ȸ

{ 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 뒷모습마저도 평화롭고 아름다운 안면암 , 29. 북한에서 만든 팔만대장경 해제 소개 (2)

페이지 정보

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5건 조회 237회 작성일 24-04-07 00:04

본문

 



5ed9cf7e26fb859421fb524ba4b0ba40_1700725845_412.jpg



0720fa0f7f060784acaed3814a7c68d2_1700520412_5397.jpg



29. 북한에서 만든 팔만대장경 해제 소개 (2)


   첫 번째 대장경에 이어서 속장경도 만들었다. 문종의 넷째 왕자인 대각 국사 의천이 송나라에서 각종 장소 章疏 3천여 권을 모아 속장경 4,740여 권을 만들었지만 다시 몽고군의 병화로 소실되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 나라 국민성에는 끈기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몽고군이 불질러 버린 데 굴하지 않고 다시 제2차 팔만대장경을 조성할 계획을 세운다. 고려는 몽고의 침입으로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때 조정에서는 부처님의 가피로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고종 23년 (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 간에 걸쳐서 1,511부 6,802권 81,258판을 만들었다. 고려 때 두 번째로 만들어진 이 대장경을 팔만대장경이라고 하는 이유는 경판의 장수가 8만여장이 되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경판을 앞뒤로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페이지 수는 그 배가 되겠다.

 

이 대장경은 처음에는 강화에 경판각(經板閣)을 짓고 봉안하였다가 다시 강화 복원사 (福源寺)로 이전된다. 그 후 조선 태조 7년 (1398) 서울의 지천사에 잠시 모셔졌다가 다시 해인사에 현재와 같이 모셔지게 되었다.

 

중국에는 고려 이전에도 대장경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대장경들 가운데서도 우리 나라 팔만대장경이 가장 잘 만들어졌다. 이 대장경은 여러 가지의 불서 목록을 참조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어느 대장경보다 탈자나 오자(誤字)가 없다. 그 옛날에 만들어진 대장경에 탈자나 오자가 없다는 것에서 조성할 때에 얼마나 간절한 정성을 쏟았을까를 짐작할 수 있다. 글자를 새기는 사람들은 글자 한 자를 쓰고 새길 때마다 절을 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의 인쇄술과 출판 문화는 지금도 세계인이 놀랄 정도로 높은 수준에 달해 있다. 팔만대장경은 현재 대장경판 가운데서 가장 오래 된 것이다.

 

              - 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147_8226.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147_9851.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083_2226.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083_7224.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083_4007.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083_5585.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083_8834.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084_031.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084_2092.jpg
 

0c4daa21d08592ddfb16cba3183855ca_1712415148_4052.jpg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이 세상 모든 것은 죄와 복을 말미암지 아니하는 것이 없나니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죽은 자는 비록 몸은 없어질 지언정 그가 지은 선악의 결과는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다음 생을 받을 때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 ”

                                                                                                          < 패경 >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 설악 무산 조오현 대종사님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저는 문학을 전업으로 하기보다는 불교와 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서 가끔은 혼돈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상하사불금(上下寺不及)이라, 겸업 아닌 겸업으로 시인으로도 실패했고 수행승으로도 실패했습니다만 굳이 불교와 문학, 훌륭한 수행승가 훌륭한 시인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저는 시인보다는 스님을 택할 것 같습니다. 말은 겸업이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본업은 수행자란 뜻이지요.

  전쟁 직후는 참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저는 그 무렵 절에서 살았는데 절집도 너무 궁핍해서 수행을 한다든가 하는 기풍보다는 호구 糊口가 문제였을 때입니다. 거기다가 종단은 비구승과 대처승이 싸우면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서울 구경을 못한 촌놈이었습니다. 저는 밀양의 한 시골 절에서 소 머슴살이도 하고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문학과 종교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저도 그때는 종교나 문학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회의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가난이 우리의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저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를 만났습니다. 저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습니다. 소 머슴으로 절에 들어와서 처음에는 한문도 배우고 불경도 읽었는데 묘한 인연 때문에 그것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한동안 문둥이도 따라다니면서 방황하다가 삼랑진 금무산에 있는 약사암이라는 암자에서 한 5년 열심히 수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 계속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껴안고 싶도록  부드러운  봄밤  !  혼자보기는  너무도  아까운  눈물나오는    애타는  봄밤  !      창  밑에고요히  대글거리는  옥빛달줄기 잠을자는데  은은한  웃음에  눈을감는      사구꽃그림자 춤을춘다  . 야앵우는  고운소리가    밤노을타고  날아오르니    행여나  우리님  그노래를타고    이밤에  한번아니오려나!    껴안고싶도록  부드러운  봄밤      노자영. 봄밤    중에서  마음의  풍속으로  인한것은  아름다운것이다  .  어진마음을골라  머물지  않는다면      어찌  지혜롭다  하겠는가?.  말이 진실하고  믿음직  스러우며  .행동  이 독실하고공경스러우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에가더라도  뜻을  펼수있다  .만일  그반대로 라면  어찌자기마을에서인들  뜻을  펼수있겠는가  .새로운친구와 사람은  언제든  만날수있읍니다    시절이 가면  새로운시대가 오듯    새로운인연을  얻게됩니다 .온천지가  벗꽃이 만발속에  봄의향기  흠법 취해보세요  .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건강하세요  모두가  소중함의베란다앞의 화단의  연산홍  이보여줄  준비를하고  이날이가면  내일아침은  눈 마춤하자  . !

정혜월님의 댓글

정혜월 작성일

꽃도량도 아름답고
찬양도 해기롭습니다
원만행 님 뜻이 깊습니다
감사합니다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단박

                  함명춘

  새가 날아오를 수 있는  건

  사철 비옥한 들판도
  키 큰 미루나무  가지 위의 둥지도
  긴 세월 바위가  품은 샘물도
  바람이 길이고,
  고요가 울타리인  숲속의 산책로도

  단박에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야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안면암 뒷모습의 벚꽃을 보며
옮기기전  과천 포교당 들어가는 길 생가납니다
운심행보살님의 거사님께서  길 가득 벚꽃을 심어
안면암 과천포교당  길을  자주 가고 싶게 만드신
거사님 잘 계시죠
그곳 극락도 봄꽃들이 한참 개화  하고  있겠죠

모든분들  건강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