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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허허 지명 대종사님 『그것만 내려 놓으라』법문집에서, 허무감과 보살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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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1건 조회 32회 작성일 25-09-1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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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감과 보살도 」(2)


   수행 구도의 측면에서, 행복을 느낄 때보다는 허무와 슬픔을 느낄 때, 세상을 좀 더 진지하게 관찰하기 쉽다. 기쁨 느끼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울한 느낌이 올 때면, 그를 활용해서 삶의 진실한 모습을 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허무의 느낌 또는 인생 전체를 관조하는 슬픔이 클수록, 더 여실히 실상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다. 헌데, 허무에 깊이 잠기더라도 주의할 점이 있다. 자살할 정도의 심한 우울증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지난 십년 간 두 배 이상 늘어나서, 세계1위가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교통사고 사망자 수보다 자살하는 사람의 숫자가 더 많은데, 자살자들이 우울증 유사 상태에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는 죽는 것을 말리고 싶지 않다. 단지 누군가를 위해서 목숨을 던져야 하고, 그 죽음이 감동을 주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실화를 들은 바 있다. 노인 부부가 있는데, 남편이 수혈 잘못으로 에이즈에 걸렸다. 부인이 남편과 같이 손목을 칼로 그어 피를 쉬는 방법으로 남편의 병을 자기 몸 속에 받아들였다.

 

   그런데 남편보다 부인이 먼저 그 병으로 죽었다. 부인을 따라 남편도 자살했다. 저 사건에서 자살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죽음의 병에 일부러 걸리기도 하고, 상대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결단은 큰 감동을 준다.

 

   철학, 문학, 정치 등에서의 허무주의는 세상의 허무를 실체적인 것으로 본다. 허무감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저 허무가 실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미혹과 욕망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허무가 느껴질 뿐이라고 한다.

 

   만약 허무의 느낌을 중생을 위해 활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즉 중생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보살도를 닦는다면, 허무의 슬픔과 고통이 그대로 법신의 해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단풍과 꽃을 보고 슬퍼하기만 하면 안 되리라. 일장춘몽이라는 말만 되풀이해서도 안 되리라. 누군가를 위해, 죽어 마땅한 나를 던져서 보살도를 향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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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부처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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