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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봉스님[안면암 일기] : {인간의 완성} 95 법신불의 설법방식(4) (화엄경 2) 2022년 10월29일 土(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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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해탈심게시봉사 댓글 1건 조회 153회 작성일 22-10-29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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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법신불의 설법방식 (4)


(화엄경 2)

   필자는 화엄경의 제목에 나온 화엄, 비로자나불이 발산하는 광명, 그리고 보살수행자들이 들게 되는 삼매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고 싶다. 경에서는 부처님의 광명을 화려하게 묘사하고 있다. 비로자나불에서 나온 광명이 시방세계를 다 비출 때 그 광명이 이르는 모든 세계에는 온갖 풍악이 울리고, 수없는 보배가 뿌려지며 모든 보살들이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연꽃자리에 앉게 된다.

이 광명은 물론 깨달음의 광명이지만 그 깨달았다는 의미가 번뇌를 없애고 그 자리에 좋고 맑은 마음만으로 대치했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좁은 소견의 번뇌를 넓은 바다로 끌어내서 우주의 번뇌로 만들 때, 그 번뇌는 꽃의 장엄이 되고 그 꽃의 장엄이 그대로 광명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아집에 갇혀서 넓게 보지 못할 때는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번뇌가 조잡하고 추한 것이다. 그러나 그 번뇌를 끌어내서보다 큰 번뇌를 만들 때, 그리고 모든 번노들을 있는 그대로 꽃의 장엄으로 볼 때는 이미 그 번뇌는 예전의 개인적인 번뇌가 아니다. 우주적인 것이다.

   우주적인 번뇌는 그대로 깨달음이 되며 광명이 된다. 번뇌 그대로 광명이 된 것이다. 그래서 광명은 번뇌의 다발이면서 동시에 꽃의 장엄이다. 모든 곳에 번뇌가 있으므로 모든 곳에 번뇌의 꽃이 필 수밖에 없고 모든 곳에 비로자나부처님의 광명이 이를 수밖에 없다.

   또 부처님의 광명을 받고 부처님의 힘에 의해서 삼매에 든다. 개인이 혼자 생각해서는 자기 울타리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부처님에 의해서 넓은 바다로 나와야 한다. 또 혼자 계속적으로 헐떡이고 흔들리는 삼매가 아니라 산과 같고 바다와 같은 삼매에 들어야 한다. 산하대지가 모두 비로자나불의 몸이다. 비로자나불의 몸은 언제나 삼매에 들어 있다.

   산과 강은 마음이 없는 것이지만 인간의 마음이 관계되는 모든 사건까지 비로자나불의 법신이 확대될 때, 모든 것이 그대로 삼매가 된다. 비로자나부처님의 광명이 그대로 번뇌다발 · 번뇌 꽃의 광명인 것처럼 부처님의 광명에 의지하는 삼매도 번뇌의 다발과 번뇌의 바다를 그대로 응시하는 것이 된다. 번뇌의 우주, 번뇌의 바다를 한꺼번에 응시하기 때문에 이니 작은 자기에 매달리는 생각은 그전의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매달리는 현상을 화엄이라는 꽃봉오리 중에 끼어 있는 하나의 꽃잎으로 보게 된다. 소아에 대한 집착을 여의려고 하지 않아도 삼매의 성질은 사람을 넓은 바다로 끌고 가서 화엄의 바다와 하나로 만들어 버린다. 그것이 비로자나불이 번뇌의 꽃으로 장엄해서 발산하는 광명의 불가사의한 위신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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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탈심게시봉사님의 댓글

해탈심게시봉사 작성일

< 오늘의 부처님 말씀 >

“성내고 해치려는 생각을 없애고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라.

연민하는 마음으로써 중생을 돌아보고

자비로운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라.

                                        < 현우경 >

< 안부 >  / 나태주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나무대원본존 지장보살마하살
나무약사여래불

                                해탈심 합장