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안면암 포교당 백중 3재일, <엄마의 기일에 약속 지킨 생애 최초의 케잌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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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4건 조회 204회 작성일 25-08-19 21:58본문
<엄마의 기일에 약속 지킨 생애 최초의 케잌 선물>
2025년 백중2재일 토요일입니다.(음력 6월 17일)
저는 한밤중 단잠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옛집에 검은 옷 입은 신사분들이 와 서계십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옷차림도 소홀해서
당황스러운데 우리 언니가 걱정하지 말라며 이따가 알게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는 꿈을 꾸고 깼더니
아직 1시 10분입니다.
한참 곰곰이 헤아려 본 끝에
깜빡 잊고 있었던 엄마의 별세(70세)하시던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엄마는 음력 6월 17일 밤2시에
엄마의 평소 유언대로
집에서 운명하셨는데
사랑하는 가족 12명이 지켜 보는 가운데
모두에게 빛나는 눈길과 꺼져가는 숨결로 일일이
애절한 마지막 인사를 하시고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면하셨습니다.
직계 가족 중 언니 막내 아들이 미국 영어 연수 중이어서 유일하게 빠졌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저랑 가장 텔레파시 잘 통했던 엄마가 가끔 언니의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신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백중기도 3재일이며 엄마의 기일 덕분에 약간 더 서둘러 버스 전철을 타고
두 시간 이상 더 걸리는 안면암 포교당으로 향했습니다.
파리바게트에 들러 거의 채식주의자이셨던
엄마를 위한
딸기 케익이나 쉐크림 케익이 없어 서운했지만
작은 하트 초코렛이 6개나 박힌 케잌을 살 수 있어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안면암 포교당에 도착하면 언제든지
우리들 허허 지명 조실 큰스님께 3배를 정중히 올리고 법당으로 향합니다.
몇 년째 1배만 하라고 근엄하면서도 자상하게 분부하시지만 저는 막무가내로 3배를 고수합니다.
의외의 케잌이 약간 의아하실 조실 큰스님께
한밤중의 꿈이야기를 하면서
할 수 없이 초코렛 케잌 사게 된 연유를 말씀드렸습니다.
조실 큰스님께서는 먼저 부처님께 3배를 하면서 케잌을 올렸다가
영단에는 목받침대 위에 케잌을 올리라고 자상하게 권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합장하고 얼른 나와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벌써 많은 보살님들께서 법회시간을 경건히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청정심 총무님께 먼저 말씀드리고
눈으로 공양하시는 부처님께 케잌을 올리면서 3배를 마쳤습니다.
곧 이어 혜안심 보살님의 도움으로
영단의 공양 재물들 사이에 얌전히 케잌이 자리를 잡으니
우리 엄마 아버지 조상님들 선망영가님 인연영가님들 모두가 기분이 좋으실 것만 같았습니다.
70년 이상 용맹정진의 내공에서 솟구치는 조실 큰스님의 기도소리는 법당안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쩌렁쩌렁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사바세계 전체를 장엄하시고 더 나아가 도리천까지 울려퍼질 것마냥
우리 신도들의 마음을 불심과 환희심으로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백중천도 기도가 엄숙히 끝나고
자리를 끝까지 지킨 신도님들이 여늬 때보다 많으셨습니다.
모두들 다시한번 조실 큰스님과
설정스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감사의 예를 올리며 백중3재기도는 경건히 막을 내렸습니다.
조용히 저를 기다리시던
혜안심 보살님과 법당의 의자들을 제자리로 옮기는 차례입니다. 혼자서는 의자정렬이 조금 힘드므로
얼마 전부터 제가 돕게 되었는데 옆에서 거드시던 일진행 보살님을 만류하고 먼저 내려가시라고 했습니다.몇번의 경험 덕분에 이제는 척척 호흡이 잘 맞습니다.
법당안의 힘드는 일을 거의 도맡아 하시는 혜안심 보살님은 몇 번이나
고맙다고 덕담을 해줬습니다. 오가는 덕담이 서로 정답습니다.
케잌을 들고 부리나케 공양간으로 갔더니 거의 공양이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청정심 총무님께서는 집에 가져 가시라고
정중히 말씀하셨는데 한 입씩이라도 나눠 먹는 것이 도리이므로 어떻게 하나 잠시 머뭇거리고 있는데
케익이 궁금하실 보살님들에게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했습니다.
“ 남동생이 목사이고 신학대학교 교수라
부모님 제사를 못 지내고 있는데 오늘이 엄마 기일이라
생전 처음으로 케잌 사서 올렸습니다. ”
우리 큰스님처럼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말은 입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비로운 보살님들은 저의 마음을 이미 충분히 알 수 있으므로
집에 가져 가라고 하셨는데,
제가 마다하며 권해도
단 음식이라 선뜻 앞정서서 드시려는 분이 안 계셨습니다.
옆자리에 계시던 상락화 회장님이 호의를 베푸시어 종이컵에 한 쪽을 담으셨습니다.
작은 케잌을 여덟 조각으로 나눴는데
원하는 분들이 없어 절반은 플라스틱 그릇에 간신히 담겨졌습니다. 바쁜 주방보살님들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은 큰비닐 봉지를 두 장 가지고 와서
고맙게도 각운행 보살님과 옆 자리의 보살님 도움으로 안전하게 담게 되었습니다.
저는 끝내 자비심으로 먹어주실 보살님들을 찾지 못하고, 자주 앉던 끝자리쪽으로 옮겨 저의 공양을 풍성하게 담아와 테이블에 놓았습니다. 종이 컵에 담겨진 케잌들에게 미안해서 듬뿍 담아온 맛있는 공양을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법회 때마다
공양간 이웃 자리에서 자주 만나던 보광월 보살님과 최연숙 보살님이 옆에 계셨고, 또 이름을 모르는 보살님의 아드님이
엄마에게 때마침 우산을 가져다 드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정이 무척 많으신 분이셨어요.”
“해탈심 보살님도 정이 많으세요.”
보광월 보살님은 저를 향해 미소띈 얼굴로 애어(愛語)한마디 하셨습니다.
옆자리 엄마 보살님의 배려로 공양을 맛있게 먹던 아드님은
케잌 사연을 옆에서 말없이 듣다가 기꺼이 케익을 허락해서 고마웠습니다.
저는 공양이 가장 늦어서 설거지하시는 보살님들께 죄송했습니다.
마지막 일과인 무량이 사남매에게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씩씩하게 걸어 인덕원에서 전철을 타고 대화역 여동생집에 도착해서 동생부부와 즐겁게 케잌을 먹었습니다.
여동생부부는 제가 엄마 별세 전 함께한 27개월 이전까지
20여년의 긴 세월을
엄마 아버지를 극진하게 모셨던 소중한 가족입니다.
오늘의 케잌 분배에 엄마 아버지께서는 대만족하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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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남매 특히 여형제들은
우리 엄마가 평생을 돈 한푼에 쩔쩔매며 근검절약하면서
왜 저한테만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잘하시는지 항상 궁금해 했습니다.
이제 저는 완전히 의문이 풀렸습니다.
저는 <삼세인과경>을 떠올리며
숙생에 얽힌 전생의 은혜와 빚 등으로
귀결시키려고 했습니다만
비로소 명확히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불도를 열심히 닦고 보살도행을 실천해야
엄마가 더불어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엄마는 말씀은 안하셨지만
불교의
연기법을 철저히 알고 계셨나 봅니다.
그러시길래
불나비같은 철없는 연애를 하면서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받고 일찍 결혼하여
생활력 없는
저에게 가족들 알게 모르게 헌신적으로 도와주셨습니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엄마께서 저에게 베푸셨던
그 선근공덕善根功德으로
해마다 안면암 포교당의 백중 기도, 또 설차례, 추석차례를 외롭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자비심으로 충만한 공양간>
폭염 무릅쓰고 정성껏 공양물을 준비하신
보월화 이사장님, 한순화보살님, 이정희보살님, 이충희보살님, 장명희보살님, 이영순보살님, 이혜순보살님, 이재찬보살님, 조용조보살님, 박정필보살님, 정자숙보살님께 정중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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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자비명상 2급 지도자 과정 봄학기 워크샵 과정
꼴라주: 근대미술에서 화면에 종이, 인쇄물, 사진 따위를 오려 붙이고, 일부에 가필하여 작품을 만드는 일.
꼴라주 작업 시간인데
다른 참가자들은 열심히 몰두하고 있었으나
저는 딸기 케잌에 꽂혀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엄마의 유독 아픈 손가락이었던 저는 엄마만 계속 떠올랐습니다.
저는 앞에 나가 발표하지 않을 생각이었므로
마구 휘갈겨 써서 챙피합니다만 그대로 옮겨 게시봉사했습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낸 나 자신에게 전하는 찬사, 지지, 위로, 그리고 용서의 메시지를 다정한 친구가 되어 써보는 시간입니다.
둘째 병예야!
부모님 살아 생전 용돈 한 번 드리지 못하고 생신 케익에 촛불 켜 드린 적 없습니다. 하지만 백중 우란분절을 맞이하여 7.7 백중기도를 하면서 부모님께 불효했던 기억이 거센 파도처럼 더 밀려옵니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사남매 중 저 혼자만 부모님 위패를 모시고 무사히 회향을 올렸으니 앞으로도 해마다 쭈욱 제가 심신 건강한 그날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백중막재기도 때에는 엄마가 좋아하시는 딸기로 만든 케잌을 사 원찰 사찰에서 꼭 영단에 올리고 선망조상영가님과 인연있는 영가님들, 그리고 모든 애혼, 고혼 영가님들의 왕생정토를 정성껏 기원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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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저는 일평생 부모님께 거의 불효만 하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20여년 이상 간경화증으로 병마와 투쟁하시던
엄마의 간청으로 엄마의 아파트에서 별세하시기 직전 2년 3개월을 모시고 살았으니
조금은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엄마의 부탁으로 여동생이 결혼 직후부터 부모님과 쭈욱 함께 살았습니다.
저는 원래 살림살이를 정갈하게 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만
누구보다도 아픈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렸고 서로가 소통을 잘 할 수 있어서
단 한번도 엄마와 큰소리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우리 엄마께서는
제가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선망영가님들 인연영가님들 애혼 고혼 영가님들의 왕생정토을 위해서 기도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신
지혜로운 분이셨다는 것을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안면도 유지의 막내딸로 고생없이 자라나 사랑만 받으셔서 자타공인 철이 없으셨으나
저와는 달리 다재다능하며
인정이 무척 많으셨던 우리 엄마는 결국은
선경지명이 있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분이셨습니다.
비로소 저의 무명과 미혹을 일깨워 주시는 우리 엄마께
이제 진정으로
사랑과 존경을 정중히 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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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눈 내리는 밤
철선혜즙
한줄기 차가운 등불 아래 경전을 읽느라
밤눈이 빈 뜰에 가득 쌓이는 줄 몰랐어라
깊은 산 나무들은 모두 연주를 멈추었고
때맞춰 처마 밑 고드름이 섬돌을 두들겼으나
송창식 노래 ㅡ밤눈ㅡ 다시 들어 보고 싶은.
어제 목동 법안정사 효경 대종사님의 영결식을
티비 녹화 방송 보며 2시간 서서 축원 기도 하시던 스님
법당 가득 메었던 신도들
기도는 속으로 옆사람 방해 안 되게
속으로 하라시던 큰스님.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석원영 보살님!
맞습니다.
기도는 옆사람 방해 안 되게 속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중한 댓글 항상 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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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