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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의 안면암 일기} 114. 각급의 불과에 있는 불성의 동일성(보살품 9)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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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2건 조회 167회 작성일 25-06-30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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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각급의 불과에 있는 불성의 동일성(보살품 9) 끝

 

 

    우리는 여러 방면의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아주 높은 사람과 부족한 사람의 예를 종종 본다. 출중한 사람들과 부족한 사람들이 각기 나름대로 이루는 성공을 보면서 왜 같은 불성을 가진 사람에게 다른 능력이 생기는가를 물었다. 그러나 우리의 물음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허점이 있다. 바로 물질과 형상에 의해서 좋고 나쁜 것을 가 리려는 속세적인 평가 기준이다. 나와 남을 가르고 나와 우주를 가르는 입장에서 보면 남보다 책을 빨리 읽고 남보다 지략이 뛰어나서 남을 이기고 남보다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은 능력이 있는 것처럼 두드러지게 보인다. 대승과 소승, 부처와 성문·연각을 갈라서 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문수 보살이 어떻게 부처를 이룬 사람과 부처를 이루지 못한 사람의 불성이 같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이 질문에는 부처를 어떤 형상적인 성취로 보려는 전제가 들어 있다. 성취와 실패를 가르는 것은 누구의 성취와 누구의 실패를 가르는 것이 된다. 나와 남을 가른다는 말이다. 나와 남을 가르는 것은 법신의 입장에서 본 것이 아 니라 육신의 시각으로 본 것이다.

 

   부처님의 법신은 나와 남, 태어남과 죽음, 성공과 실패를 한 몸으로 삼는다. 화분에 꽃이 한 송이 피어 있다고 치자. 법신은 위쪽의 꽃 부분을 성공이라고 하거나 아래의 흙에 묻힌 뿌리 부분을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꽃과 뿌리 즉 속세적인 의미의 성공과 실패는 한 몸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와 중생의 불성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노란 소·흰 소·검정 소가 다같이 흰색의 우유를 만든다고 한다. 모든 소의 젖이 흰색인 것처럼 모든 중생과 모든 부처의 불성이 똑같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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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오늘의 부처님 말씀]

“욕망에서 슬픔이 생기고 욕망에서 두려움이 생겨난다.

 욕망을 여읜 님에게는 슬픔이 없으니 두려움이 어찌 생기랴.” 
                                                                          <법구경>


유일한 진정한 행복은 목적을 위해 몰입하는데서 온다.
                                                        - 윌리엄 쿠퍼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행복이다.
                                                      - 로버트 프로스트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윤병예 합장

원영님의 댓글

원영 작성일

무성한  푸르름  숲
그곳 안면암  방학되면
많은 불자님과  참배객으로 
안면암이  바쁘시겠어요

지장대원탑에서
지장보살님  친견하는  분들의
소원성취  이루어지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