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봉스님[안면암 일기] : {인간의 완성} 97 불가사의한 중생의 업과 인연 (4) (화엄경 4) 2022년 11월7일 月(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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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1건 조회 163회 작성일 22-11-07 07:38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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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중생의 업과 인연 (4)
(화엄경 4)
업을 짓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업이 만드는 인연의 줄기를 찾아 업의 타래, 업의 꽃, 업의 바다가
장엄의 불국토라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성불도 놀이를 해보았는가. 성불도 놀이판에 보면 상단에는 천상이나 부처의 자리가 있고, 하단에는 지옥 · 아귀 · 축생 · 아수라 등의 자리가 있다. 삼매에 들어서 중생 업의 바다를 살펴볼 때 위로부터 들어가서 아래로 나오기도 하고, 남자로부터 시작해서 여자로 나올 수도 있다. 하나로 들어가서 여럿으로 나올 수 있고, 여럿으로 들어가서 하나로 나올 수도 있다.
중생의 업은 무궁무진하게 얽혀 있다. 지금까지 쓰여 진 소설이나 드라마나 모든 종류의 인연이야기는 이 불가사의한 중생업의 타래 가운데 무량 백 천만 억분의 일을 끌어내 보인 것에 불과할 것이다.
《화엄경》에서 불가사의한 중생업의 이 입구와 저 출구를 드나드는 것은 저 중생업의 타래를 삼매의 바다로 관하고 화엄의 꽃으로 응시하는 것과 같다. 비로자나불이 인도하는 삼매에 들기 이전이나 이후에 있어 우리가 중생의 업을 짓는다는 점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삼매에 들게 되면 자신의 업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어디로 들어가고 어디로 나오는 삶의 과정이 훤히 보인다. 똑같이 업을 짓지만 자신의 업을 보는 것과 보지 못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화엄경》은 업을 짓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업과 업이 만드는 인연의 줄기를 계속 쫒아가서 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업의 타래, 업의 꽃, 업의 바다가 모두 비로자나불의 광명이 장엄하는 불국토라는 것을 알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다. 어떤 사냥꾼이 있었다. 활을 놓기만 하면 지옥으로 가지 않고 극락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지금 당장 활을 놓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뒷날 사냥을 그만두어도 극락에 가게 될 것이니 그때까지 사냥을 계속하기로 꾀를 냈다. 이 사냥꾼처럼 업의 바다가 비로자나불의 작품이라는 말을 듣고 그 말을 계속 나쁜 업을 짓는 데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업과 인연의 바다는 다른 사람이 짓는 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지 악업을 짓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자기가 통제할 수 없으면 아무리 자기라고 하더라도 그는 남이다. 실제로의 남과 자신이라는 이름의 남은 지금 당장 업의 바다를 그대로 비로자나불의 작품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내가 최선을 다해서 통제할 수 있는 데까지 나는 의인(義人)의 역을 수행해야 한다.
보살도를 닦는 수행자로 나서야 한다. 업의 바다에서 연극이 제대로 되려면 악역도 필요하지만 의로운 주인공 역이 더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업의 바다에 악역의 지원자만 많고 의인역의 지원자는 적다. 불가사의한 업의 연극에 출연하는 배역들이 악역과 의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지금의 바로 내가 그 의로운 주인공 역을 담당하겠다고 지원하고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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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태양이 나타나면 반딧불과 별들은 자취를 감춘다.
지혜의 나타남도 마찬가지여서,
온갖 외도의 무명의 등불이 자취를 감춘다.”
ㅡ 보살행 변화경
< 오직 적막 > / 허형만 (#시선집 -있으라 하신 자리에)
한 생애가 텅 빈 항아리 같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파도도 고요해지고
창문에 반짝반짝 별빛을 매달고 달리던
야간열차의 기적소리도 아스라이 잦아지고
나의 한 생애여, 이제는
오직 적막
한때는 부글부글 들끓음으로 가득 찼으나
한때는 한기 돋는 소스리바람에도 출렁거렸으나
나의 한 생애여,
이제는
오직 적막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