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허허 지명 대종사님 『그것만 내려 놓으라』법문집에서 <게임과 경쟁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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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2건 조회 184회 작성일 25-08-06 08:17본문
을사년 안면암 포교당 백중6재 기도일 사진
조실 큰스님께서는 법문없이 직접 백중 기도를 시작하셨습니다.
혼신을 다하신 기도를 마치시고
칠석기도와 백중 6재에도 동참하신 신도님들에게
선망영가님과 인연영가님 등의 왕생정토를 축원하셨습니다.
오늘 공양간`ㅇ``````ㅔ``````````````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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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 경쟁의 끝>
나는 한때 주책없이 온라인 장기 게임에 빠진 적이 있다. 바둑과 달리 장기는 단순해서 초보의 경우에는 십여 분만에 한 게임을 끝낼 수 있다.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 등록만 하면, 무료로 동급의 상대를 만나 장기를 둘 수 있다. 이기면 기분이 좋고 지더라도 벌금을 내지 않는다. 상대가 이겨서 기분을 좋게 해주니, 일종의 보시가 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잡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잡기에 빠지면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바로 일어나지 못한다. 모든 잡기는 사람의 혼을 빨아들이듯 집중하게 만든다. 잠시 무아경에 들어서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라면, 정신 건강에 좋을 수도 있지만 길어지면 폐인이 될 수 있다.
공부, 수행, 창작 활동, 사업 등을 하면 그것에 전념해서 화두를 잡듯이 골몰해야 하는데, 잡기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현실의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
나도 잡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보고 깜짝 놀랐다. 초보시절에는 승패에 부담을 갖지 않고 게임을 하지만, 중급으로 올라가면서 이기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이기기 위해서는 더 집중해야 한다. 급수가 높아질수록 이기기 버거운 상대를 만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꾀를 냈다. 나의 이름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게임을 하면 져도 내가 지는 것이 아니니까, 아무런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을 가장해서 장기를 두어도 나는 상대를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또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등록을 하고 게임을 했다. 아무리 타인의 이름으로 바꾸어도 나는 이기려고만 하는 것이다. ‘나’라는 놈은 무엇이기에 이름을 바꾸어도 이기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는가.
잡기나 스포츠에서의 게임 근성은 우리의 삶에서 경쟁으로 나타난다. 이 세상 어느 곳 한 군데도 경쟁이 없는 곳은 없다. 막다른 경우에는 가장 친한 친구와도 경쟁해야 하고 심지어 형제라도 경쟁해야 한다.
친구나 동지간의 진급 경쟁 예는 많다. 형제간의 유산상속 싸움에는 재벌의 후손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이해문제에, 관계된 사람 모두가 수긍하도록 합의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면의 경쟁심은 그대로 살아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이기려는 마음들의 묘사이다. 갈등과 경쟁을 보여주지 않는 드라마는 없다.
게임이나 경쟁에서 우리의 마음이 흡족하도록 이길 수 있을까. “없다” 무(無)이다. 절대로 패하지 않는 승리자가 있을 수 있나. “없다” 그러면 이렇게 반대로 물어보자. 무조건 져주고 양보하며 살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없다” 출퇴근 시간에 운전하면서 양보한답시고 머뭇거린다면 뒤차들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방해가 되지 않도록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운전뿐만 아니라 세상사 모두가 마찬가지이다.
『금강경』에서 “상(相)을 보되 상을 지우고 볼 수 있으면 바로 부처님을 보게 되리라”고 한다. 이 상(相)은 겉모습 잘난 체 ‘나를 내세우는 마음,’ 또는 ‘이기려는 마음’ 등으로 풀이할 수 있다. 상을 지우라고 해서 자살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경쟁의 대열 또는 줄 서기에 빠질 수 없다. ‘경쟁에 참여하는 포즈를 취하되 그 게임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자세는 『금강경』의 기본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는 구절과 맥을 같이한다.
어떤 이는 “경쟁하지 않고 사는 방법이 왜 없어”라고 말할지 모른다. 거지가 되어 보라. 자포자기로 죄를 저지르고 교도소에 가 보라. 그곳에도 제압하려는 이가 있다. 삭발하고 출가할 수도 있다. 그곳에서도 도를 더 잘 닦고 전하기 위한 경쟁이 있다.
가진 것을 다 버리려고 한다면, 더 철저하게 버리는 포즈를 취하는 경쟁이 있다. 나무와 풀마저도 말 없는 가운데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경쟁의 끝은 없다. 무(無)이다. 단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집착하지 않으면 게임을 음미하며 친목을 다질 수도 있다. 그리고 중생을 살리고 이롭게 하는 쪽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 끝
<배롱나무(木 백일홍) 꽃말 - 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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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가난하여 보시할 재물이 없을 경우에는 남이 보시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켜라.
남의 선행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보시하는 것과 같은 공덕이 된다.
이는 아주 행하기 쉬운 일이니 , 그 누구라도 머뭇거리지 말라."
<인과경>
[ 배롱나무 / 홍성운 ]
길을 가다 시선이 멎네
길 모퉁이 목백일홍
품위도 품위지만 흔치 않은 미인이다. 조금은 엉큼하게 밑동 살살 긁어주면
까르르 까르르륵 까무러칠 듯 몸을 떤다. 필시 바람 때문은 아닐 거다.
뽀얀 피부며 간드러진 저 웃음, 적어도 몇 번은 간지럼타다 숨이 멎은 듯
그 절정 어쩌지 못해
한 백여 일 홍조를 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휴가 대구 갔다
어제 조계사 많이 변해진 모습
들어가는 입구 왼쪽 없어지 건물
양쪽으로 연꽃
외국인들과 불자님들께서 사진 찍는 모습
이제 총무원 건물 리모델링 되면...
연꽃도 다른 식물과 썪여 있으니
더 크고 싱싱해 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