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바닷가 신비롭고 오묘한 일출>, 허허 지명 대종사님 『그것만 내려 놓으라』법문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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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4건 조회 194회 작성일 25-08-10 08:35본문
「풀, 돌, 죽음의 성불」
시와 소설을 읽다보면 무아경에 들 때가 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난 지도 모르고, 꿈과 같은 세계에 빠져든다.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나올 때, 감동의 위기가 가시지 않아서 출입문과 도로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늙으면 달라진다. 시력과 청력이 희미해지고, 남녀 간의 색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면, 어떤 이야기의 시작을 들어도 그 결말을 궁금해하지 않는다. 결과가 뻔하다고 생각한다.
90대의 노인이 20~30대와 결혼했다는 해외토픽처럼 예외도 많겠지만, 우리는 여기서 무상, 허망, 부질없음을 느끼는 이들을 이야기하는 중이다.
나는 요즘 아무런 정열이 없음을 느끼면서, “번뇌가 없으면 성불도 어렵다”는 조사 스님들의 말씀을 새삼 되새기곤 한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주는 것은 받고, 내 것은 퍼주지 않는다. 승려로서의 업이 있어서 나무를 심고, 염불을 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를 위로하고, 뜻을 세우고 노력하는 이들을 격려하기는 하지만, 불타는 정열이 없다.
진한 감동도 없다. 무덤덤하다. 살아있음과 죽어버림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부처님과 멀고 가까운 스승 도반들에게 죄스러움을 느낀다. 남에게 내 속을 들키지 않을 정도의 그럴듯한 형태만 있을 뿐 눈물어린 발원의 알맹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나에게도 불교는 희망의 빛을 준다. 바로 “유정(有情)물은 물론이거니와 풀, 나무, 기와, 돌 같은 무정(無情)물도 성불할 수 있다”는 천태종이나 화엄종 계통 조사스님들의 불성 해석이다.
사람의 언어가 새의 언어보다 발달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새들에게도 의사소통의 방법이 있다는 것 또한 경험으로 짐작할 수 있다.
풀과 나무는 어떨까. 습기와 영양을 찾아 뿌리가 뻗고, 햇빛을 향해 가지가 뻗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본능이랄까 업이 있다. 그렇다면 물과 흙과 바위는 어떤가. 저들에게 어떤 독자적인 의지가 있는 것처럼 꾸며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저들 같은 환경이 없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풀과 나무가 존재할 수 있다.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고 판단하지만, 손발이 남의 것이 아니다. 저 환경은 우리식으로 말하는 생명체의 손발과 같다. 유정이나 무정을 막론하고 온 우주는 한 몸이다. 돌의 성불은 나의 성불이다. 세상에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 쓸데없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할 때, 그 마음의 주체를 동물로만 한정해서 되겠는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으려 하고, 아름다운 색을 보면 흥분하고, 자기 자신을 뽐내고 싶어하는 욕망과, 그것을 향해 과감히 도전하는 패기를 가진 사람만 세상을 만들어낸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풀도, 나무도, 산하대지 모든 것도 인연과의 법칙 속에서 뭔가를 그리고 있다.
왜 부처가 되려고 하는가.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중생을 어떻게 만든다는 말인가. 부처를 만들려고 한다. 중생을 위하는 것을 만들려고 한다. 가뭄으로 죽어가는 곳에서는 비가 되고, 식량이 없는 곳에서는 곡식이 되고, 질병이 많은 곳에서는 약초가 되겠다는 것이 보살도, 즉 부처를 향해서 가는 기본이다.
이 사바세계에 아무리 부처가 많이 탄생하더라도, 한 세계에서는 부처만 교주로 나서야 한다. 이 세계의 교주는 석가모니다. 다른 부처들은 숨어서 중생을 위해야 한다. 물과 풀과 나무와 흙과 돌이 되어도 중생을 위할 수 있다. 부처라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면서 자기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부처의 일을 할 수 있다.
속리산 은봉선당의 구봉선사가 숲 속의 고사목들을 보고,“무정설법(無情說法)” 즉 산하대지의 설법“”을 깨달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많은 나무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하는데, 그 중에서 고사목들은 죽음으로써 주변을 살린다는 것이다. 지워짐조차도 중생을 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나도 성불할 수 있다. 이미 죽어버린, 언제든지 죽어버릴 고목도 성불할 수 있다.끝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사람은 항상
눈 때문에 속고
귀 때문에 속고
코 때문에 속고
입 때문에 속고
몸 때문에 속는다.
그러므로 눈, 귀, 코, 입 등의 욕망을 억제하고
갖가지 욕망에 뛰어들지 않도록 하라. ”
< 불교유경 >
[ 갈대 / 신경림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른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신경림,갈대 시
화장실에도 적어 놓고
학교 다닐때 열심히
지묵스님 수원포교당 화장실 책
살아서 해야할 49가지 책
단오날 마다 부채 전시 친구들 나눠 주고
좋아했던 기억
그때 유라 할아버지 법련사 선방 회장
청와대 직원들도
법산 큰스님, 전 동국대 총장 보광스님
인경스님 인사동서 공양
청계산 정토사서 철야 목탁 연습
불일 서점서 지묵 스님 자주 뵘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저마다, 꽃
이종암
꽃을 가졌거나 못 가졌거나
몸의 구부러짐과 곧음
색깔의 유무와 강약에도 관계없이
오롯이
함께 숲을 이루는 저 각양각색의
나무, 나무들
사람들 모여 사는 세상 또한, 그렇다
저마다 꽃이다
전철 내려 동국대 올라가는 에스카레이터
그 끝 신경림 시인 시
목계 장터 있어요
만해 광장서 본 멀리 남산 경치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목계 장터 시비 있고요
만해 광장 멀리 보이는 경치,
남산이 아니고 청와대 뒤쪽 오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