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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한 권으로 읽는 불교 교리] 제7장 禪(선) 086 무언부동의 처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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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222회 작성일 23-08-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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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6 무언부동의 처처 (1)

 

언어의 문제와 한계를 알고 그것을 초극하기 위해서 선은 無言(무언) 또는 침묵을 활용하는데, 아 침묵은 선에서 중시하는 다른 측면과도 연관되어 있다. 말없이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이 진리의 窮極点(궁극점)을 나타내고 있다거나 우주라고 하는 큰 法身體(법신체)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진리가 말을 떠나 있음을 강조하다 보니, 선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이심전심으로 통하거나 법을 전하고 받게 만들고, 더 나아가 침묵하고 있는 우주 전체와 그 안의 사사물물을 우리에게 진리을 보여 주는 佛身(불신)의 활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침묵은 언어적 휴식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동작이나 생각의 쉼도 포함되어 있다. 즉 몸, 입, 마음 세 가지의 휴식을 같이 담고 있다. 그런데 선이 아무리 언어로부터 벗어나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말 대신에 할을 하고 엉뚱한 선문답을 하더라도, 그 역시 일종의 언어적 표현에 속한다. 몸이나 마음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선을 이를 잘 안다. 죽비가 소리를 가라앉히려고 하지만 그 역시 소리이다. 언어를 떠나려고 하는 선이 속장경 3분의 2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의 말을 전한다. 선이 침묵과 부동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입과 몸과 생각의 움직임에서 삶의 목표나 보람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목소리와 동작으로 높이 오르기 위해서 기를 쓰고 헐떡거리기 때문이다. 선은 우리에게 말도 움직임도 없는 시시처처엣 진리의 궁극점, 법신불의 몸체, 최고의 행복점, 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가르치려고 한다.

 

   선에서는 갖가지 표현으로 불법의 궁극점이랄까 절대점을 묻는다. “부처나 조사가 지금까지 써 온 말을 빼고 한 번 대답해 보라!” “무엇을 부처라 하는가?” “불교의 절대적 대의는 무엇인가?”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인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등으로부터 시작해서 , 모든 질문은 궁극점에 대한 것으로 귀결된다. 저에 대해서 “호떡” “항문의 변을 닦아내는 막대기” “삼베 옷감 세 근” “정원의 잣나무” “날마다 좋은 날” “평상심이 바로 道(도)” “無(무) 등의 대답이 있었다. 어떤 선사는 단지 손가락만을 세워 보이고 다른 선사는 소리를 버럭 지르기만 한다.

 

ㅡ 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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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 이 도시는 (몸)는 뼈로 지어지고 살과 피로 발라지고

거기에는 늙음과 죽음과 교만과 위선이 갖추어져 있다. ”

                                                                    < 담마빠다 >


“ 양측의 의견을 모두 듣기 전에는 결정을 내리지 마라.”

                                                    < 포킬라데스 >

“상식은 내가 아는 최고의 지식이다.”

                                                    < 체스터필드 경 >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원만행님의 댓글

원만행 작성일

양변을  변경을 말할때 유무견    역무 무견은  중도  유 무를 여인것이다  .  갈곳 없는  갱무거쳐    .  삼기  무이변  ?  !    양변을  여윈  중도  없다  .  단득  여시자    진여래도  오위송은    대표로  불락 유수회  !    구경법이다  .  근본원리 중도  !  변견이다  .선교는 전체통한 49년  최고원리다  .  유조의증손자  마조 졔자  백장광록에서    해헤스님의 법어록의  마씀중    귀담아들은듯?.  ..그냥행복할뿐  불법만난 인연에 감사합니다  .안면암의  하늘도좋고  전경도  곳곳이 전경이  표현이부족하지만  편안하고  내가 거기에 이름이  가족의  축원의  인연에  감사을 립니다  .  거룩하신  삼보님  합장하여  이세상에 허공 의  청정한 빛이  마니주이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정광월 합장님의 댓글

정광월 합장 작성일

백중
회향 날
많은  동참자들

큰스님의  지극 정성 기도
초하루 법회도
오늘 처럼  참석 하시는 분들
많았으면 합니다

큰스님
건강하셔요

                      정광월 두 손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