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4. 단견과 상견을 여읜 중도(여래성품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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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2건 조회 192회 작성일 25-03-08 08:27본문
94. 단견과 상견을 여읜 중도(여래성품 5) 1
중생들은 물질이나 감각적인 것처럼 항상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항상하다는 생각을 내고 부처님의
법신처럼 실제로 항상한 것에 대해서는 항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낸다.
단견과 상견의 양변은 불성에 의해서 중도로 통합된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중도의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 개념의 양 극단을 초월하거나 통합하는 지혜를 가르치기 때문이다. 중도에는 행동적인 것과 철학적 또는 사상적인 것이 있다.
수행자에게 있어 중도의 행이란 극단적인 고행과 극단적인 안락의 중간을 택해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극단적인 고행은 수행자의 건강을 해친다. 그리고 고행주의는 삶의 진실상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으려고 하기보다는 몸을 학대하는 데만 집착하게 될 염려가 있다. 수행자에게 고행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수행하는 목적은 깨달음을 얻어 그 지혜로 중생을 구제하는 데 있는 것이지 몸을 학대하는 데 있지는 않다. 물론 고행의 반대인 안락을 수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몸을 너무 편안하게 하면 게으름에 빠지거나 엉뚱한 망상 에 시달리기가 쉽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후 오랜 기간 동안 고행을 하다가 어느 날 고행이 바른 수행법이 아님을 깨닫고는 니련선하에서 몸을 씻고 우유죽을 받아 드신다. 부처님을 따라다니던 교진여(憍陳如) 등 오비구는 갑자기 고행을 포기하는 부처님의 변화를 보고 부처님이 타락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극단적인 고행은 깨달음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부처님이 목욕을 하고 우유죽을 받아 드신 것은 바로 고행과 안락의 양변을 버리고 중도적인 수행의 길을 택한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 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상처가 없는 손에 독이 침범 못 하듯
나쁜 마음이 없는 이에게 악은 침범하지 못한다 . ”
< 법구경 >
[꽃멍 / 양광모]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다
살다보면 누구나 푸른 멍
한두 개쯤 몸에 지니기 마련인데
아름다운 사람아,
마음이 그늘지는 날에는
꽃멍울을 하자, 새벽부터 밤까지
물끄러미 초롱한 눈으로 꽃멍을 하자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산수유에게
정호승
늙어가는 아버지를 용서하라
너는 봄이 오지 않아도 꽃으로 피어나지만
나는 봄이 와도 꽃으로 피어나지 않는다
봄이 가도 꽃잎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내 평생 꽃으로 피어나는 사람을 아름다워했으나
이제는 사람이 꽃으로 피어나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이 꽃처럼 열매 앶길 바라지 않는다
늙어간다고 사랑을 잃겠느냐
늙어간다고 사랑도 늙겠느냐
매화꽃 피고 산수유 피는 광양
홍매화 피는 화엄사 가고 싶은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