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허허 지명 대종사님 『그것만 내려 놓으라』법문집에서, 「작은 깨달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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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4건 조회 72회 작성일 25-08-30 19:37본문
「작은 깨달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노인들과 갯벌가를 걸으면서 대화하는 중에
"일생을 살아오면서 언제 가장 행복했다고 생각되나요?" 라고 물었다. "철없고 세상 물정 모를 때가 좋지, 세상사 흘러가는 것을 대충 짐작할 수 있게 되니, 인생길이 너무 뻔히 보여서 고달프게만 생각되더군요"라고 한 분이 대답했다. 다른 이들도 공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삶의 길이 사진처럼 뚜렷하게 보일 때보다는, 추상화처럼 좀 아리송했던 때가 좋았던 것 같다.
나이가 차고 철이 든다고 해서 만사를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인생행로가 고착화되어 가고 꿈이든 현실이는 가능성의 길이 점점 줄어드는 것만은 분명하다. 돈과 권력의 힘과 맛을 아는 것과 "꿈속에서처럼 그냥 좋다"와는 정비례하지 않는 것 이다.
나는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세상 물정 모를 때가 좋았다고 하니, 십여 세에 지능 발달이 멈춘 장애인의 삶을 살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러자 한 동행자가 "장애가 있으면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하기 어 렵고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잖아요?"라고 말했다.
불도를 닦는 입장에서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우리는 완전하게 철 이 들었다고 할 수도 없다. 남의 눈치를 보고, 어떻게 하면 이익이 되고 손해가 되는지는 훤히 꿰뚫어 볼지 몰라도, 그것이 생사 해탈의 도는 아니다. 어쩌면 세간적으로나 출세간적으로 양쪽 다 턱없이 뒤쳐진 상태에 있는지도 모른다. 속세적인 복력도 충분하지 않거니와. 불도의 깨달음도 부족하다. 양쪽에서 "철이 덜든 상태에 있는 셈이다. 이 부족한 처지 그대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은 없을까?
『법화경』「약초유품」에는 '3초2목의 비유가 있다. 하늘에서 균등하게 비가 내리지만,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또 상품, 중품, 하품의 약초가 각기 나름대로 그 비로부터 혜택을 받는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설법이 모든 중생에게 균등하게 내리지만, 각자의 근기에 따라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비유이다.===
이 비유의 주요 목적은 부처님의 설법이 모든 수준의 중생에게 비처럼 공평하게 내린다는 것, 부처님의 대기설법이 교묘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 비유에서 다른 것도 끌어낼 수 있다.상품의 약초나 큰 나무뿐만 아니라 하품의 약초와 작은 나무도 살아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상품의 약초와 큰 나무가 맞는 데가 있듯이 하품의 약초나 작은 나무도 필요한 데가 있다면, 우리가 아무리 최하품의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꼭 존재해야 할 이유와 자부심을 갖고 행복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의 본의에서 볼 때, '상품의 약초'나 '큰 나무'가 '하품의 약 초'나 '작은 나무' 보다 더 좋을까? 물론 중생을 구제한다는 면에서 볼 때, 작은 그릇보다는 큰 그릇이 좋고, 작은 깨달음보다는 큰 깨달음이 좋을 것이다. 작은 깨달음에 만족하지 말고 궁극의 깨달음을 할 해서 계속 정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삶을 음미하는 면에 있어서는 크고, 작고, 높고, 낮은 것이 의미가 없다. 빨강과 파랑을 비교해서 어느 쪽이 더 좋다고 할 수 없듯이, 사람은 누구나 나름대로 독특한 가치가 있다. 작은 깨달음으로도 나는 행복할 수 있다.
큰비 후에 맑은 냇물이 흘러가듯이 버리기 아까운 행복은 계속 떠내려가고 있다. 냇물은 줄어들지라도 행복의 물은 마르지 않는다. 항상 흐른다. 그러나 아무리 행복이 내 주변에 꽉 차 있더라도, 자신의 부족함을 핑계로 그것을 음미하려들지 않으면, 우리는 항상 삭막함만 보게 될 것이다. 그대 지금 고통스러운가? 그것 행복 맛보기에 대단히 도움이 되는 요소이다. 세상의 모든 성현은 하나같이 고통 속에서 행복을 알아보는 깨달음을 얻었다.
뇌의 발달을 멈추게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만, 장애인이 된다면 그것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10세와 100세의 지능이 똑같이 행복할 수 있으니까, 모든 삶이 각기 독특함을 체달한다면, 아무리 지독한 고통도 편안하게 음미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행복의 맛으로 풀이할 수 있다. 끝
우리들 안면암에서는
법회가 항상 늘 음력 초하루입니다.
때마침 칠월 칠석을 맞이하여
자손들의 안녕과 행복을 비는 기도가 병행되어
더 많은 불자님들이 동참하셨습니다.
설봉스님,
진여화 총무님, 현주행 보살님,
사진을 보내 주신 보타심 보살님께도 정중히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적으면 적은 대로 베풀고
중간 정도면 또 그대로 베풀며
많으면 많은 대로 베풀라. ”
<자타카>
= 불교신문
문태준의 詩 이야기
못내 또 돌아보면 다시 한 번 흔드는 손
그 흰 손을 사랑해요 이슬 맺힌 당신의 손
외진 곳
두루 살피며
길을 닦는 바쁜 손
< 성국희 시 '하얀 접시꽃' 전문 >
화단이나 길가에 핀 접시꽃. 시인은 흰 접시꽃에 눈이 간다. 그리고 그것을 "흰 손”에 빗댄다.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등 뒤에서 흔드는 흰 손과 이별을 아쉬워하는 마음에 비유한다. 떠나오는 사람도 미련이 조금은 남아서 자꾸 섭섭한 마음을 두기는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하필 흰 색깔의 접시꽃에 유독 관심이 갔을까. 아마도 그 흰 빛은 때가 묻지 않은 깨끗한 상태이므로 고상하고 순결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흰 접시꽃이 피어서 그 맑은 빛에 의해 구석진 곳이나 궁벽한 마음이 좀 더 환해졌을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 가득한, 눈시울이 촉촉하게 젖은 배웅의 풍경이 보인다.
시인·불교방송PD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성국희 시 '하얀 접시꽃' >
이 시는
며칠 전 국문과 출신으로 시를 감상하는 안목이 특출하신
석원영 보살님께서 게시봉사하신 시와 같습니다.
마침 불교신문에 게재되어 있어
고마운 마음으로 문태준 시인님의 시 해설을 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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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집앞 놀이터 하늘 음력8일의 반달
낮엔 더워 저녁은 바람이
낮엔 숲 노래 듣고
조금전엔 세시봉 전주 공연 오래 전
윤형주 가수가 전주하늘은 서울과 다르다고.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석원영 보살님!
공기 오염이 심각한 서울 하늘은
전주 하는과는 여러보로 다르겠지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전라도의 대도시 전주가 궁금합니다.
윤형주씨의 노래 우리 세대들은 많이 듣고 자랐을 것입니다.
소중한 댓글 항상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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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