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50. 열반경의 명칭과 글귀의 공덕 (명자공덕품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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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97회 작성일 24-07-23 08:50본문
50. 열반경의 명칭과 글귀의 공덕 (명자공덕품 1) 4
세상에서 남과 비교해서 자신을 사는 사람들은 모두 죽음에 쫒기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일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과 대등하게 되고 싶어하고, 남보다 더 높이 오르고 싶어한다. 만약 일생이라는 시한이 없다고 한다면 오늘 안 되고 내일 안 되는 일에 대해서 크게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금생에 몇 년이나 몇십 년 남보다 늦은 일을 크게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영원한 시간이 자기 앞에 놓여 있는데, 몇십 년의 시간 몇백 년의 시간에 왜 쫒기겠는가. 그래서 시간에 쫒기는 사람은 자기가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거나에 상관없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셈이다. 이 세상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죽음, 불가에서 말하는 열반을 앞에 두고 설하시는 부처님의 말씀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죽음으로부터의 해방비법을 공개하는 죽음 해방비법 공개장과도 같다. 부처님은《대반열반경》이 죽음 해방비법 공개장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신다.
부처님은 또 《열반경》을 가을의 추수에 비유하신다. 봄에 씨앗을 뿌리는 것은 그 씨앗이 열매를 맺은 후 추수하기 위해서이다. 가을의 추수는 겨울 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봄에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서 모든 희망을 담아 뿌린 씨앗을 결실을 거두는 바람 성취의 결말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일생 동안 여러 경을 설하셨지만 《 열반경》은 그 결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마침표로 삼아서 일생이라는 시간에 쫒기며 살기 때문에 어린 시절과 청춘이 좋지만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어린 시절만 좋고 늙음이 나쁠 것이 없다. 오히려 청춘은 봄 · 여름과 같고, 늙음은 화려한 가을의 단풍과 같을 것이다. 또 죽음은 완전한 결실이 된다. 부처님은 그전에 깨달음을 얻어서 삶의 실상을 통달하고 이미 죽음을 여의였지만 이제는 죽음 앞에서 죽음이 마침표가 아니라 결실이라고 더욱 확실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 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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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 자신이 알지 못함을 아는 자는 현명한 자이다.
자신이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자가 가장 생각이 없는 자이다. ”
[ 만공스님 (1871~1946) <오도송> ]
공산리기고금외(空山理氣古今外)
백운청풍자거래(白雲淸風自去來)
하사달마월서천(何事達摩越西天)
계명축시인일출(鷄鳴丑時寅日出)
빈산이기는 고금 밖이요
흰 구름 맑은 바람 스스로 오가는데
무슨 일로 달마는 서천을 넘었는고
새벽에 닭 우니 밝은 해 솟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원래 오묘한진리의바탕 비었는데 무엇 하러 글을써서 남에게보일까. 한생각에몸이생겨 나기전일 깨달으면 기이한말 오묘한구절 모두가 티끌인것을 원선자 계송을 청하다 .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일찍 법당서 입구 책꽃이 위 원담 큰ㅅ님께서 쓰신
금강경 앞 부분은 소실
두루마리 책장위에
큰스님 不二 액자 벽에
뵙지는 못햇지만
삼청동 칠보사 석주 큰스님
慈顔愛語 큰스님께서 직접 써 주시고
법주사 조실 대종사님
잘 계시지요
건강하셔요
정광월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