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허허 지명 대종사님 『그것만 내려 놓으라』법문집에서 <<죽을 때의 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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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4건 조회 141회 작성일 25-08-09 06:52본문
<< 죽을 때의 멋 >>
나와 인연이 있는 한 불교인이 어느 날 뒷산에서 목매어 자살했다는 전갈이 왔다. 축농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줄은 알았지만, 자살할 만한 병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유서의 내용 가운데,“부질없는 이 육신의 꽃을 허공에 뿌린다”는 어구만 기억할 뿐이다. 주변에서는 지병의 고통 때문에 자살했으리라고 짐작했지만, 본인이 생전에 자살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고, 유서에서도 자살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므로, 진짜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망인을 화장하면서 친구들은 죽음을 슬퍼하기도 했지만, “죽는 방법이 흉측하고 안이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고양이도 자존심 때문에 죽을 때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다. 하물며 사람이 징그럽고 추한 죽음의 모습을 남겨서야 되겠는가. 단식하며 숨을 거두었더라면, 얼마나 멋있는 구도자의 인상을 주었겠는가. 그 친구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했겠는가. 단식을 통한 자살이 좋다는 뜻이 아니다. 단식을 하다 보면, 격정이 가라앉게 되고, 처절한 고통 속에서 새로운 삶의 의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고통을 너무 쉽게 피하려고 하지 말고, 더 진하고 긴 고통을 삼키면서 삶과 죽음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작년에 암으로 세상을 하직한 한 신도는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딱한 모습을 보였다. 평소에 건강하던 그분은 평소의 지병이던 치질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뜻밖에 직장암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다른 병원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수술에 이어서 두 번째 수술을 받을 때는 이미 암이 다른 기관에도 퍼져 있음을 확인하고, 수술을 포기하고 봉합해야 했다.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말을 의사로부터 직접 들었지만, 그분은 죽음이 자기에게 온다는 것이 천부당만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문병을 온 사람들을 보고, 부인에게 "저 분들이 왜 왔지?" 라고 물었다. 친구들과 공동대표로 경영하는 회사 업무 처리에 관해서 부인이 물었지만, "내가 나가서 직접 처리하면 되지 왜 호들갑을 떠느냐?"는 식의 표정만 지었다. 그리고 바로 숨을 거두었다. 죽음을 앞둔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남은 재산을 모두 없애더라도 부디 살려주세요"라고 애걸하며 매달리지는 않아서 최악의 임종 장면은 피할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멋지게 맞이하는 것은 불도를 닦는 최대 목표 중 하나이다. "무량겁의 보살도 수행", "왕생정토", "윤회로부터의 벗어남", "생사해탈", "열반에 듦". "즉신성불", "견성성불", "중생구제의 큰 발원" 등의 표현을 보자. 모두 다 죽는 공포부터의 벗어남을 염두에 둔 표현들이다. 불자가 추한 죽음의 장면을 보인다면 부처님과 조사 스님들에게 죄송하고 주변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불교에서는 어떤 식으로 죽음을 소화할까. 아예 삶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 것, '나'를 지움으로써 살아있는 상태에서 미리 죽음을 없애버리는 것, 움직이는 삶 속에 쉼의 죽음을 포함시키는 것, 정지해서 고요한 죽음 속에 삶을 포함시키는 것, 죽음을 마음의 규정으로 보는 것, 죽음을 꺼진 불이나 긴 잠으로 보는 것. 육도 가운데 어느 한 가지로의 형상 바뀜으로 보는 것 등이 있을 것이다. 표현은 여러 가지이지만 그 뿌리는 무아-공사상, 충만사상, 유심사상, 불성-법신사상으로, 육도윤회로부터의 해탈을 가르친다.
부산행 고속기차를 탔다면 몇 시간 후에 부산에 도착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중간에 기차가 멈추거나 내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층빌딩에서 뛰어내렸다고 치자. 땅에 떨어진 것과 같다. 우리가 해탈 열반을 얻든 말든 형태상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높은데서 뛰어 내린 사람이 아래에 떨어지는 것보다도 더 확실한 일이다.
불자라고 해서 누구나 지금 당장 불도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죽을 때 흉측하고 멋없는 자세를 피할 수는 있다. 첫째 자살로 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 둘째 죽음이 눈앞에 닥쳤을 때, 당당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 손, 저 손 붙잡으며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아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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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친구와 동료를 연민하다가 마음이 얽매이면
목표를 잃게 된다. 친교(親交)에서 이러한 두려움을 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 숫따니빠따 - 사품 >
= 불교 신문에서 :
문태준의 詩 이야기
꽃 뒤에 숨어 보이지 않던 꽃이 보인다.
길에 가려 보이지 않던 길이 보인다.
나무와 산과 마을이 서서히 지워지면서 새로 드러나는 모양들.
눈이 부시다.
어두워오는 해 질 녘.
노래가 들린다. 큰 노래에 묻혀 들리지 않던.
사람에 가려 보이지 않던 사람이 보인다.
- 신경림 시 '해 질 녘'전문
이 시는 신경림 시인의 유고시집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 다>에 수록되어 있다.
시인이 2024년에 타계하기 전에 쓴 미 발표 시편이다. 시인이 생전에 보여준 세상에 대한 한량없는 연민과 사랑이 낮은 음성에 실려 잘 드러나 있다.
해 질 녘은 낮의 시간이 밤의 시간으로 바뀌는 때이다.
눈부신 빛에 의 해 부각되었던 바깥 대상이 어둠에 서서히 묻히는 때인데.
시인은 이때에 바깥 존재에 대해 지녔던 그동안의 판별 기준 과 인식 내용을 전환한다.
겉모양만을 보지 않고 그 진가를 심안(心眼)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며,
연만(年晚)해서 얻게 된 지혜와 관용 때문일 것이다.
= 시인·불교방송PD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등단 30년 문태준 시인
아홉 번째 시집 ㅡ풀의 탄생ㅡ
5일 불교 신문에
서점에 가니 신경림 시인도 시집 발간
동국대 중앙도서관에서
ㅡ처음처럼ㅡ
신경림 시인의 싸인도 받고
시집도
우연히 간 도서관에서
그땐 자주 갔었는데
요즈음 향전 서점
정관스님 사찰음식 책 속에
우엉고추장 구이
어릴 때 외할머니께서 해 주시던
백양사 정관스님.영주
고등학교 대구서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석원영 보살님!
보살님과 함께 몇년전
문태준 시인님도 무산서원에서 뵈었었지요,
#풀의 탄생 꼭 사보겠습니다.
#처음처럼 초목도 참 마음에 깊이 와 닿네요.
소중한 댓글 항상 늘 감사드립니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동국대 도서관서 향엄심 구윤임 논문도
그땐 지도교수 목정배 교수 였는데
지관스님 재때 경국사 큰방에 걸린
구봉대선사 사진 지관 대종사님과 상좌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