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 [안면암 일기] : {인간의 완성} 109 극락세계와 아미타불 (4) (아미타경 1) 2022년 12월 31일 土(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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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3건 조회 150회 작성일 22-12-31 07:18본문
109
극락세계와 아미타불 (4)
(아미타경 1)
극락세계에는 지금도 아미타불이 설법하고 계시는데 아미타불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미타불의 광명이 한량없고 아미타불과 그곳에 사는 이들의 수명이 한량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미타바는 무량한 광명, 아미타유스는 무량한 수명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보통 아미타를 무량수 · 무량광이라고 이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무량한 수명은 시간적인 것이고 무량한 광명은 공간적인 것이다. 광명은 한없이 넓은 공간에 이르는 것, 또는 한없는 공간을 뜻하기도 하지만 무량한 공간을 밖에서 구하기만 한다면 헤매다가 지치고 말 것이다. 무량공간은 내적으로 얻어지는 무한여행, 무한자유 또는 해탈에서 얻어야 할 것이다. 시간도 마찬가지이다. 불교의 기본입장이 모든 시간을 다 밟아서 긴 시간을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찰나의 깨달음에서 영원을 보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아미타를 ‘일념의 영원과 서 있는 자리에서의 무한여행’이라고 풀이하곤 한다. 지금의 찰나 일념에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 그곳에서 영원한 시간과 진정한 자유가 얻어진다는 말이다.
아미타불은 법신 · 보신 · 화신 가운데 보신불에 속한다. 법신불은 우주 진리의 본체자리를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이 법신불이 된다. 화신불은 법신불로부터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내려오는 부처님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보신불은 중생의 몸으로부터 닦아 가지고 부처를 이루어서 법신불의 자리로 올라가는 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은 중생의 몸으로 불도를 닦아서 부처를 이루었다.
아미타불은 법신 · 보신 · 화신 가운데 보신불에 속한다. 법신불은 우주 진리의 본체자리를 의인화해서 표현한 것이다. 비로자나부처님이 법신불이 된다. 화신불은 법신불로부터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내려오는 부처님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보신불은 중생의 몸으로부터 닦아 가지고 부처를 이루어서 법신불의 자리로 올라가는 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을 중생의 몸으로 불도를 닦아서 부처를 이루었다.
아미타불이 불도를 닦아 성불한 인연에 대해서 네 군데의 불경에서 설명하고 있다. 《법화경》의 <화성유품>, 《비화경》 2권 《무량수경》 상권 그리고 《관불삼매해경》 9권이다. 그 외 《화엄경》《열반경》 등 200부가 넘는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에 대해서 설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아미타불의 성불 인연으로는《무량수경》의 것이 자주 인용되고 있다. 아미타불의 전생은《무량수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정형화 되다시피 한 것이다.
《무량수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을 본래 국왕이었는데 구도의 서원이 돈독해서 출가해서 법장비구가 되었다. 그때 세자재왕불이있어서, 그 부처님께 나아가 가르침을 받고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48대원이 성취되기까지는 어떠한 어려움을 당해서고 물러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 같은 오랜 겁의 수행 결과로 법장비구는 아미타불이 되어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로서 중생을 구제하게 된다. 법장비구가 아미타불이 된 지는 십겁이 된다고 한다.
댓글목록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지붕이 잘못 이어진 집에 비가 스며들 듯이
닦여지지 않은 마음에 탐욕이 스며든다.”
ㅡ 법구경
< 겨울 강에서 > / 하순명
강을 보러 왔다
지난해 강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햇살에 강의 이마가 반짝이고
맥박소리가 들린다
따스한 강의 심장에는
더 따스한 강물이 흐르는 것을,
저 얼음장 밑에는
얼마나 많은 물고기들이 집을 짓고 있을까
내가 볼 수 없는 수많은 집들은 지금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기다림이 깊을수록
맑고 환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강이 눈을 뜨고 있다
나도 저 강물처럼 곧 일어설 것이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
일심행님의 댓글
일심행 작성일
새 아침에
조지훈
모든 것이 뒤바꾸어 질서를
잃을지라도
성신星辰의 운행만은 변하지 않는
범도를 지니나니
또 삼백예순날이 다 가고 사람 사는
땅 위에
새해 새아침이 열려오누나.
처음도 없고 끝도없는
이 영겁의 둘레를
뉘라서 짐짓 한 토막 짤라
새해 첫날이라 이름지었던가 .
뜻 두고 이루지 못하는 한恨은
태초 이래로 있었나보다
다시 한번 의욕을 불태워
스스로를 채찍질하라고
그 불퇴전의 결의를 위하여
새아침은 오는가 .
낡은 것과 새것은
의와 불의를
삶과 죽음을 -
그것만을 생각하다가
또 삼백예순날은 가리라
굽이치는 산맥 위에 보랏빛 하늘이
열리듯이
출렁이는 파도 위에 이글이글 태양이
솟듯이
그렇게 열리라 . 또. 그렇게 솟으라
꿈이여 !
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일심해 보살님!
저도 조지훈 님의 시를 매우 좋아했습니다.
자주 명시 소개 부탁드리며
내일 정성껏 게시봉사하겠습니다.
소중한 댓글 감사 감사드립니다.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