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안면암 일기] : {인간의 완성} 107 발심 (2) (화엄경 14) 2022년 12월 20일 火(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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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1건 조회 174회 작성일 22-12-20 07:30본문
107
발심 (2)
(화엄경 14)
菩提心(보리심)은 모든 부처님의 씨앗이다. 일체 불법은 다 보리심으로부터 생긴다. 보리심은 대지이다. 모든 세계는 다 이 대지에 의해서 지탱된다. 보리심은 청정한 물이다. 물은 모든 번뇌의 때를 씻어 준다. 보리심은 큰 바람이다. 이 바람은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 보리심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다. 이 불길은 모든 사견과 애욕을 태워버린다. 보리심은 맑은 햇빛이다. 이 빛은 모든 중생에게 두루 비친다. 보리심은 맑은 눈이다.
이 눈은 바르고 그른 것을 환히 분별한다. 보리심은 무이다. 이 보리심으로 인해서 모든 보살들이 보살행을 실천하게 되기 때문이다. 보리심은 인자한 어머니이다. 보리심이 온갖 보살들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보리심은 큰 바다이다. 이것은 모든 공덕을 다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년이여, 보리심은 이런 무량한 공덕을 성취하므로 모든 부처님과 모든 보살의 공덕과 같으니라. 왜냐하면 보리심에 의해서 모든 보살은 보살행의 실천에 들어가고 삼세의 모든 부처님들도 보리심에 의해서 깨달음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미륵보살은 선재동자에게 보리심이 불법을 닦는 요체라고 일러준다. 미륵보살에 의하면 보리심은 불종자요, 땅이요, 물이요, 바람이요, 불꽃이요, 햇빛이요, 맑은 눈이요, 인자한 어머니요, 큰 바다이다. 먼저 불도를 구하는 마음이 일어나야 보살행에 대해서 알고 싶어지고 보살행을 닦아야 불도를 이룰 수가 있기 때문이다.
불도를 닦는 데 있어서 보리심을 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왜 우리가 불도를 닦아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보리심을 발하고 싶어도 보리심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지가 문제이다.
《화엄경》이 영화로 상영되었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서 영화는 고민한 것 같았다. 영화는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을 쉽게 풀이해 보려고 시도한 것인데 선재동자는 아버지가 죽은 후에 어머니를 찾아서 길을 떠난다.
《화엄경》은 불법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바다의 특징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영화도 선재동자를 통해 바다로 인도해서, 바다에 대해서 배우게 한다. 선재동자는 많은 사람을 만나서 어머니에 대해서 묻고 듣는다. 마지막에 선재동자는 자신의 어머니는 어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바다와 산과 이 우주 전체라는 것을 터득하게 된다.
영화는 사람이 불도를 이루는 것을 좋아하고 보리심을 발하는 것은 어머니를 잃은 어린이가 당연히 자신의 어머니를 찾는 것으로 설명하려 하고 있다. 자식이 어머니를 찾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설명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불도를 좋아하고 불도를 이루려는 마음을 내는 것 역시 논리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래성품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ㅡ 죄송합니다만, 내일 또 이어 게시봉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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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원수를 상대하면서도
분노를 품지 않는다면
그는 영원히 안락할 수 있을 것이다.”
ㅡ 보리행경
< 눈 내린 아침 > / 김수미
소리없이 밤새 내린 눈
하얀 아침을 열어 놓고
뽀드득거리는 발걸음 소리
가지에 쌓인 눈 화들짝 놀라 내려앉는다
반짝이는 햇살에 기지개 켜며
제 시간을 잊은 채 고개 내민 새싹
하얀 고깔모자 쓰고
순백의 세상과 마주한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