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자: 재독 한국 문인 모임과 뤼베르크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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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3건 조회 28,816회 작성일 19-07-09 17:49본문
12회 재독 한국 문학지 탄생과 뤼베르크 관광
2019년, 7월 1일에 프랑크후르트에서 문인회 회원 셋이서 아주 싼 그룹 차표로 완행을 타고 8시간 걸려 함부르크 중앙역에 도착하니, 상상 외로 날씨가 쌀쌀했다. 한국에선 더위와 장마로 고생하고, 남쪽 독일 에선 40도까지 올라가는 날씨였는데, 참 신기했다. 김 정희 총무가 우릴 픽 업을 해서 행사 장소인, '마리엔 돔 5번지' 에 가니,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 명옥 회장이 행사장에 걸 현수막을 깜빡하고 집에 두고 와서, 다시 가지러 갔다며, 사회자인 김 진호 수필가가 어쩔 줄을 모르다가 익살스럽게 노래도 하고 코미디도 하며, 재미있는 '원맨쇼' 를 해서 즐거웠다.
오후 3시 반 경에 약 100명이 모여, 국민의례와 축사가 있었다; 정 명옥 회장, 함부르크 총영사님, 이 강선 한국학 교수의 축사 후에, 김 남화 편집 위원의 12호 문학지 소개가 있었다: 이번 책의 내용은 축사와 활동 화보, 시, 수필(나도 3편을 올렸다.), 기행 문, 문학 여행, 소설, 청소년 백일 장 수상작, 그리고 편집 후기가 들어 있다며, 작품에 참가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많은 조언과 비판을 기대한다고 했다. 이어서 한국 유학생들의 음악 연주가 있었다. 피아노에 정 미경, 바이올린에 김 연정이 연주 했다. 바리톤에 한 규호 성악가가 '그집 앞' 을 노래하고, 제창으로 '오 쏠레미오 ' 노래를 해 주었다. 노래도 좋고, 모두가 잠깐 향수를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가난한 유학생들이 우리 문인회가 아직 가난하고, 장하다고, 수고료도 아주 조금 받으며 자원 봉사를 해 주었다고 한다.
이어서 잔잔한 바이올린 배경 음악과 함께 시 낭송이 있었다. 초대시는 마 종기 시인의 ‘우화의 강' 을 부드럽고 청아한 목소리로, 고 정아 시인이 낭송했다. 총무 김 정희 시인이 류 현옥 시인의 '어떤 불행' 과 자작시' 선물 같은 하루' 를 낭송했다. 이 숙희 시인이 고 정숙 시인의 '햇살로 뜨게질' 을 낭송 했고, 황 춘자 시인이 자작 시 '오, 나의 님아' 를 낭송 하고, 고 정아 시인이 자작 시 '배나무'와 정 안야 시인의 ' 우아한 목련' 을 낭송 했다. 낭송이 이번에 처음이었지만, 잘 했다고, 칭찬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서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회원들과 임원들, 그리고 회원이 아닌데도 정성껏 많이 준비 해 오신 (함부르크 한인들은 협동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 맛있고, 아주 전형적인 한국 뷔페음식을 맛있게 먹고, 스몰 토크를 한 후, 이어서 2부 순서로 들어갔다.
이번 행사를 위해 일부러 한국에서 오신, 서울대학교 로스쿨 명예 교수이고, 한국 인물 전기 회장 이신, 최 종고 교수 께서 '문학을 통한 한 독 관계사' 에 대한 강의와 문답이 있었다. '친독파' 라는 별명 까지 붙은 최 교수님은 한 독 관계에 대한 책도 많이 내시고, 법률가로써 문학까지 겸해서 평생을 연구하고 실천하신 특이한 선구자이시다. 많은 독일과 한국의 문학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며, 우리에게도 모쪼록 많은 글을 쓰고, 번역하고, 많이 알려서, 삶의 질을 높이고, 한 독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하고, 나아가서는 세계화 하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셨다. 다음의 모임을 약속하고 서운하게 헤어졌다.
문화 행사; 이번 행사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보람 있고 고마운 행사였다. 우리처럼 타지 에서 온 회원들을 위한 문화 탐방이, 뤼베르크(Luebeck) 로 이어졌다. 뤼베르크의 멩 스트라세 (Mengstrasse ) 4번지에 있는, 부르덴부르크 하우스( Buddenbrookhaus) 에 가서, 형, 하인리히와 동생, 토마스 만( Thomas Mann; 1875 – 1955 년 사망) 을 전설로 만났다. 두 형제는 사이가 안 좋았으나 후에 참회를 하고 가까워졌다. 1942년 전쟁으로, 그들의 출생 집은 영국인들이 폭발 시켜, 재건축했고, 바로크스타일의 앞의 장식과 지하만 '오리지널'로 남아있다. 우린 다행히도 아주 유식하고 멋있는, 1900 년 경의 의상까지 입은 가이드를 만나, 많이 보고 배웠다. 예전에는 뤼베르크가 퀠른과 막데브르크와 함께 독일에서 최고의 부자 상업 도시였다는 사실도 알았다. 천재적인 토마스 만이 14세부터 글을 부지런히 썼고, 군대에선 몸이 약해서 받아주지도 않았고, 21세의 어린 나이에 그렇게 섬세하고, 철학적인, 소설의 인물들을 잘 그려 낸, '부르덴부르크 가족' 을 써서(1901년) , 1929년에 노벨상을 탄 것도 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곡식, 과일 저장했던 창고의 800년 된 벽돌벽을 지하에서 살짝 만져볼 수도 있었다. 브라질에서 시집 온, 토마스의 어머니는 생전 보지도 못했던 그 창고에 있던 향내 나는 낯선 과일과 곡식들을 보고 너무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생활하던 침대와 가구와 식기와 소파, 책장들을 다 볼 수 있었다. 토마스 만은 부인을 전철 안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했고, (웃음) 그 부인은 결혼 하고 나서도 계속 공부를 하며, 아이들을 6명(딸 3, 아들 3명) 이나 낳았으나, 아깝게도 아들 둘은 일찍 미스테리 하게 죽었다. 토마스 만은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도피했고 , 그러는 중에도 , 박사, 파우스트( 1947년) , 베니스의 죽음( 1912년), 마의 산( 1924년) , 요셉과 형제들, 1943년) 등등의 아주 유명한 소설을 쓰고 , 81세에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사망 했다. 특히 부인이 폐병을 앓으면서 다보스( Davos) 에서 치료 받는 중에 그 유명한 마의 산'을 썼다고 했다. 1991년 에 국가에서 지금의 기념관을 예전 그대로 재건축하고, 지금도 그들에 대한 많은 행사들을 하고 있다.
또 부자로 살았던 상인들의 집에서 나온 예술 작품들을 전시한 Bahnhaus (반 하우스) 에서 많은 상인들의 삶의 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그 시대에는 상인들이 돈을 벌면, 성당이나 건물을 고쳐서 자랑 했기에, 건물들의 스타일이 약간 뒤죽박죽이지만, 그런대로 재미있고, 또 어울린다. 도시가 큰 건물들이 없고, 성당들의 지붕들이 각각 다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지리 상 뤼베르크는 북쪽에서 바닷바람이 항상 불어와 한마디로 온 도시가 시원하고 산소 통 같았다. 도시 전체를 걸어서 다 관람할 수 있었다.
또 그 도시에서 아주 유명한, 마치판 초콜릿( Marzipan ;아몬드와 설탕을 넣어 같이 끓인..) 아주 큰 카페와 박물관인, 니더베르거( Niederberger) 집에 가서, 전통적인 아몬드 케이크와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즐겼다. ( 흐음! 또 먹고 마시고 싶다 !!) 그 다음엔 균터 그라스(Guenter Gras; 유명한' 양철 북' 을 쓴 예전의 동 독 작가, 미술가, 정치가) 의 기념관에도 들렸다. 그분은 골치 아픈 그림을 그렸고 줄 담배를 피우는 걸 보니, 그리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웃음)
그리고 함부르크에 다시 돌아와, 시간과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는, 최근에 지은, 음향이 아주 좋고, 풍수 지리가 좋은 자리에, '예전의 잡곡 저장 창고 자리에 )지은, 엘브 필하모니( Elbphilharmonie) 의 건물 꼭데기에 올라가 보니, 바다와 도시가 어울려 아주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도 독일에선 처음으로 공짜였다. (웃음) 함부르크의 최고 부자 동네 이고, 유명인들이 많이 가는 아름다운 항구인, Alster (알스터) 에가서 호수와 분수를 보며, 통통하게 배가 나온 새우 요리와 리슬링 와인 한잔을 천천히 즐기고, 일행들과 담소하며 즐겁게 무사히 귀가했다. 그래서 2박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순간에 경험하는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2019년 7월 9일, 독일의 소양자
댓글목록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같이 시원한 북부 독일을 여행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창한 여름 잘 즐기시고 행복들 하세요. 음력 7일에 안면암에는 잘 다녀오셨는지요?? 독일의 소양자드림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눈으로 마음으로 하는 북부 독일 여행 무임승차 감사합니다.
읽기도 쉽지 않은 글 쓰시느라 무척 애쓰셨습니다.
재독 한국 문인들의 열정과 대견한 음악인 유학생들의 자원봉사에 경의를 드립니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시는 재독 거주 한국인 모두에게 힘찬 박수를 바칩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토마스 만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네요.
몇 달 전에 들린 딸집의 서가에도 <魔의 산>이 꽂혀 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수십 년 동안 저를 내려다 보고 있던 책이었는데. . .. . .
젊은 날 시간이 무척 넉넉했을 때 독서를 등한시하고 있었으니 후회스럽습니다.
두 분께서 지구촌 언제 어디서나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비옵니다.
맨 아래의 가족 사진은 토마스 만의 부인과 애들이겠지요?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해탈심 대보살님, 맞아요. 그 사진에는 4 자녀만 있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토마스 만 책은 이번 봉사 끝나시면, 꼭 읽으셔야 합니다. 아주 묘사를 잘했고 , 그 시대의 독일인들의 철학적인 삶을 잘 엿볼 수 있답니다.그 분의 가구 중에 , 책장과 조그만 책상이 너무 반가웠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밉고 참혹함을 다시 알았습니다. 기도해주시는 덕분에 , 두루두루 건강하고 , 씩씩하게 삽니다. 독일의 소양자 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