습니다.


막내로 자라나 정 많고 철 없는 우리 엄마는

포교당에서 인자하신 시어머니와 재회하여 앞으로 계속  함께 명절합동제사를 받으시게 되었으니

큰스님의 수승(殊勝)하신 염불소리에 더욱 신명이 나시면서  이제는 하나도 외롭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이제  앞으로 2주가 후다닥   지나가면

포교당에서 보고픈 우리 엄마(70세 운명)와 할머니 (87세 운명)를 다시 뵙게 될  것입니다.

출가외인이였으므로 아주 가끔씩 가족 문중 공동묘지에서나

조상님들 앞에  함께 절을 올리던 우리 할머니를 앞으로 자주 뵙게 되었으니

할머니께서도 무척 기뻐하실 것이라 믿고 싶습니다.



엄마  할머니께서

지난 날의 저의 불효를 용서해 주시고 ,

다른 영가님들과  함께 

장엄하고 경건하신   

큰스님,

설정스님의 백중  불공기도 받으시면서

정성어린 제사 공양을 편안히 맛있게 잡수실 것을 생각하니  진한 그리움이 다시금 밀려 오고 있습니다.


살았을 때의 因緣은

비록 오래 전에 벌써 끝났을 지언정,

다시 이어진

엄숙한 佛緣 앞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지며

佛緣이 世世生生 面面密密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이제 비로소 엄마와 할머니를 함께 포교당에 모시고 나니
수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듯
홀가분하고 매우 안락해졌습니다.
왜 이제서야 겨우 철이 좀 들었을까요??    해탈심 ((()))

허일님의 댓글

허일 작성일

세세생생 면면밀밀~~^^ 이어지기를..축원합니다

ybr님의 댓글의 댓글

ybr 작성일

대단히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

별하나님의 댓글

별하나 작성일

어려운 현실속에서도.. 깊은 불심.. 느끼면서.. 살아가는 마음이 고운것같아요. 건강에 유의하고 소원한바도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이#오님의 댓글

이#오 작성일

정성에 감동 입니다.본받고싶은 마음 고마워요.
영가님들도 극락왕생 !  효심덕분에 좋아하시겠습니다.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과찬 감사  감사드립니다.
영가님들께서 극락왕생하시리라 믿습니다.
무더운 여름 부디 건강하십시오.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별하나님!~
처음 와주셨습니다.
반갑고 반갑습니다.
과찬이 부끄럽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라는
엄마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소원을 이루려면
많은 노력이 있어야겠지요.        해탈심  합장

유인나님의 댓글

유인나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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