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허허 지명 대종사님 『그것만 내려 놓으라』법문집에서, 「 현실세계 사물은 있는 그대로가 궁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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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2건 조회 187회 작성일 25-08-21 07:36본문
을사년 안면암 포교당의 백중천도 회향일 사진 (2)
저는 사진촬영기법 기초도 전혀 모릅니다.
그저 소중한 시간들을 함께
오랫동안
소통하고 기억하고 싶은 여린 마음에 수없이 스마트폰 을 눌러 대는 막찍사입니다.
사진 촬영에 적극 협조해 주시는
신도님들께 항상 감사드리면서
실물보다 형편없이 나올 때가 많아 죄송합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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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세계 사물은 있는 그대로가 궁극 」
요즘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기 이전의 어린 아기를 친할머니 또는 외할머니가 보살피는 경우가 있다. 할머니는 손자, 손녀에게 정을 쏟으며 외로움을 잊을 수 있고, 아기의 엄마가 받는 수입을 나누어 쓸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 된다.
손자, 손녀를 보살핀 경험자 할머니들과 대화할 기회가 많은 나는 어떤 한 기간에는 아기에게 깊은 사랑과 기쁨을 느끼고, 다른 기간에는 커가는 아기의 달라지는 반응에 약간 실망하게 된다는 것을 안다. 아기가 엄마와 할머니를 구분하지 않고 똑같이 좋아하는 단계에서는 할머니는 직접 자식을 낳아서 키울 때 느껴보시 못했던 새로운 사랑과 신기함을 느낀다. 할머니의 동작에 따라서 같이 움직이는 아기의 눈동자와 표현만으로도 할머니는 감동한다. 아기를 안았을 때. 살며시 가슴에 파고들며 기대는 동작과 느껴지는 따스함에서, 할머니는 더할 나위 없는 상호 의지 교류의 행복을 느낀다. 눈이 마주쳤을 때 반가움을 어떻게 표현할 수 없어서 전율하는 아기가 너무도 천진난만하게 생각된다.
그런데, 그렇게 천진스럽고 귀여운 아기가, 어느 시기가 지나면 엄마와 할머니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있으면 엄마가 집을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기 생각에 할머니가 자기 집에 와 있는 것은 엄마와 멀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기는 “할머니 집에 가” 또는 “할머니 오지 마”라고 말하면서 밀어내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 할머니 앞에서의 애교와 엄마 앞에서의 애교가 달라진다. 이때 할머니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아기의 순수한 마음과 가식 없는 표현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밀려오는 섭섭함을 어찌할 수 없다.
새롭게 아기를 맡은 한 할머니가 나에게 열심히 손자 자랑을 했다. 특히 천진스러운 모습이 너무도 귀엽단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맞을 다음 단계를 생각했지만, 미리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긴 자랑을 듣기만 했다. 내가 말하지 않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할머니 싫어”라는 말을 그 귀여운 손자로부터 듣게 될 것이다.
두 살 손자의 모든 동작을 천진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왜 다섯 살, 열 살, 그리고 그 이후 계속 이기적으로 발전하는 행동도 천진함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가? 사회규범을 어기는 사람들,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 저들 중의 어느 누구도 천진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가진 이는 없다. 그렇다면 이기적으로 변하는 것은 천진함의 자연스러운 다른 측면이 아니겠는가.
『 법화경 』의 가르침 가운데는 '제법실상(諸法實相)' 즉 ”현실세계의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궁극 경지의 모습이다”라는 사상이 있다. 지옥이나 축생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조차도 부처의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탐욕이나 어리석음이 그대로 좋다는 말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무리 어리석고 약한 사람이라도 부처의 마음을 품고 부처의 행동을 한다면, 그렇게 하는 동안에는 부처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저 제법실상의 가르침이 자기 수행을 중심으로 이중적으로 사용됨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편하려면, 두 살 때 손자의 모습을 천진하게 받아 들여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상사 모두를 천진한 우주 실상의 모습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점은 칭찬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것은 그 이후의 문제이다. 둘째, 나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남을 불편하게 하는 당사자라면, 여기에서 머물지 말고 나 속에 들어 있는 부처의 마음과 행동을 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부처의 모습을 지어야 한다. 그렇게 행하는 한 나는 부처이다.
우리의 손자가 일생동안 짓는 모든 동작을 천진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실망과 미움 대신 지침 없는 사랑에 찬 실상의 경지에 훨씬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끝
송엽국 (사철 채송화, 솔잎 채송화)
부들레야 (Buddleja)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만일 사람이 삼세 일체의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해야 한다. 마음이 모든 여래(如來)를 만든다".
<화엄경 탐현기>
인격은 그 사람의 운명이다.
- 헤라 클레이토스
인생은 외국어이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잘못 발음한다.
- 크리스토퍼 몰리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동네 복지관 갔다
광장 시장 검은 바지 살려고
양천구청 역 가다 집으로 가는 중
더워 힘들어 동네 지구촌 교회
넓은 1층 에어콘 탁자 의자 쉬어 갈 수 있게
길 건너면 집인데
내일 원행 대종사님 수계식
저는 동네 엄마들 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