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봉 스님의 안면암 일기 } 79. 의지불의식(依智不依識)(사의품 8)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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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88회 작성일 24-12-27 08:19본문
79. 의지불의식(依智不依識)(사의품 8) 끝
지혜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지식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우리가 불도를 닦는 목적은 평화를 얻기 위해서이다. 슬픔이나 죽음에 도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평화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인생무상의 법칙을 체득하려고 한다. 그리고 무상한 세상에 남을 것이라곤 서로 상대를 아껴 주는 일뿐이라는 것을 깨달으려고 한다. 그런데 세상에 있는 돈과 명예와 이성에 관한 정보를 몽땅 가져와서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걸면 우리는 바로 피로를 느낀다. 그런 상대는 말은 많이 하지만 인생의 진실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의 쓴맛 단맛을 다보고 만고풍상을 겪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편안해진다. 상대는 외워야 하는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맴돌면서 생각하거나 말하 기 때문이다. 대화의 상대에 따라서 피로를 느끼거나 기운을 얻는 것은 상대가 지식으로 이야기하느냐 지혜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좌우 된다.
<열반경>에서도 지혜와 지식을 분명하게 구별해 주고 있다. 지혜는 영원을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지식은 육체를 사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열반에 드신 부처님의 법신이 항상하다고 아는 것이 지혜라는 말은 번뇌와 몸의 소멸 속에서 영원을 얻는 깨달음이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혜는 욕망을 쉬고 버리는 것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지식은 반대로 어떻게 하면 물질적인 욕망을 채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지혜도 아는 것의 일종이고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지혜와 지식은 똑같이 아는 것이다. 단지 지식과 지혜는 목적하는 바가 다르다. 영원과 현실이다. 그러므로 지식이라고 하더라도 영원의 세계 참다운 사랑의 세계를 묘사하는 데 쓰여지면 지혜가 될 것이고 지혜라 하더라도 욕망의 세계, 물질의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데 쓰여지면 지식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속세에서는 속세 나름대로 지혜와 지식을 구별하 겠지만 <열반경>의 근본정신이나 불교의 기본교리에서 본다면 영원한 목숨의 세계에 대해서 아는 것만이 지혜가 된다. 물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지식일 수밖에 없다. 끝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 보살은 구걸하러 왔다는 말을 들으면 슬피 울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다가 그가 만족하다는 말을 들어야 멈춘다. ”
< 대장부론 >
[ 선시(禪詩) ]
*** 석지현 스님의 선시집에서 ( 현암사)
< 송림사 >
- 매월당 김시습
쓸쓸한 송림사
중은 어디 가고 찾는 이도 드무네
새 울어 봄은 적적하고
꽃 지는 비 세차게 오네
외딴곳이라 오는 이 적고
담은 낡아 대나무가 에워쌌네
석양에 산빛은 푸르러
그 맑은 그림자 붉은 문에 비치네.
松林寺
송림사
蕭洒松林寺 僧閑客到稀 鳥啼春寂寂 花落雨霏霏
소쇄송림사 승한객도희 조제춘적적 화락우비비
地僻人寰少 垣頹竹木圍 夕陽山色翠 清影映朱扉
지벽인환소 원퇴죽목위 석양산색취 청영영주비
= 출전 매월당시사유록,
### 주
·소쇄(蕭酒): 쓸쓸한 모양.
·비비(霏霏): 비나 눈이 많이 오는 모양.
인환(人賽): 인경(人境), 사람이 사는 곳, 이 세상.
ㆍ퇴(類): 퇴락하다. 허물어지다.
• 해설
개성에 있는 '송림사'라는 절에서 읊은 시다.
퇴락해가는 옛 절의 정 취가 석양빛에 젖어 꿈속과도 같이 아련하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윤병예 합장
석원영님의 댓글
석원영 작성일
스스로 부처의 마음을 닦고自修佛心
스스로 부처의 도를 이루면自成佛道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월간 송광사월호 이일야
불은佛恩을 갚는 길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석원영 보살님!
= 불은佛恩을 갚는 길
실천은 쉽지 않겠지만 매일 마음에 새기고 새기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항상 늘 감사드립니다.
윤병예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