ȸ

소양자: 음악 전공 독일 유학생 빈이

페이지 정보

작성자 게시대행 댓글 12건 조회 253,664회 작성일 19-06-01 15:26

본문



빈이 에게 냄비로 밥하는 법을 가르쳐 주며..

요즈음 우리 이웃엔, 29살 된 한국 유학생, 빈이 라는 처녀가 살고 있다. 성악, 피아노를 공부한 후, 합창단 지휘자 석사 과정을 하러(나는 몰랐었는데, 세계에서 독일의 지휘자 학력을 최고 알아 준단다!! 웃음) 이미 한국에서 독일어 시험에 합격하고, 알바를 1년 해서, 유학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단다. 2 개월 동안 시험을 준비해서 치룬 후에, 다시 정식 비자를 받아서 유학을 온다고 한다. 그때는 맘대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고 싶다고 해서, 같이 벼룩시장에 가서 하나 사기로 했다. 그녀와의 인연은, 전에 미소실 에서 연구를 하던, 중앙 대학의 노 독문학 교수의 친구 딸로, 부모님들도 음악을 전공하고, 이번에 봄 여행을 가서 두 번이나 만난 후, 이곳 에서 안전하고 싸게 하숙을 하게 안내 해 주었고 지금도 열심히 도와주고 있다. (독일에선 한 달이나 두 달을 임대 해 주는 이가 거의 없고, 장기적으로만 가능하고, 임대료가 많이 비싸다 !)

빈이는, 예전에 독일에 부모를 따라 10년 간 체류 했던 남자 친구와 함께 , 장래에 독일에서 일하고, 같이 살려는, 굳은 결심을 가지고 왔단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학교 공부도 많이 한 것 같고, 먹기를 좋아해서, 약간 바로크 스타일이다. ( 웃음) 한국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시험도 잘 본 독일어가, 실지로 이곳에 와 보니, 잘 들리지도 않고, 독일 말은 전혀 나오지도 않아서, 항상 불안하고 황당스럽다고 했다. 지난 5월 2일, 오자 마자 우리 집 지하에서 하룻밤을 재우고, 김치 찌게를 잔뜩 먹여서, 시집보내는 딸처럼, 하숙집에 데려다 주었다. 다행히도 집 주인 베아테는 전에 초등학교 교장이었고, 외국인들에게 독일어를 고쳐주는 것을 즐겨하며, 지금은 퇴직해서 인생을 즐기는 미망인이다.

한국인들이 이미 많이 거쳐간 그 집은 (잠시 체류하는 이들이, 우리 미소 실이 없어진 다음에, 애용하고 있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그 집 주인이 김치 냄새를 전혀 못 참는다는 것이다. 임대 조건이, '김치를 냉장고에 안 넣는 것' 이다. 우리 가여운 빈은 아예 그분의 기분이 상할까봐 부엌은 쓰지도 않고, 빵과 과일로 14일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에, 약속대로 한국 음식들과 이곳에서는 냄새난다고 눈치를 봐야 하는 청국장을 끓여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 30분 전에, 빈이가 '어느 교회에 갔는데 예배 끝나고 다시 연락한다' 라는 메시지가 왔다. 우리도 다음 약속이 있었고, 맘속으로 은근이 기대했던 불자가 아니고, 기독교 예배당에 갔다기에, 약간 실망하고 서운해서, '그럼 거기서 식사 해결을 하고 다음에나 만나자'고, 짧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또 화가 잔뜩 났으나, 석 지명 큰 스님의 어느 인터뷰에 '미국 유학을 갔을 때, 불교가 최고 종교인 줄 알았는데, 종교 철학을 공부 했더니, 종교는 다 좋더라' 라는 , 말씀을 기억하고, 꾹 참았다. 재미있던 사실은 그 교회에서 예배 끝나고 '쌘드위치' 를 주어서 속으로 울었단다. (아이구 ! 밥도 안주는 그런 모임도 있는 줄 몰랐다!)

그러고 나서 어느덧 14일이 지났다. 독일에서 유학한, 유명한 임 지혜 씨의 피아노 독주회에 빈이를 초대 했다. 빈이는 일요일에 내가 분개한(?) 눈치를 챘는지, 조용하게 그리고 재미있게 그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자마자 나와 같이 가서 산, 한 달 쓰는 교통 카드(월, 110유로= 약 15만원!!) 를 가능한 한 안 쓰고, 길을 익히기 위해 많이 걸어 다녔고, 전화비도 절약 하며, 선후배들을 만나, 벌써 음대 에 가서 강의도 들었고, 유명한 ‘젊은 칸토어라이' 라는 합창단에도 가서 같이 연습하고 있고, 피아노도 어느 교회의 지하 에서 자주 연습할 수 있다고. .. 지금 하노버와 후랑크후르트에 원서를 내고, 시험 날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다만 밥을 못해 먹는 괴로움과 (특히 김치 찌게, 흑 흑!!), 두고 온 강아지(화상 통화를 해 보았으나, 벌써 못 알아본다고, 울상!!) 와 애인, 부모님들 생각 외에는, 독일이 아주 좋단다. 친절하고, 공기도 좋고, 물건도 속이는 곳이 없고, 남의 일에 전혀 신경 안 쓰고 자기 일에만 열중 하는, 국민성이 너무나 좋다고 했다. 밥을 못 해 먹으니 자연히 다이어트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나 가여웠다.

임 지혜 씨의 피아노 연주회는 한마디로 환상적이었다. J. 바흐( 1685 – 1750) PARTITA 외에는, 악보도 안보고 연주하기 아주 어려운 C.Frank (1822 – 1890) 의 코랄, A. Skrjabin(1871 - 1915) 의 판타지, J. Brahms ( 1833 - 1897 ) 의 파가니니 바리아치온 등을,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연주해서 모두에게 감동을 시켰다. 예외로 앵콜이 없어서 아쉬었다. 재미있는 것은 빈이가 연주 중에 한번 틀린 것을 알아냈다는 것 이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 는 말이 맞나 보다. 우린 오래 되고 어려운 음악이었기에, 그런 생각조차 못 했었는데 , 빈이는 그런 음악들을 학교에서 벌써 다 배웠다고 했다. 정말 부럽다. 한국은 30도가 넘는다는 데 독일은 5월 중순인데도 밤은 조금 추웠다. 그러자 빈이와 나는 이럴 때는 한국의 밥과 국을 먹어야 한다는 결론를 내렸다.

귀가하자마자, 우린 전에 미소실 에서 쓰던 냄비와 프라이팬을 찾아냈다. 밥통 외에는 밥을 못한다(아니, 해 본 적이 없단다!) 는 빈이 에게, 비싼 밥통을 살 때 까지 만이라도 참으라고 하며, 내가 솔선해서 냄비에 쌀을 씻어서, 손가락 마디를 물에 담가 보이며, 물을 적당히 부어서 주었다. 그걸 가지고 어서 집에 가서 가스렌지에 끓이다가 막 끓으면 불을 작게 줄이고, 약 15분 뜸을 들이면, 아주 맛있는 밥이 될 거라고 하며... 넘어서 타지 않게 (집주인이 깐깐하시니..), 뜸 드는 동안 꼭 그 옆에 서 있으라고 했다. '그래도 만약에 타면 어떻게 해요?' 하며, 걱정하기에 , 그 냄비는 타서 버려도 괜찮으니 아무 걱정 말고 한번 시도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익은 김치 냄새 안 나는, 간장에만 담은 밑반찬 몇 가지와 젓가락을 싸주며 나에게 결과를 꼭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

오늘 아침에 자고 일어나서 카톡을 열어보니 , 빈이의 반가운 편지가 와 있었다:

선생님, 성공했어요. 이렇게 맛있는 밥과 반찬은 생전 처음 먹었어요. 이제부턴 매일 냄비에 밥 해 먹을게요. 오늘 음악회 정말 고마웠고요. 냄비 밥 하는 것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빈이 파이팅 할게요. 감사합니다. 빈이가'

비교하기는 조금 부족하지만, 게으르고, 배우지 못한 난민들에게 '생선을 그냥 주는 것 보다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라' 는 명언을, 내가 오늘 조금이라도 실천한 것 같아서, 너무나 흐믓하고 행복 하다. 모쪼록 빈이가 잘 적응하고, 훌륭한 지휘자가 되어, 자기 음악회에 우릴 초대해 주기를 은근히 기다리며...


2019년 6월 1일, 독일의 소양자

38bfe03468cc77deb2cd59e5377f1f0f_1559370301_4422.jpg
38bfe03468cc77deb2cd59e5377f1f0f_1559370301_5927.jpg
38bfe03468cc77deb2cd59e5377f1f0f_1559370301_6688.jpg
38bfe03468cc77deb2cd59e5377f1f0f_1559370301_3234.jpg

 

댓글목록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독일에도 아름다운 여름이 왔습니다.이곳에서 비행기로 한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부다페스트에서 일어난 유람선 참사를 보고 듣고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고인들에게 명복을 빌고 지금도 열심히 수색작업을 하고 도와주는 모든분들에게 감사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상기의 유학생은 밥도 잘해먹고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역시 사전에 마음준비를  단단히 하고 빨리 적응할려고 노력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니 모든일이 잘 풀리나봅니다. 독일도 오늘은 29도까지 올라간다고 하네요. 노상 카페나 음식점에선 자리가 없을정도로 햇볕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롭습니다. 참, 그리고 이상한 광고들이 이젠  안 뜨니 너무나 기분도 좋고 통쾌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안면암 홈피 만세!! 독일의 소양자드림

김님의 댓글

작성일

좋아요.

ybr님의 댓글

ybr 작성일

친정 엄마처럼 여러 면에서 매우 자상하십니다.

소양자 보살님의 박학다식이나 재능이 여기에서도
유감없이 빛나고 있으며
빈이 학생은 꼭 필요한 좋은 선생님을 만났으니
음악 인생에도 환한 꽃길만 보일 것 같습니다.

석지명 큰스님께서 종교학을 공부하니
모든 종교가 다 좋다고 말씀하셨듯
신학교수인 저의 동생도 불교 공부를 아주 많이 한다고 말하더군요.

완전히 배타적이라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겠지요.
늘상대로
유익하게 재밌게 견문을 넓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해탈심 대보살님, ybr이라고 하셔서 누군가 궁금했어요. -웃음 -과만한 칭찬 고마워요, 우리 부처신랑도 가톨릭신자인데 불편없도록 서로 노력합나다. 생각해보면 여러 종교가 있고 지문이 다른것이 다행이지요?? 다 같으면 지루할거예요. 댓글 감사합니다. 독일에서 여름 안부를 !! 소양자드림

박씨님의 댓글

박씨 작성일

언니 안뇽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어느 동생?? 정말 궁금하네요.. 박 씨 신분 좀 밝혀주세요. 언니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어느 동생?? 궁금하니 신분 좀 밝혀주세요... 언니

박헤ㅐ원님의 댓글

박헤ㅐ원 작성일

박혜원입니다. 급하게 인사하느라 예의 없는 인사 올렸는데  용서해 주세. 남 돕는데 못말리는 독일 보살님  존경합니다.

박혜원님의 댓글

박혜원 작성일

홈페이지가 달라졌다 해서 테스트 하기 위해 올렸습니다.
이젠 가끔 읽없보고 댓글도 달겠습니다. 여전히 건강하시지요?
밝은 모습으로 돌아오세요.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부지런하신 총무보살님, 반가워요. 이제부턴 자주 들리세요. 독일도 아주 좋은 여름입니다. 31도까지 올라가서 일부러 바캉스 갈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여전하시죠?? 안부를 ! 독일의 소양자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빈이가 H. 도시에 있는 지휘자 석사 과정에 10 시간 이나 시험을 보고 , 지금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험도 필기 실기( 합창대를 직접 지휘하는..) 노래, 피아노 등 그렇게 어려운 시험을 3차 까지 성공했으니 , 꼭 좋은 결과가 나올것입니다. 빈이 파이팅!!

소양자님의 댓글

소양자 작성일

빈이가 드디어 음악 마스터과정에 합격했어요. 빈이 최고 !!  한국유학생 최고!! 너무 좋아서 또 한국음식 잔치를 해주었습니다. 가을부턴 독일에서 공부를 하게 되었어요. 너무 좋은 결과라서 정말 다 행복합니다.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의 소양자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