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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실스님 법문 : '홍도야 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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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6건 조회 298회 작성일 25-03-20 22:20

본문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 

속리산 법주사 

허허(虛虛) 지명(之鳴) 조실 스님의 법문입니다.

하단의 링크를 눌러서 확인하십시오. 



http://www.beopjusa.org/event/dharma/detail/82c6c790-130e-4e6b-aeb7-3575953c7336



댓글목록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자식이 먼저간 부모님의 슬픔이 크다고
요즈음 웃음 치료가 유행이라고
동네절  계시다  법주사로  가신
보관 비구니스님 울화통  캠프
초대 주지스님  현조스님께서 초대하셔 가심
목동  현대벅화점  오셔 문화강좌
울고  싶을 때 방문 닫고 울고
밖에 나가서 걸으라고

어느날  티비서 오대산 월정사에
지금은?
대학원 공부 미국
숭산 큰스님 뵙고  비구니  스님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석원영 보살님!

세상의 가장 큰 슬픔은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슬픔이라고 들었습니다.

울고 싶으면 실컷 목놓아 울면 어느 정도 울화가 해결되겠지요.

세상사 모두 인지상정입니다.

보관 비구니스님의 울화통 캠프도

중생들의 슬픔이나 고통 치유가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소중한 댓글 항상 늘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윤병예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저는 단순무지한 73세의 할머니입니다.

허허 지명 조실 스님의 법문을
영광스럽게
타이핑해서 게시봉사하고 나면
언제나 늘
댓글을 어떻게 올려야 하나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대승고덕이시며,  문장가이시며,  예술가이신
조어장부 스승님께
혹여 큰 누累를 끼치게 될까  우려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저의 짧은 생각에

' 홍도야 울어라 '

법문 편은

조실 스님  다른 법문에 비해
내용 면에서
더욱 다양하고 더 어렵고 인간미 넘치는 말씀으로 비쳐졌습니다.

도저히 자신이 없어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밤 12경에 다음날 아침을 기약하며 가까스로 잠들었습니다.

한밤중 깨어보니 2시반입니다.

벌써 조회수가 24가 넘었습니다.

어쩌면 저의 미숙한

댓글을 기다리시는 독자님들이 더 많이 계실 것 같았습니다.


작은 불이나마 어서 피워야 할텐데 걱정입니다.

두어번 다시 정독하여

생각의 불쏘시개를 모아 불을 지펴보는데 

연기만 잠시 나고 영 불이 타오르지가 않습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갑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영화의 주인공 스카렛 대사처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윤병예 합장

미련한 중생이라 한밤중의 생각을 감히 옮겨 적었습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석가는 우리의 현실을 고통으로 규정한다.
다겁생래 多劫生來로 슬픔을 안고 태어난
인간은 그것을 피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는데 그 시도가 욕망으로 나타난다.
욕망의 뿌리가 슬픔이라서 여기에는 자학성이 담겨 있다.
원하는 것이 얻어지거나 말거나 똑같이 아프다.
욕망의 본래 목적은 슬픔을 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가지 성취로 만족되지 않는다.
반드시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 괴롭고 슬퍼지게 된다.
축적된 슬픔을 삭히려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하면 된다.
비극을 보아 울어서 속을 풀 듯이 말이다.
희극도 상관없다. 
그 뒤에는 반드시 고달픈 인생에 대한 조망과 슬픔이 깔려 있다.

우리는 밖의 무대에 올려진 비극에서가 아니라
내 체험과 이야기에서 슬픔을 보아야 한다.우리의 체험은 제한된다.
사람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직접 겪을 수는 없다. 내 경험에 의해 모든 슬픔을 다 알 수는 없다.

다겁생에서 금생에 이르도록 의식 또는 무의식에 본래로 축적된 슬픔을 보아야 한다.
그러면 저 극을 보고 음악을 듣는 것 이상으로 깊은 슬픔에 잠길 수 있다.
영원히 울 수가 있다."


##############################

‘홍도야 울어라’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홍도야 우지 마라’와 완전히 대비되는 제목에
어떠한 댓글을 올려야 할지 겁부터 밀려 왔습니다.


마지막 문단

"자비와 사랑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저 슬픔을 보고 인간의 발악과 같은 몸부림을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것이 아니던가.
아무리 악한 사람의 행동도 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미워하고 원망할 것이 없지 않은가.
오직 연민의 정만 생길 것이 아닌가."


불교의 가장 큰 덕목인 자비 중에서

자비의 자(慈  -행복을 주는 것)

저같은 중생에게는 감히 실천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비(悲 - 고통을 덜어 주는 것)는 관심이 적지 않습니다.


며칠 전,

< 마가 스님의 자비명상 >
자기 발표 시간에

자(慈)는  도저히 자신없고
비(悲)는 관심이 많아
앞으로의 여생을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습니다.

이제 조실 법문 스님의 법문을 계기로
악한 사람의 행동도 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오직 연민의 정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힘이 생기길 불보살님들께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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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012년 10월  안면암에서
저의 인생의 러닝 포인트(전환점)를  슬픔으로 통과할 때
 인생 최초의 템플 스테이를 하면서
약사여래부처님께 한 달 가까이 매일 울며 기도했습니다.

“약사여래부처님!
앞으로는 아프고 힘없고 외로운 남녀노소,
 그 어떤 이의 손도 잡아 줄 수 있고,

안아 줄 수 있고,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들어 주십시오. ”


이제는
조실 스님의 법문 중에서
‘아무리 악한 사람의 행동도 저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미워하고 원망할 것이 없지 않은가. 오직 연민의 정만 생길 것이 아닌가.’

를 경책(警策)으로 삼아
 순간순간의 소중한 만남을 통해 지금 여기서 비(悲)를 실천하도록 애쓰겠습니다.

나무약사여래불
나무약사려래불
나무약사여래불           
                              윤병예 합장

함축시킬 능력이 없어 너무 길게 써서 죄송합니다.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법주사 조실 허허 지명 대종사님  법문
읽어 보고 댓글 금방 올릴까하다
밤새워  생각...

큰스님
건강하셔요

              정광월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석원영 보살님!

천천히 내일 올리셔도 괜찮습니다.

한결같은 충성심 감사 감사드립니다

                                                          윤병예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